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논란 불붙인 서울시 ‘청년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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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논란 불붙인 서울시 ‘청년수당’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1.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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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작은 것 같다. 기본소득 수혜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는 비율은 비수혜자들과 비교해 더 낫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핀란드 사회복지부장관 피르코 마틸라는 올해 2월 8일 공식 석상에서 2년간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같은 날 마틸라 장관은 “핀란드는 기본소득을 도입할 의사가 없다”고 발표했다.

자그마치 1970년 때부터 기본소득을 논의해 온 핀란드는 재작년부터 그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에 나섰다.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실업자 중 2000명을 임의로 선발해 월 560유로(월 72만 원)의 소득을 지급했다. 그 결과, 기본소득을 받은 이들은 1년에 49.64일을 일했고, 기본소득을 받지 않은 대조군은 49.25일을 일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부의 애초 기대와 달리 기본소득이 고용증대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 핀란드가 2년간 벌인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부정하며 오히려 기본소득 대상자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시도가 있다. 바로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3일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2020 서울시 청년 출발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서울시는 내년부터 월 50만 원의 구직비용을 최대 6개월간 지원하는 일명 ‘청년수당’의 수급자를 기존 연 7000명에서 앞으로 3년간 10만 명으로 4배 이상 대폭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기존엔 중위소득 150% 미만, 만 19~34세 서울 거주자 등 기본요건을 충족하는 미취업 청년 가운데 대상자를 선발했으나, 앞으로는 기본 요건을 충족하는 청년 누구나 별도의 선발 과정 없이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서울시는 같은 날 청년 1인 가구에 월 20만 원의 임대료를 최대 10개월간 지원하는 ‘청년 월세지원’정책을 별로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정책만 놓고 보면, 내년에만 1112억 원, 향후 3년간 4300억 원의 재정이 청년 정책에 투입된다.

청년수당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혜자가 ‘구직활동 지원’이라는 본래 의도와 다른 용도로 돈을 쓰더라도 이를 막을 실질적인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청년수당으로 지급된 60억 원 가운데 10%도 안 되는 5억 원만이 구직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지난 6월 28일 공개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5월 세부 사용 내역’보고서에 따르면, 한 청년수당 수급자는 스트레스 해소 명목으로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를 40만 4800원에 구매했다. 이 밖에도 태블릿PC 구매, 헤드폰 구매(41만 9000원), 숙면 영양제 구매(49만 6000원) 등 취업 활동과 연관 짓기 어려운 사용내역이 다수 적발됐다. 더구나 30만 원 이하 결제 금액은 사용내역을 밝힐 필요도, 구직활동과의 관련성을 입증할 필요도 없어 청년수당이 학원비·교재비 등 직접적인 구직활동에 얼마 만큼 쓰이는지 입증할만한 자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청년수당이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기 위함’이라는 본래 의도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서울시는 해결 의지도, 능력도 없는 듯 보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수당 수혜자 중) 헤드폰이라든지 아이패드를 구매한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인터넷 강의 듣는 데 필요하다고 하면 당연히 구직활동과 관련성은 있기 때문에 승인을 해준다”라고 답변했다. 이 말은 구직활동과 관련해 어떻게든 말을 갖다 붙이면 대부분 승인을 해준다는 말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발 청년들을 좀 믿어달라”는 한결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안을 강구해 대책을 내놓기보단 감정에 호소하는 이 같은 대처 방식은 오히려 해당 정책에 대한 포퓰리즘 논란만 부추길 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3일 청년수당 정책을 두고 “청년들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모두가 같은 혜택을 받으면 결과적으로 기울기는 여전한 셈이니 공정한 출발선에 가까워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알바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들은 한 달에 평균 29만 7000원의 금액을 취업 준비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오로지 본인의 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에게 이는 틀림없이 부담되는 금액이다. 이러한 청년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구직활동에 힘을 보태주겠다는 청년수당제도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수천억 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정책인 만큼 시민에게 청년수당의 사용실태와 그 성과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또한, 서울시는 청년수당 수혜자가 30만 원 미만 지출에 한해서도 그 사용 내역과 구직활동과의 관련성을 밝히게 하는 등 청년수당이 본래 목적에 맞게 잘 사용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체계를 당장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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