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5제(題), 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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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5제(題), 일곱 번째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16.02.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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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황령산 칼럼에 필자는 쓰레기와 관련된 글을 써왔다. 그 맥락을 이어서 2015년 1월 1일부터 매일 쓰레기 보고서를 쓰기 시작해서 12월 31일까지 썼다. 그 중에서 최근의 12개 꼭지를 황령산 칼럼으로 갈음한다.

 

334. 11월 30일. 月. 서울→부산. 탁한 가을날이여.

▲ 유익하지만 뭔가 비조화로운 제목(사진: 박기철).


예술가들의 작품과 사업가들의 상품

맹자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 했다. 백성들이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떳떳한 마음이 없다는 글귀(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항산항심이란 뭔가를 생산하여 먹고살 만한 일이 있어야 마음이 안정된다는 뜻이다. 도덕군자인 맹자도 이렇게 생각했다. 전국 시대의 맹자 이전에 춘추시대에 포숙아(鮑叔牙)와의 깊은 우정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管仲)도 수공업 생산이 많아지며 상업이 발달해야 부국강병한 나라가 됨을 역설했다. 이러한 실제적, 현실적, 경제적 사상으로 관중은 후에 공자나 노자처럼 관자(管子)가 되어 대선생(子)의 반열에 오른다. 2,500여 년 전 과거에도 지금처럼 항산항심과 부국강병이 중요했다. 하물며 지금 더욱 그러한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다. 인간인 예술가라고 별 다를 수는 없다. 예술가가 미술, 음악, 무용 등을 통해 미를 추구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는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돈 문제에 서는 예술인이나 일반인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실용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이 시대에 예술마저도 실용으로 해체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 때 빈센트 반 고흐나 이중섭의 헝그리 아트 정신이나 예술혼을 논하면 욕먹는다. 이제는 오히려 비싸게 팔리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이 대접받는 시대다. 공산국가인 중국에서조차 수백 억 원대에 팔리는 미술 작품이 제작되며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000억대 부를 쌓은 미술가나 조각가가 있다. 그러니 예술가들도 회계를 알아야 하는 시대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절세 요령도 터득해야 한다. 예술경영과 마케팅을 알아야 한다. 다 맞는 옳은 말이다. 그런데 "예술가를 위한 회계관리"라는 저 강의 타이틀이 안어울려 보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뭔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인정받을 작품이 쓰고 버려져 쓰레기가 되고 마는 소비재 상품과 비슷비슷해지기 때문일까?

 

335. 12월 1일. 火. 부산. 밝아졌다.

▲ 야박해지는 화장실 인심(사진: 박기철)


우리에게도 닥칠지 모를 유료 화장실

우리나라는 인심이 좋은 나라다. 물 인심은 세계 최고다. 예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 오면서 맥콜 플라스틱병 하나만 지니며 식당에서 물을 얻어 먹은 적이 있다. 보름 동안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다. 물 인심이 야박한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은 한국에서 겪은 가장 커다란 문화적 차이가 식당에서 공짜로 물 주는 것이란다. 세계 거의 대부분 국가의 식당에서 물은 사먹는 것이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외국 식당에서 물을 사먹는 것은 처음에 문화적 충격이다. 또 우리나라는 화장실 인심도 가히 세계 최고다. 길 가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식당에 들어가 화장실 좀 쓰겠다고 하는데 거절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화장실은 거의 유료다. 그래서 돈 내고 화장실을 쓰는 것 역시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던 우리나라의 화장실 인심이 조금씩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돈 내고 쓰는 화장실은 없지만 화장실 문이 개방되어 있지 않고 점점 닫겨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문화를 선도하는 스타벅스류 커피집 등에서 화장실 비밀번호가 찍힌 영수증을 줘서 손님들한테만 개방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도 언젠가 유료화장실 시대가 올 것같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관리가 엉망이라 지저분한 공중화장실보다 관리가 잘 되어 깨끗한 유료화장실이 더 나는 사회적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외국여행 시에 우리 돈 500원 정도로 깨끗한 유료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더 기분좋게 느껴진다. 하지만 살아온 문화를 무시 못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화장실 인심이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 살기좋은 문화가 유지되려면 화장실을 쓰면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며 깨끗하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료화장실이 대세인 글로벌 흐름에 휩싸여 저들처럼 돈내고 일보는 시대가 올 것이다.

336. 12월 2일. 水. 부산. 가을비인가? 겨울비인가?

▲ 소의 세 번째 위 처녑과 간(사진: 박기철)


소의 간, 내 몸의 간, 가이아의 간

얼마 식당에서 소머리곰탕을 먹었다. 곰탕에 들어간 고기가 맛있었다. 한 번 실컷 먹고 싶어서 큰 맘 먹고부산 학장동에 있는 축산시장에서 소머리를 하나 샀다. 암소 소머리 하나가 12만 원이란다. 여름철에는 절반 정도 싼데 겨울철에는 배가 비싸단다. 하나도 깎지 않고 사니 주인이 서비스라며 저 뻘건 소의 간을 듬뿍 베어준다. 소 간의 전체적인 모양을 난생 처음 보았다. 도대체 저 징그러운 걸 집에 가져 가면 먹을 수 있으려나? 가면서 상하지는 않을까? 괜히 먹고 배탈이나 나는 건 아닐까?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잡아 가장 먼저 파먹는 것이 간이라는데 그만큼 가장 맛있는 부위라지만. 간은 동물의 신체에서 가장 큰 장기(臟器)다. 사람 간의 무게는 체중의 2% 정도로 60kg 몸무게라면 1.2kg 정도다. 소 간 무게는 체중의 1% 정도로 700kg 소라면 7kg 정도다. 몸에서 가장 커다란 간인 만큼 간에서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가장 커다란 많은 일들이 진행된다. 장으로부터 흡수된 여러 영양소들의 대사기능과 몸에 필요한 필수성분의 생성기능은 물론 해독기능이나 면역기능 등이다. 모 약 광고에 "간 때문이야!"라는 문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간의 건강은 몸의 건강을 좌우한다. 간은 이식을 위해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신비의 장기다. 저 간의 주우(主牛)였던 소는 건강했던 것같다. 간이 싱싱하다. 그런데 간에 이상이 생기면 모양, 색상, 탄력이 변한다. 저 간을 보니 내 몸 속의 간 상태가 궁금하다. 며칠 전 과음했었기에 별로 좋을 것같지 않아도 축산시장까지 온 것은 간이 그나마 건강해서일까? 지구 생태계(Gaia) 역시 생명체라면 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간 역할을 하는 곳이 있어서 쓰레기가 버려져도 그나마 회복되는 것일까? 하지만 가이아의 간이 감당할 수 없다면 참지 못하고 쓰레기 투기자인 인간에게 손을 쓸 것같다. 소머리곰탕을 끓이면서 집에 가지고 온 날 간을 베어 소금 참기름에 찍어 먹으니 고소하니 맛있다. 먹은 기분은 그리 웬지 편치 않아도.

 

337. 12월 3일. 木. 부산.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다.

▲ 한 대접이나 나온 소기름(사진: 박기철)


과거에 먹었지만 이제 못먹게 된 지방

어제 산 소머리의 1/5 정도로만 곰탕을 끓여서 식혔다. 아침에 뚜껑을 여니 기름이 두껍게 떠 있었다. 원래 소는 풀이나 옥수수로 만든 식물성 사료만 먹는데 도대체 어디서 저 많은 기름들이 나왔는지 신기하다. 저 우지(牛脂)를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쌓여 고지혈증에 걸린단다. 그런데 소를 꼼짝못하게 하여 살코기 촘촘히 지방(fat)이 박힌 소고기가 A++ 등급으로 비싸게 팔리니 아이러니다. 마블링된 고기에서도 저런 소기름이 뭉텅이로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1989년 그런 우지로, 그것도 미국에서 공업용 우지로 분류되는 소기름으로 라면을 튀겨 만들었다는 투서가 검찰에 접수되었다. 이에 당시의 언론은 못믿을 기업이라며 엄청난 공격을 퍼대고 국민들은 이에 이끌려 삼양라면을 불신하고 검찰은 죄가 크다며 기소했다. 1997년 8년 간의 지리한 소송을 거쳐 결국 대법원에서 아무 죄가 없다며 무죄판결이 났다. 하지만 회사는 도저히 제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이 사건은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과 정의를 추구하는 검찰의 무모함을 알려주는 생생한 사례다. 아울러 그냥 공업용 우지가 아닌 식품공업용 우지로 만든 라면이 아주 해롭지 않다는 점을 밝힌 사례였다. 지금처럼 식용유가 없었을 때 돼지기름(lard)이나 소기름(vet)은 자연스러운 훌륭한 조리용 지방이었다. 사실 저 포화지방인 소기름보다 더 해로운 것은 불포화지방인 식물성 지방을 마가린이나 쇼트닝 등으로 굳힐 때 생기는 트랜스 지방이다. 팝콘, 케익, 스낵, 튀김, 과자 등을 먹으며 우리는 알게 모르게 트랜스 지방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트랜스 지방은 19세기 이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방이다. 이 지방이 몸에 들어와 세포막의 성분이 되면 세포의 활동이 혼미해져 우리 몸은 고장이 난다. 그래도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게 하는 트랜스 지방이다 보니 건강은 늘 뒷자리로 밀려난다. 삼양라면 우지사건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인데도. 아무튼 아무 죄없는 저 소기름을 어찌 쓰레기로 버릴지 고민이다.

 

338. 12월 4일. 金. 부산. 내복입어야 할 겨울이다.

▲ 귀 기울이며 듣는 대견한 아이들(사진: 박기철)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과학

<금요일에 과학터치>라는 강연은 2010년 1월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서울 등 5개 지역을 순회했는데, 이제는 5개 지역마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실시한다.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연구성과를 연구 책임자들이 국민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과학지식 나눔사업이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참여한 적이 있는데, 구독하는 국제신문 금요일 자에 안내되기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영화의 전당’에서 흘러간 명화를 보려다가 맘에 드는 영화가 없기에 인근에서 이 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연제목이 ‘바이오 연구의 현재와 미래’다. 앞자리는 주로 초등학생들이다. 저 어린애들이 저 어려운 내용을 알아 들을 수 있을까?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경청하며 메모하고 끝까지 듣더라는 것이다. 딱 두 명에게만 주어진 질문도 저 아이들이 했다. 경청해서 듣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강연 후에 질문하는 애들이 하도 대견해서 말을 건넸다. 알고보니 5 ․ 6학년 형제였다. 내 뒤에 엄마가 있었는데, 두 아들은 3년 전부터 거의 매주 참여했다고 한다. 아이들보다 엄마가 더 대단하다. 그 어떤 과외공부보다 유익한 교육임을 알며 아이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저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다. 매주 어려운 과학 강연을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 박사 교수님한테 매주 듣는데,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매우 쉽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 명민한 어린애들한테 나도 내 머릿속 생각을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물론 나는 자연과학자가 아니기에 저 강연자 자리에 설 수는 없겠지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과학을 바탕으로 돈 벌 수 있는 과학산업보다 과학을 하더라도 이 세상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며 생명체들이 생태계 안에서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쓰레기 과학(Entropy Science)에 관해 들려주고 싶다. 바이오라면 생명과학이나 생명공학보다 생명윤리나 생명철학일 것이다. 이를 듣고 아이들이 오로지 돈많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만.

 

339. 12월 5일. 土. 부산. 적당한 날씨다.

▲ 마술에도 철학이 있다는 마술사(사진: 박기철)


마술철학과 우리가 가진 삶의 철학

마술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4,7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는 새를 참수한 다음 머리를 붙여서 살리는 마술이 있었단다. 서커스가 동작으로 곡예나 묘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마술(魔術)의 사전적 정의는 재빠른 손놀림이나 여러 가지 장치, 속임수 따위를 써서 불가사의한 일을 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마술사(magician)가 벌이는 매직 쇼를 보면 정말로 기가 막힌다. 나는 1980년대에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내한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마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단두대로 사람 몸을 두 동강 내어 상체와 하체가 따로 따로 무대 위를 왔다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마술은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기 위해 자주 초청된다. 오늘 ‘만디아트 만디그래피 사진전’에서도 마술이 선보였는데 그 마술도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저 두 마술사가 신문을 갈기갈기 찢은 후 하나 둘 셋 ‘쨘’하니까 찢어진 신문들은 온데간데 없고 찢어지지 않은 한 장의 신문이 있었다. 분명히 눈속임일텐데 그 트릭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마술을 선보인 마술사가 하는 말이 내 귀에 찰싹 달라 붙었다.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트릭을 위한 과학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도 철학이 있단다. “마술철학이라!” 최현우라는 마술사는 마술의 비법을 알려주지 말 것, 마술의 결과를 알려주지 말 것, 같은 사람에게 같은 마술을 두 번 하지 말 것과 같은 마술의 3원칙을 깨는 것이 자신의 마술철학이라고 한단다. 이은결이라는 마술사는 스토리가 있는 마술공연을 자신의 마술철학으로 삼는단다. 이들의 철학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개인적 주관일 것이다.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쓰레기로 엮이는 글을 쓰는 나도 내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얼마 전 PR철학 연구위원회의 장이라는 감투를 썼는데, 나의 철학을 사람들이 알아준 것일까? 아직 부족하다. 마술철학이란 말을 듣고 나 자신을 돌아본다.

 

340. 12월 6일. 日. 부산. 기분좋게 흐리다.

▲ 서면 롯데백화점 바로 옆 표지석(사진: 박기철)


늘 지나면서 평생 못볼지 모를 일

심리학 용어 중에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그리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잃어버린 모자와 똑같은 모자를 만들고싶어 뜨개질 수예점을 찾는데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바로 내가 매일 오가던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었다. 녹색 신호를 기다리며 그 집을 수없이 보아 왔을텐데 내가 찾으려니 그 때서야 처음 본 것이다. 정말로 나는 선택적 지각을 해왔던 것이다. 지금도 선택적 지각을 하고 있고 또 똑같이 영락없이 할 것이다. 선택적 지각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만일 선택적으로 지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머리 창고 용량이 넘쳐 터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적 지각이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다니며, 그래서 앞돌이 앞순이가 되어 오로지 목적한 바에만 관심가지며 살면 위 아래나 옆이나 뒤는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재미없게 사는 비결이다. 우리는 때로 윗돌이, 윗순이, 앗돌이, 앗순이, 옆돌이, 옆순이, 뒷돌이, 뒷순이가 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재미도 생기고 흥미있고 의미있는 일도 우연히 만나기 쉽다. 예전에 부산의 동천 살리기 모임에서 추진하는 동천 유역 걷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면 롯데백화점을 지날 무렵, 안내자가 사진의 저 표지석을 소개해 주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자 국군은 부산으로 후퇴했다. 대한민국이 망할지 모를 절대절명 위기였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8일 서울이 다시 수복되기까지 결정적인 기간 중이던 8월 23일 바로 이 자리에 유엔군 사령부 산하의 스웨덴 야전병원이 설치되었단다. 이 곳을 많이 지나 다녔으면서도 처음 보았기에 나의 선택적 지각을 실감했다. 아마도 많은 부산시민이 여기를 지나면서도 이런 게 있다는 걸 나처럼 잘 모를 것이다.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앞만 보고 살면 쓰레기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쓰레기에 꽂혀 사니 쓰레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쓸어져 담기지도 못해 구천을 맴도는 쓰레기들의 애원 소리도 들린다.

 

341. 12월 7일. 月. 부산. 살기좋은 날씨다.

▲ 또 다시 새로 세워진 안내판(사진: 박기철)


기려서는 안될 것을 기리는 이 시대

2013년 3월 12일 내 일기에 나는 이 곳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前略) 깡패 영화들 중 십중팔구는 부산에서 촬영되는 것같다. 영화 <친구>는 가장 대표적이다. 부산 범일동 국제호텔 앞의 저 왼쪽 나무 오른쪽 옆이 장동건이 칼맞고 죽은 곳이다. 자객으로부터 난자당하고 죽으면서 말한 장동건의 대사는 유명하다. '고만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저기에 장동건이 칼맞고 죽은 곳이라는 장소임을 자랑스럽게 기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뭘 저런 걸 다 알리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거된 안내판 자리가 저렇게 땜빵질되었다. 바로 길 건너 만물수퍼 주인 아주머니한테 안내판이 언제 철거되었는지 물으니 1년 정도 되었단다. 흉물이 없어진 것을 보니 기분은 좋다. 그런데 문제는 ‘왜 없앴을까?’이다. 10년도 더 된 영화라 이제 필요없어져서 없앴을까? 아니면 철이 들어 볼쌍사납게 느껴져서 없앴을까? 만일 후자라면 부산은 살기좋은 도시로 될 가능성이 커진다. 혹시 전자라면 부산은 더욱 광폭한 도시가 될 것이다. 부디 후자이기를 바란다.<끝>" 그런데 오늘 동창모임이 있어서 이 부근을 지나려니 다시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결국 나의 예상은 둘 다 틀렸다. 10년도 더 된 영화라 이제 필요 없어져서 없앤 것도 아니고 철이 들어 볼쌍사납게 느껴져서 없앴던 것도 아니었다. 안내판이 오래되어 새 안내판을 세우려고 잠시 없앴던 것이다. 헐! 하긴 여기는 일부러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는 청소파업, 바닷물을 끌어 들인 동천 오염 해결, 쓰레기 불법투기 망신지역 안내판 설치, 자동차 블랙박스를 이용한 쓰레기 불법투기자 감시, 다른 곳 은행잎을 끌어와 하는 낙엽 축제 등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부산진구 관할지역이다. 그러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장동건을 불러와 <친구> 영화 축제를 안하는 게 다행이다. 저 안내판에 쓰인 ‘친구의 거리’라는 글자가 심하게 거슬린다. 여기는 깡패의 거리인가? 폭력의 거리인가? 테러의 거리인가?

 

342. 12월 8일. 火. 부산. 포근해졌다.

▲ 근사하게 들리는 영어 단어(사진: 박기철)


세대강도가 되는 엔트로피 가속행위

예전에 길을 지나다 Entropy라는 간판이 달린 커피집을 지난 적이 있다. 며칠 전 중고품 매장에서 Entropy라는 로고가 달린 모자를 보고 하도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상호명이나 로고로 쓰이는 엔트로피란 근사하게 들리지만 매우 무서운 말이다. 클라우시스(Rudolf Clausius, 1822~1888)가 Energy와 변형을 뜻하는 tropy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조어로 변형된 에너지다. 어떻게 변형된 것일까? 질서있는 에너지가 무질서한 에너지인 엔트로피로 변형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로 응집된 유용한 에너지가 분산되어 무용한 에너지인 엔트로피로 변형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엔트로피란 무질서해서 쓸모없는 에너지다. 연료 탱크에 담긴 휘발유 1리터는 질서있는 쓸모있는 에너지다. 그런데 자동차 연료로 쓰이고 나면 무질서한 쓸모없는 에너지인 엔트로피로 변형되어 연료탱크 밖으로 흩어져서 다시 탱크 안에 담을 수 없다. 설령 어떤 특수 장치를 써서 다시 담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려면 담겨질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니 엔트로피는 증대한다. 열과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고 하나의 고립계에서 에너지는 보존되지만(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는 엔트로피로 변형되며 하나의 고립계에서 총 엔트로피를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열역학 제2법칙). 제2법칙은 가장 근본적인 세상 흐름이기도 하면서 가장 무서운 원리다. 물론 싹이 트고 새끼가 태어나는 생명체의 탄생이 엔트로피를 줄이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같지만, 전체적으로 따지면 그 생명체를 탄생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므로 총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결국 우주라는 고립계는 엔트로피가 최대치가 되어 더 이상 흐를 수 없는 열적 죽음의 상태를 향해 진행 중이다. 이는 모든 생명의 종말이며 세상의 종말이다. 엔트로피는 쓰레기다.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행위는 엔트로피를 빨리 증가시켜 종말의 시기를 더욱 앞당기니 우리 세대한테는 피해가 없더라도 우리 먼 후손에게 세대강도 짓을 하는 행위가 된다.

 

343. 12월 9일. 水. 부산. 살기좋은 날씨다.

▲ 뭔가 땅 속에 벌어지는 문제(사진: 박기철)


지하시설 정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

분명히 여기 이곳 분리형 오수관 공사를 마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또 땅이 파헤쳐져 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오수관 공사와 상관없는 가스회사 담당자가 여기 있는 것으로 보아 오수관 공사를 하다가 가스관을 건드린 것같다.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땅 밑은 땅 위만큼 복잡하다. 전기줄, 통신선, 상수도, 하수도, 가스관 등이 얽히고 설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아무렇게나 땅을 파다간 이 것들을 건드릴 수 있다. 굴삭기로 땅을 파다가 전기줄을 건드리면 어딘가에 정전이 되고, 통신선을 건드리면 어느 집에 인터넷이 안되고, 요즘은 안테나로 전파를 받는 TV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신호를 받는 TV이다 보니 TV가 안되고, 상수도를 건드리면 수돗물이 길거리로 줄줄 새며 어느 집에 수돗물이 안나오고, 가스관을 건드리면 대형 폭발 위험이 크고 어느 집에 가스가 안나올 것이다. 그래서 땅을 팔 때 이런 사고가 안나도록 지하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자세한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하공간 통합지도다. 지하공간 통합지도는 지하시설물(상수도, 하수도, 통신, 난방, 전력, 가스), 지하구조물(공동구, 지하철, 지하보도, 지하차도,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지반(시추, 관정, 지질) 등 15개 정보를 모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게 없단다. 이제서야 만들려고 한단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까지 특별시, 광역시를 대상으로 완료하고 그 외 시급 지자체는 2019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란다. 최근에 멀쩡한 땅이 폭싹 꺼지는 씽크홀(sink hole)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에 대한 근본대책을 마련하려고 시작하게 되었단다. 이제라도 하니 다행이다. 경제규모가 크다고 선진국일 순 없다. 이런 기초적인 것들이 되어 있을 때 선진국이다. 특히 온갖 쓰레기 처리를 잘 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특히 땅으로 버리는 하수도 시설이 온전하게 돌아갈 때 선진국이 된다. 저 꼬마 숙녀가 아가씨가 될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려나? 

 

344. 12월 10일. 木. 부산. 종일 축축한 비가 온다.

▲ 영화 종료후 나가는 소수 관객(사진: 박기철)


규모에 비해 이용률이 떨어지는 건물

부산에는 최대급이 많다. 우선 센텀에 있는 신세계백화점은 세계 최대란다. 동래 온천동에 있는 허심청은 아마 세계 최대의 목욕탕일지 모른다. 처음 가보고 깜짝 놀랐다. 한 목욕탕 안에 웬 탕들이 그리도 많은지 하나하나 다 들어가면서 목욕하려면 두 세 시간 걸릴 것이다. 해운대 우동에 있는 마린시티도 엄청나다. 서울에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같은 고급 아파트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지만 부산의 마린시티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바닷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또 하나 최대급을 꼽으라면 영화관이다. 바로 ‘영화의전당’이다. 2011년 9월에 개관했다. 부산시가 국제공모를 받아 선정된 오스트리아 설계자의 작품이다. 1,700억 원을 들여 지었다. 세계최장 외팔보(片持梁) 지붕은 기네스 인증도 받았다. 초현실주의 건축가로 유명하다는 설계자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난해한 구조다. 12만개의 LED로 각양각색의 빛깔을 연출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의 덮개(canopy)는 환상적인 모양을 선보인다. 하지만 주변과 조화되지 않고 이용하기 불편한 구조가 늘 지적되는 건축물이다. 오늘 흘러간 명화를 보러 영화의 전당 8층에 있는 시네마테크를 갔다. 시설이 무척 좋다. 아마 가장 편안한 영화관일 것이다. 그런데 보는 사람은 10명 남짓밖에 안된다. 큰 영화관에서 적은 관람객이 영화를 보니 미안하다. 흘러간 명화를 보는 맛도 떨어진다. 별 정이 안간다. 여기로 이사오기 전에 있었던 시네마테크가 그립다. 요트경기장 안에 자리잡은 아주 작고 소박한 영화관이었다. 적은 사람이 보더라도 미안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전당에 있는 다른 영화관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 것같다. 매년 10월 열흘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만 북적인다. 부산시는 매년 엄청난 적자를 어찌 감당할지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크고 강한 부산’이라는 부산의 행정 슬로건이 빚어낸 업보다. 아마도 세계최대의 영화관을 매일 돌리느라 들어가는 에너지와 내뿜어대는 엔트로피, 즉 쓰레기에 비해 쓰임새가 적은 영화관이라 안타깝다.

 

345. 12월 11일. 金. 부산→삼랑진. 흐린 초겨울 날이다.

▲ 어른의 말씀을 듣는 학생들(사진: 박기철)


야단을 맞기보다 혼이 나는 학생들

언제부턴가 ‘어른의 부재’라는 말이 생겼다. 나이 든 노인을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어른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말았다. 성인은 주민등록 나이로 20세 이상 되는 사람이지만 어른이란 생물학적 나이와 별개의 개념이다. 호통이나 야단을 치며 훈계하는 노인을 어른이라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혼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다. 혼(魂)을 낸다는 것은 안으로부터 혼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야단을 치는 것이 밖에서 큰 소리로 상대방의 면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라면 혼을 내는 것은 작은 소리로 조용하게 안에 있는 혼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야단을 맞으면 일시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되지만 혼이 나면 지속적으로 정신이 든다. 꼰대가 야단을 친다면 어른은 혼을 낸다. 아이들은 고지식하게 나이든 사람을 꼰대라 비꼬지만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참 어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른 부재의 시대에 오늘 어른을 만났다. 부산에서 민학(民學)을 연구하고 이끄시는 70대 후반의 선생께서는 40, 50, 60대 초반인 학생들에게 부산의 여러 마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범5동 매축지 마을, 아미동 비석마을에 이어 감천동 문화마을의 순이었다. 할아버지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1시간 동안 조용히 이어지던 이야기의 막바지에 들어섰을 때 선생께서는 방바닥을 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방바닥을 치는 효과음의 이유가 있었다. 어찌 감천동 마을을 문화마을이라고 할 수 있느냐? 마을 주민들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어야 문화마을이 되는 것이지 택도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골목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알록달록한 멋진 공간을 만든다고 문화마을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학생들은 혼이 났다. 나도 혼이 났다. 나는 이 어른의 말씀을 깊이 새겨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을 모든 주민들이 자긍심을 느끼며 쓰레기 없는 깨끗하며 아름다운 살기좋은 마을을 이루어 갈 때 감히 문화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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