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대충 살아요’...무의미함 속에서 즐거움 찾는 무민 세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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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충 살아요’...무의미함 속에서 즐거움 찾는 무민 세대 등장
  • 취재기자 김지은
  • 승인 2019.11.25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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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R 듣기, 슬라임 만지며 놀기, 브이로그 찍어 업로드 하기 등 몰입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에 청년들 스스로 위로하고 공감 받으려는 몸짓

“할 수만 있다면 대충 살고 싶어요”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생각이다. 이 세대를 가리켜 ‘무민세대’라는 말이 탄생했다. ‘무민 세대’란, 없을 ‘무’(無), 영어의 의미를 뜻하는 mean을 한국말로 읽은 ‘민’에 세대(世代)를 합친 신조어로, 남들이 보기엔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려는 세대를 ‘무민 세대’라고 한다.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 머리를 비우고 단순한 것을 추구하려는 행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무민 세대’와 ‘소확행’은 조금 의미가 다르다. ‘소확행’은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소소하게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무민 세대’는 수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의미가 없어 보이는 단순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을 추구한다.

‘무민 세대’가 등장하면서 “대충 살자”라는 가치관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성공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이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적당하게 경쟁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런 ‘무민 세대’의 가치관은 SNS를 타고 퍼지면서 다양한 유행을 만들어 냈다.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 듣기, 슬라임 만지며 놀기,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을 찍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하는 등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동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리는 것이다. ‘무민 세대’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 잠시나마 복잡하고 어
려운 현실 속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무민 세대’들 사이에 단연 인기가 있는 것은 ASMR으로, 매일 유튜브에선 다양한 ASMR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무민 세대’들 사이에 단연 인기가 있는 것은 ASMR으로, 매일 유튜브에선 다양한 ASMR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특히 ‘대충 살자’ 시리즈는 ‘무민 세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귀가 있음에도 관자놀이에 헤드셋을 낀 캐릭터를 보고 “대충 살자, 귀가 있어도 관자놀이로 노래 듣는 아서처럼”이라고 말하거나, 빙판 위를 슬라이딩하는 북극곰 사진을 보고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 ‘신화’의 멤버 김동완 씨가 각각 높이가 다른 흰색 양말 한 쌍을 신은 사진을 보고 “대충 살자, 양말은 색깔만 같으면 상관없는 김동완 처럼”이라고 말하는 식의 사진이 각종 SNS에 올라왔었다

‘대충 살자’ 시리즈의 인기 이유로는 수많은 경쟁과 어려움 속에 한 번도 대충 살아보지 못한 청년들이 이 시리즈의 사진들을 보고 크게 공감하며 작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대학생 안 모(22, 부산시 남구) 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대학생인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리고 열심히 살았다”며 “요즘 부쩍 다 포기 하고 싶은 순간이 많은데 SNS에서 이런 사진들을 보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모두가 느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작은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SNS에 #대충살자를 검색하면 이용자들이 만든 많은 '대충살자 시리즈' 게시물들이 다양하게 올라온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SNS에 #대충살자를 검색하면 이용자들이 만든 많은 '대충살자 시리즈' 게시물들이 다양하게 올라온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118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무민 세대’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20대는 47.9%, 30대는 44.8%를 차지했다. 또 이들의 60.5%는 자신이 무민 세대인 이유를 ‘취업·직장 생활 등 치열한 삶에 지쳐서’라고 답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들의 취업난과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회사 생활에 지친 2030세대가 끊임없는 경쟁이나 열심히 살기를 거부하고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무민 세대’는 현재 피곤하기만 한 우리 사회에 대한 반항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생 조 모(22, 부산시 남구) 씨는 “요즘엔 주위에서 다 취업이 어렵고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이 힘들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니까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하기 싫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무민 세대’들을 향해 공감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 세대와는 달리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력해도 안된다는 핑계로 전부다 포기하고 대충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직장인 이 모(56, 경북 포항시) 씨는 “청년들이 요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은 이해한다”며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 청년들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더 노력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민 세대’가 마냥 무기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충 살자 시리즈가 진짜 대충 살고 열심히 살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작은 위안을 얻고 다시 열심히 달려갈 힘을 얻는 것이다. ‘무민 세대’들이 세상에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2030세대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달라는 것이다.

대학생 이 모(22, 경북 포항시) 씨는 “우리가 의미가 없는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단지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 대한 작은 피난처다”며 “그냥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알고 좀 더 응원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우릴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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