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년 차 러시아 여성 '덕후' 유튜버, "괴짜 개그우먼 밀레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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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년 차 러시아 여성 '덕후' 유튜버, "괴짜 개그우먼 밀레나에요"
  • 취재기자 원영준
  • 승인 2019.11.11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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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애니메이션 두 개 채널 운영 중
채널 구독자 수, 10만 향해 순항
외로운 타국 생활 최고 버팀목은 한국인 남편

흔히 우리는 어떤 한 분야에 깊이 빠져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을 ‘덕후’라고 부른다. 처음 덕후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생겼을 때 부정적인 뜻으로 유행한 탓에 덕후나 덕후의 어원인 일본말 ‘오타쿠’라고 불리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도 꺼려하는 편이다. 하지만 당당히 “나는 덕후입니다”라고 말하는 금발의 러시아 여성이 있다. 그녀는 게임과 영상 제작 덕후다. 지금 그녀는 게임과, 아시아 각국의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들을 비교하는 두 개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고향 러시아에서 먼 곳 한국까지 와서 자신의 덕후 생활을 즐기는 밀레나(37) 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녀는 유튜브 영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내 머글, 마법, 제다이 등등 여러분∼ 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러시아 기그(geek, 괴짜라는 뜻의 언어) 개그(gag) 여자 밀레나라고 해요.”

밀레나 씨가 인터뷰 중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밀레나 씨가 인터뷰 중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러시아 모스크바가 고향인 밀레나 씨는 올해로 한국에 온 지 7년째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러시아에서 디자인 계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생활도 했고 대기업 비서까지 했던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취미 생활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상 제작이었다. 평소에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혼자서 영상과 애니메이션 제작을 공부했고 영화·애니메이션·게임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다. 밀레나 씨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내가 찍은 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즐겨했다”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 일본에 가고 싶었지만, 2010년에 관광하러 가봤던 한국에 가서 살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 한국행을 부모님께 말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절대 안 된다, 그냥 러시아에서 같이 살자고 말했다. 하지만 친척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해주었고, 끝내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밀레나 씨는 현재 부산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서울 생활 일주일 만에 부산에 오게 됐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그녀 스스로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울에서는 친구들도 금방 사귀고 재미있었지만 공부보다는 술 마시는 일이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부산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신라대학교 한국어교육센터에서 2년간 한국어를 공부했다. 사실 그녀는 한국에 오기 전에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 공부를 미리 했지만 그것이 한국에 와서야 엉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신라대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교수님이 러시아에서 배웠던 한국어 교재를 보고는 이거 전부 다 틀렸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한국어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고 말했다.

밀레나 씨가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영화 제작자이자 스낵무비(10분 미만의 짧은 영상) 전문 미국 유튜버 ‘CaseyNeistat(케이시 네이스탯)’ 때문이다. 케이시 네이스탯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영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이 그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녀의 덕후 기질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곳은 유튜브 뿐이라고 직감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마음껏 영상물로 만들어 올릴 수 있어 좋다”며 “또 유튜브를 통해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하는 영상을 올리는 채널 한 개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캐릭터 피규어나 소품 리뷰 등 자신의 덕후 기질을 드러내거나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을 올리는 채널 한 개를 보유 중이다. 각 채널의 이름은 ‘밀레나 게임세상’과 ‘My Asia’다. 그녀는 “My Asia 채널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나라들을 다니면서 나라별로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은 무엇이고 어떤 캐릭터가 인기가 있는지 등 각 나라 사람들의 문화나 덕후 기질을 비교하고 싶어서 지은 채널 이름”이라고 채널 이름에 대해 설명했다.

밀레나 씨는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영상 촬영·편집·자막입력까지 모두 혼자 도맡아한다. 긴 시간 동안 혼자 해왔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자막은 러시아어, 영어, 한국어 세 언어로 영상 안에 담아야한다. 그녀는 “내가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을 다양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유튜브에 투자하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수입은 높지 않다. 지금 그녀의 생활 형편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그녀는 “수입은 적은 편”이라며 “아마도 내 유튜브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인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녀는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면 영상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입을 얻는다. 그녀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영상 제작에 참여했다. “올해 초 코믹콘(만화와 관련된 책, 캐릭터, 영화 등 모든 예술작품에 대한 소식과 행사를 진행하는 대규모 박람회)이나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등과 같이 축제가 열릴 때면 관계자들에게 연락이 와 거의 다 참여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축제가 없을 때는 유튜브에 몰두한다”고 말했다.

밀레나 씨가 최근 참여한 코믹콘과 부산국제영화제. 밀레나 씨는 생생한 현장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사진: 밀레나 유튜브 캡처).
밀레나 씨가 최근 참여한 코믹콘과 부산국제영화제. 밀레나 씨는 생생한 현장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사진: 밀레나 유튜브 캡처).

유튜브를 시작한 지 6년이 돼가는 지금, 밀레나 씨는 큰 고민에 빠졌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유튜버 생활을 포기해야하는지, 계속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녀는 “영상 조회수와 수입이 낮은 것도 힘든 점이지만 여러 덕후들의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영상 출연을 요청하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카메라에 등장하는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유독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유튜브 영상 대부분은 그녀 혼자 등장하는 것들이다. 밀레나 씨는 사실 예전에도 비슷한 고민 때문에 유튜브 계정을 한 달간 휴면상태로 바꾼 경험이 있다. 그녀는 “유튜브를 한 달 정도 안 했을 때, 결국 내 관심사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유튜브고 내가 유튜브 영상 제작을 정말 원한다는 것을 느껴 다시 시작했다. 아마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노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나 씨는 부산에서 유튜브 제작을 제외하고 다른 일을 찾아 지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거절을 경험했다. 그녀는 “부산에서 친구 사귀기도 힘들고 직장 구하기도 힘들다. 내가 나이를 잘 밝히지 않는데 그 이유가 나이를 밝히면 사람들이 나를 너무 어렵게 대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러 오라고 해서 막상 가보면 내가 외국인인 것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거절한다. 이제 사람들 눈빛만 봐도 나를 뽑기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 챌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가족들은 멀리 있기 때문에 그녀 옆을 지켜주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는 러시아한국 문화원에서 한국인 남편을 처음 만났고 메일을 통해 연락하다가 4년 전에 결혼했다. 그녀는 “고민이 생기면 남편한테 주로 털어 놓는다”고 말했다.

밀레나 씨 부부(사진: 밀레나 제공).
밀레나 씨 부부(사진: 밀레나 제공).

그녀의 현재 목표는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을 찍는 것이다. 지금 현재 My Asia 채널의 구독자는 8.77만 명이다. 10만 명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하지만 6년 만에 구독자 8만 명을 넘겼다고 생각하면 10만 명이 그리 가까운 미래만은 아니다. 그녀는 “구독자 수는 줄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며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한 영상보다는 여태 내가 계속 만들던 영상들을 꾸준히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만약 유튜브가 잘돼 수입이 증가한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제일 먼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용돈을 달라고 말은 안 하지만 돈을 벌게 된다면 꼭 용돈을 드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처음 유튜브를 만들 때의 취지에 맞게 중국과 일본 여행도 가고,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튜브를 통해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영상물로 제작하는 하나의 취미생활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하며 “유튜브는 내 인생의 절반이자 동반자와 같다”고 유튜브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내비쳤다. 그녀의 유튜브 인생은 여전히 매일매일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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