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인가, 감형요구서인가?...범죄자 반성문 전문 대필업체 성업 중
상태바
반성문인가, 감형요구서인가?...범죄자 반성문 전문 대필업체 성업 중
  • 부산시 해운대구 도민섭
  • 승인 2019.11.20 0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성문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 보며 쓴 글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생 때 잘못을 저질러 선생님께 반성문을 써서 제출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철이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반성문을 여러 번 써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은 반성문을 쓰라고 벌을 주는 교수는 없다. 반성문은 초등학교 때나 쓰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들은 반성을 어필하기 위해 반성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국내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반성 여부가 양형 참작의 중요한 사유로 꼽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반성하고 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이면서도 쉬운 방법을 반성문 제출로 본다. 범행의 동기와 자신의 상황, 현재 심정, 향후 마음가짐 등을 글로 써 재판부에 제출하면 판사의 재량으로 법정형을 감경 받을 수 있다.

지난해 폐지를 줍던 50대 여성을 20대 남성이 구타해 사망하게 한 ‘거제 살인 사건’ 피의자는 술을 먹고 저지른 범죄라며 감형을 시도한 것도 모자라 반성문을 20여 차례 제출해 선처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상을 분노케 했던 ‘어금니 아빠 이영학’도 사형선고를 받고 40여 차례 반성문을 제출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기도 했다. 이번 다크웹의 ‘웰컴 투 비디오’ 관련 처벌을 받은 범죄자들도 반성문을 써서 양형에 도움을 받으라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반성문을 보고 죄를 뉘우치고 교화를 바라며 범죄자의 형량을 깎아 줄 수도 있다. 평생 감옥에서 반성문만 써도 용서가 안 될 범죄자들이 겨우 종이 몇 장에 감형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반성문은 반성의 근거에 불과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범죄자들은 감형의 근거로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뉘우친다면 반성문은 재판부나 검사가 아니고 피해자나 피해자 일가족에게 써야 한다. 하지만 반성문 대부분의 시작은 늘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한다. 반성문보다는 감형요구서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렸을 적, 나에게 반성문은 단지 귀찮음을 자극할 뿐이었다. 물론 잘못된 행동에 대해 내려진 벌이었기 때문에 잘못을 인지는 했다. 그러나 얼른 쓰고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잘못한 친구와 같이 반성문의 내용을 공유하곤 했다. 범죄자들도 감형을 위해 반성문 취지를 악용하지 않는다고 보기 힘들다. 심지어 반성문 대필업체까지 성행 중이다. 반성문 대필업체들은 반성문 효과까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범죄자들이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는 일보다 감형을 위한 보여주기식 목적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애초에 교화나 재사회화의 목적으로 형량을 줄이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 시민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범죄자에 대한 철저한 격리 및 범죄에 대한 본보기를 목적으로 죄질에 맞는 처벌이 실행돼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반성 없이도 감형을 받을 수 있는 촉법소년, 공소시효, 반성문 감형 등 가해자를 위한 법이 너무 많다. 범죄자는 웃고 피해자는 우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반성문 감형.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속마음을 ‘존경하는 판사님께’로 시작되는 구태의연한 반성문 몇 장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