‘노키즈존’은 아이를 향한 또 다른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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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은 아이를 향한 또 다른 ‘혐오’
  • 경남 양산시 허시언
  • 승인 2019.11.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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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No Kids Zone)은 말 그대로 나이가 어리면 입장할 수 없는 공간을 뜻한다. ‘키즈’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어느 곳은 영유아와 유치원생까지, 다른 곳은 초등학생까지, 또 어떤 곳은 중고등학생까지 입장을 제한한다. 입장 제한의 이유는 오로지 나이 때문이며, 이는 엄연한 나이 차별이다.

우리는 모두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의사 표현을 울음으로 대신하고 통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해와 존중 속에서 자랐다.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배려를 그대로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단지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하며,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했다. 시대가 변하고 인식은 성장했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노키즈존을 반대한다. 아이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사회는 결코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다. 아이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를 무시하고 어른들의 편안함을 위해 특정 연령층을 전부 배제하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어른들은 이 점을 악용하고 있다. 부당하다 말하지 못하고,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의 권리를 빼앗았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우리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묵인했다. 이 모든 일은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장애인과 성소수자, 인종 차별은 조심하면서 왜 나이를 차별하는 것은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이도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이 차별을 일삼고 있다.

우리는 왜 아이를 혐오하는가.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참을 수 없어 하고, 유독 아이에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하철에서 우는 아이를 보며 지하철은 왜 노키즈존을 하지 않느냐고 중얼거리던 어떤 승객이 떠오른다. 아이를 아예 사회에서 배제시키려는 생각을 하는 그 승객을 보며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이가 우는 것은 그들의 의사소통일 뿐인데 왜 그렇게 못 견뎌하냐고,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아이를 향한 혐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아동 작가 전이수의 수필집 <마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에서 노키즈존 문제에 대해 쓴 일기의 마지막 구절이 더욱 사무친다. “아빠, 왜 개와 유대인은 가게에 들어갈 수 없어요?” 정당한 이유 없이 출입을 금지시키는 일은 옛날 유대인들을 차별하던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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