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뮤지컬, 수화 합창단, 그리고 수화교실도 개설
해외 공연도 준비 중...일반인 관심 끌기 위해 주말마다 구슬땀
매주 주말 오전, 부산 중구 40계단 문화원에서는 특별한 뮤지컬 연습이 진행된다. 여느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노래와 함께 대사, 몸짓, 그리고 다른 공연에서 보기 드문 빠른 수화(手話)가 곁들여진 뮤지컬 연습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속한 단체는 수화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 단체 ‘조용한 수다’다. 김석휘(38, 부산시 강서구) 씨가 단장을 맡고 있는 조용한 수다 연습실에서는 항상 열기가 불타오른다.
조용한 수다 김석휘 단장은 처음 이 단체를 만든 이다. 그는 처음부터 수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김 단장은 10여 년 전 한 항공사에서 일하면서 공항 내에서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는 청각장애인들을 자주 봐 왔다. 그런데 그들이 공항 내에서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대부분의 공항에서는 필수로 수화사를 배치하고 있지만 김 단장이 일했을 당시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출입국 심사에 문제가 생겨서 빨리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글씨를 써서 대화하거나, 수화통역사가 올 때까지 2시간가량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김 단장은 “손님들이 빨리 가야 우리도 집에 가지 않겠어요? 그래서 당시부터 수화통역사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항공사를 퇴사하게 된 김석휘 씨는 다른 직업을 찾다 사회복지사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원래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시 공항에서 일을 떠올리며 수화부터 배울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당시에 부산에는 수화를 제대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 겨우 어렵게 수화를 가르쳐 주는 한 사립 기관을 찾게 됐다. 김 단장은 그곳에서 처음 수화를 배웠다. 김 단장은 “그때 눈이 뜨인 느낌이었죠. 내가 이걸 해야 청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당시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 몇몇을 모아 ‘조용한 수다’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물론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장애교육시설이 잘 돼 있는 수도권과 달리 부산만 해도 너무 수준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을 곳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김 단장은 먼저 홍보부터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수화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수화로 노래를 만들어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버스킹이라는 단어가 귀에 낯설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그는 부산역, 40계단 앞 공터를 무대 삼아 수화공연을 해 왔다. 그게 차츰 장애센터 등지에 알려지며 지금의 조용한 수다가 된 것이다.
조용한 수다는 현재 수어공연단, 소통문화교육단, 수화합창단 3팀,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생각보다 규모가 큰 비영리 단체다. 특히 수어공연단은 약 15분 분량의 전문적인 수어 퍼포먼스 뮤지컬을 보여주는 팀이다. 이들은 프로급의 연기자들로 구성돼 있다. 올해는 가수 안예은의 노래 <홍연>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준비해 선보이는 중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청각장애인들의 사연을 받아 각색하고 뮤지컬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대부분 이곳 팀원들은 자원봉사자들이며 별개의 직업들을 가지고 있다. 대구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도 있고, 연구단지에서 일하는 연구원도 있으며, 김 단장도 사회복지 일을 하다가 지금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이 또는 그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신념 하나로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이곳에 모인다. 그들은 직접 돈을 내서 대관하고 1년 가까이 노력해 무대를 하나 만들어 낸다. 김 단장은 “우리 팀원 중에는 이중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웃었다.
조용한 수다는 장애인 단체 내에서는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수화 전문 공연 팀으로 유명하며, 전국대회에서는 부산 대표 팀으로 2년 연속이나 참여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에서 유명한 것은 한계가 있었다. 정작 일반인들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청각장애인들도 조용한 수다 팀의 공연에 관심이 적었다. 하지만 한 번 무대를 본 청각장애인들은 그들에게 항상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했다. 김석휘 단장은 거기서 힘을 얻는다.
김 단장은 “우리 단체의 활동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같이 서서 봐주는 것”이라고 했다. 청각장애인들을 일반인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화에 대한 건청인(건전한 청력을 지닌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장애가 주변에서 낯설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조용한 수다는 지난 3년 전부터는 강서구, 중구, 해운대구에서 토, 일요일마다 수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여태까지 이 수화교실을 지나쳐간 학생 수만 해도 2000명이 넘는다. 또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치매 예방에도 좋은 수화를 이용해 합창단을 만들어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
조용한 수다는 이제 한국을 넘어 해외를 넘보고 있다. 내년에는 일본 무대가 예정돼 있어 준비에 한창이다. 김 단장은 “수화는 자주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익숙해지면 생각도 달라집니다. 수화를 쓰는 사람들은 신기한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수화와 점자, 청각장애 교육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