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헬기 사고에서 보인 KBS 단독 보도 욕심의 늪
상태바
독도 헬기 사고에서 보인 KBS 단독 보도 욕심의 늪
  • 부산시 동구 박신
  • 승인 2019.11.06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월 31일 밤 독도 인근 해상에서 119중앙구조본부 헬기가 추락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구조대원과 부상자 및 보호자를 태운 헬기는 독도 인근 해상에서 응급환자를 태우고 이륙 2분 만에 추락했다고 한다. 탑승했던 7명 전원이 사망해 안타깝고 충격이 큰 사고였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재난주관 방송사인 KBS의 독도 헬기 추락사고 관련 단독 보도가 나에게 두 번째 충격을 안겼다.

KBS‘뉴스 9’는 지난 2일 ‘독도 추락 헬기 이륙 영상 확보·추락 직전 짧은 비행’이라는 제목의 단독 뉴스를 보도했다. 이 영상에는 추락사고 직전 소방헬기의 짧은 비행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독도 파노라마 영상 장비 점검 차 독도에 체류하면서 야간작업을 하던 KBS 직원이 늦은 밤 착륙하는 헬기를 우연히 촬영한 것이다. 문제는 헬기 사고 후 이 영상을 독도경비대와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KBS 직원은 헬기 사고 관련 영상을 보유한 사실을 숨기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은 KBS 보도가 나간 지 1시간 뒤 독도경비대 박모 팀장이 그 기사에 KBS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그는 댓글에서 KBS 직원이 촬영한 영상 속에는 헬기 추락 지점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될 수 있는 헬기 진행 방향이 나타나는데 KBS 직원이 그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KBS는 직원이 헬기 진행 방향이 왜 필요한지를 잘 인식하지 못해서 방송에 나간 장면 이외의 영상은 없다고 대답한 것이라며 KBS가 고의로 비협조했다는 독도 경비대 지적에 반박했다.

그러나 KBS의 이러한 반박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KBS는 재난주관방송사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KBS는 사고 관련 영상을 일부분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숨겨서 사고 수습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사고 영상 전체에 나타나 있는 장면이 사고 수습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독도경비대가 판단할 일이다. KBS 직원이 영상이 사고 수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영상 전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궁색해 보인다.

KBS는 헬기 관련 영상의 일부분만 제공해서 KBS가 단독 보도를 위해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KBS는 단독 보도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언론 윤리의식에 어긋난 보도 행위를 한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단순히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KBS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헬기 이륙 영상을 숨긴 이유와 원본 영상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책을 하루빨리 내놔야 할 것이다.

그리고 KBS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 단독 보도에만 매몰되어 있는 언론 생태계를 공영방송으로써 어떻게 바꾸어나갈지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인데 KBS가 제대로 된 언론 시스템을 구축하여 다른 언론사들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한 KBS는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 만큼 국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 언론의 생태계를 제대로 바꾸는 일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KBS는 우선 떨어진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시청자들은 신뢰도 낮은 뉴스는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순히 단독보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떨어진 신뢰도가 갑자기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단독보도보다는 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뉴스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JTBC 뉴스룸의 ‘밀착카메라’라는 순서가 있는데 주로 다루는 내용은 실생활에서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 혹은 부조리한 현실을 면밀히 보도한다. 단순히 기자가 하는 리포트와 달리 실제 현장을 꼼꼼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좋은 뉴스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KBS는 단독 보도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여야 정치 상황과 대형사건 사고 등 굵직한 뉴스도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부조리와 불편함을 보도하는 일 역시 충분히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다. 현재 KBS 뉴스 보도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언론사들의 보도를 보면 큰 사건 사고에만 집중한 채 실생활에 필요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KBS라도 솔선수범하여 우리 주변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줄 필요가 있다.

이번 독도 헬기 관련 KBS의 부도덕한 행위는 그렇지 않아도 떨어지는 시청률과 신뢰도에 불을 붙인 격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KBS는 이번 사건을 빌미 삼아 기형적인 보도 시스템을 손볼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KBS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국민들이 믿을 수 있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언론사로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