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의 선한 사회화 vs ‘더 기버: 기억전달자’ 의 악한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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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소년’의 선한 사회화 vs ‘더 기버: 기억전달자’ 의 악한 사회화
  • 부산시 연제구 최다영
  • 승인 2019.11.0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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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개봉한 <늑대소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야생성이 충만한 늑대소년 ‘철수’가 소녀 ‘순이’를 만나 점점 인간으로서 사회화되어가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인지해가는 영화라고 언론들이 평했다.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같은 종인 인간인데 극중 늑대소년인 철수는 왜 모든 면에서 인간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몇 년 뒤, 대학에서 사회화에 대해 배웠는데, 그 둘의 행동들이 달랐던 이유가 사회화의 결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들이 여태껏 학습해온 규범과 체계가 달랐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였다.

사회화는 후천적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둘이 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행동의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는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영화에서도 철수는 순이를 만난 이후로 참고 기다리는 법, 글을 읽고 쓰는 법 등을 배워나가면서 사회화를 통해 점차 인간처럼 변해간다. 철수는 순이 식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방식을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영화가 한 개 더 떠올랐는데, 바로 2014년에 개봉한 <더 기버: 기억전달자>라는 영화다. 영화에서, 과거의 전쟁, 차별, 가난 등에 대한 고통을 맛 본 인간들이 이러한 고통을 없애고자 모두가 행복하고 동등한 세상을 만들기로 한다. 이곳의 설계자들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크기의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고 여겨 사람들로부터 예전 세상 기억, 감정 선택 권리들을 모두 빼앗는다. 인종차별의 이유로 그들의 시야는 온통 흑백으로만 보이게 통제한다. 단, 이곳의 설계자인 고위층과 ‘기억전달자(예전 세상의 모든 기억을 자신의 후임에게 알려주는 역할)’라는 직책은 예전 세상의 기억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세계 사람들은 이상적인 인간의 후천적 학습을 받지 못하고 고위층이 정해놓은 규범과 체계대로만 학습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고위층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만다. 모든 사회 공동체의 규범과 체계가 꼭 올바른 학습내용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배웠다. 기득권층(모두의 동등한 행복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유의 권리를 뺏어가는 것은 악한 행동이므로)에 의하여 그들의 이익을 위해 세워진 체계는 잘못된 체계라는 것을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는 사회화를 통해 배우고 습득하는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과연 사회의 제도와 관습이 이상적으로 정말 옳은 것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것이 지배층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수단은 아닌지 구분하여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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