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의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보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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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의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보내볼까?”
  • 취재기자 박상현
  • 승인 2019.11.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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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 이바구길 ‘유치환 우체통’에 편지 보내면 1년 뒤 배달
바다 보며 유치환의 시 감상하는 카페가 백미

<우편국에서>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너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는 유리문 밖으로

연보랏빛 갯바람이 할 일 없이 지나가고

노상 파아란 하늘만이 열려 있는데

시인의 방에 전시된 유치환 시인의 사진(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시인의 방에 전시된 유치환 시인의 사진(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시를 읽으면, 우리는 그 시인의 삶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유치환 시인의 시 <우편국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보내던 우편국에서 느낀 감정을 시로 써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유치환 시인은 경남 통영 출신의 문학인으로, 대표작은 국정교과서에 실린 <깃발>이다. 그 밖에도 <행복>, <절도> 등의 작품도 많이 애창되는 작품들이다. 유치환 시인은 1940년 통영협성 상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교직자의 삶을 시작했다. 또한 경남 함양에 위치한 안의중학교 교장을 비롯해서 경주고, 경주여중·고, 대구여고, 경남여고 등의 교장을 맡았으며, 부산남여자 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유치환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 '행복'이 적힌 설치물(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유치환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 '행복'이 적힌 설치물(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부산 초량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사진: 네이버 지도).
부산 초량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사진: 네이버 지도).

유치환 시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치환 우체통’은 일종의 유치환 기념관으로,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580번길 2번지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딸랑 우체통 하나만 서 있는 게 아니다. 유치환 우체통이란 이름을 가진 기념관 건물에는 커다란 우체통을 비롯, 유치환 시인의 생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부산 항구를 포함해서 초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유치환 우체통은 부산역 버스 정류장에서 190번, 508번 버스를 타고 초량6동주민센터에 하차하여 초량로 80번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도착한다.

유치환 우체통은 유치환 시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2층으로 구성된 건물이다. 1층은 관람객들을 위한 야외무대 ‘커뮤니티 마당’이 위치하고 있고, 2층은 ‘시인의 방’ 카페로 유치환 시인의 작품이 걸려 있고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옥상에는 ‘느린 우체통’과 유치환 시인을 본 떠 만든 설치물이 있는 전망대다. 그런데 길가에서 바로 마주하는 곳은 건물의 옥상인 전망대다. 비탈길에 세워진 건물은 옥상이 길과 높이가 같고, 2층과 1층은 길 아래에 있는 구조다.

길가에는 건물의 옥상 전망대와 거기 서있는 ‘유치환 우체통’임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길가에는 건물의 옥상 전망대와 거기 서있는 ‘유치환 우체통’임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옥상 전망대 다른 쪽에는 유치환 시인, 그리고 그의 대표작들과 느린 우체통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옥상 전망대 다른 쪽에는 유치환 시인, 그리고 그의 대표작들과 느린 우체통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유치환 우체통의 관련 시설인 ‘시인의 방’ 카페 직원 정수영(50) 씨는 유치환 시인의 업적을 알리고, 그의 예술정신과 문학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유치환 시인의 지인들이 뜻을 모아 개설하고 이름 지은 것이 바로 ‘유치환 우체통’이라고 말했다. 유치환 시인의 출생은 비록 통영이지만, 유치환 우체통의 위치가 초량인 이유는 사회생활과 작품 활동을 주로 하며 생을 마감한 곳이 부산 동구였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 공식 블로그에 따르면, 유치환 시인은 부산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생명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고, 부산고등학교 교가 작사 등 산복도로 초량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소개되어있다.

옥상 전망대에서 2층 시인의 방 카페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팻말(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옥상 전망대에서 2층 시인의 방 카페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팻말(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산복도로와 북항, 그리고 초량 시내가 훤히 보이는 시인의 방 카페의 내부(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산복도로와 북항, 그리고 초량 시내가 훤히 보이는 시인의 방 카페의 내부(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유치환 우체통에 도착하여 길 높이와 같은 건물 옥상 전망대를 지나 좌측의 계단을 내려가면 2층 시인의 방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의 방은 원래 유치환 시인의 작품들을 전시해서 관광객들이 이를 감상하거나, 유치환 시인 관련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는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북항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좋은 조망권을 가진 카페로 변신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카페처럼 음료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방’ 카페에서는 편지지와 우표를 구매하여 옥상에 위치한 우체통에 넣을 편지를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유치환 시인의 작품과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시인의 방 카페의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시인의 방 카페의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시인의 방 카페의 내부의 영상물 상영관(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시인의 방 카페의 내부의 영상물 상영관(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관광객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옥상 전망대의 느린 우체통(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관광객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옥상 전망대의 느린 우체통(사진: 취재기자 박상현).

초량 주민 김순선(70) 씨는 손녀들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좋아하는 모습을 전했다. 김순선 씨는 “우리야 뭐 맨날 보지만, 손녀들 눈에는 우체통이 신기한가 보다”라며 자신의 손녀들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즐거워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부산 진구에 사는 정선영 씨는 “아이가 학교 모임에서 유치환 우체통을 방문했는데, 또 오고 싶어 해서 가족과 같이 오게 됐다. 아이가 오자고 해서 왔지만, 바다도 예뻐서 다음에 또 올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카페 직원 정 씨에 따르면, 한 달에 평균적으로 400명 가까운 관광객이 오며, 올해만 벌써 4300명 정도의 관광객이 유치환 우체통을 방문했다. 그중 90% 이상이 편지를 써서 느린 우체통에 넣고 간다.

그렇다면 이 많은 편지들은 어떻게 처리되어 주인에게 전해지는 것일까? 오후 7시, 시인의 방 카페가 마감되면, 직원들은 느린 우체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우체통을 열어 편지를 꺼낸 후, 관광객들이 직원에게 직접 전해준 편지와 합해서 편지를 모아놓는 장소로 가지고 간다. 그곳에서 연도와 월 순으로 편지를 구분, 정리해놓고. 1년이 지난 편지들은 우체국에 가져가서 전송한다.

부산 동구청 문화체육관광과 관계자는 볼거리가 전무했던 초량에 유치환의 우체통이 생기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유치환 우체통이 동구 초량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유치환 동상과 느린 우체통은 그렇게 사람들을 추억의 세계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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