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지 않는 비’ 내리는 부산현대 미술관 ‘레인룸’의 마법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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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지 않는 비’ 내리는 부산현대 미술관 ‘레인룸’의 마법 감상하기
  • 취재기자 김해영
  • 승인 2019.10.30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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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을 방해하는 테크놀로지 느끼는 게 작품 의도
인생사진 찍는 장소로도 각광... 현장 매표 안 되고 인터넷 예매 필수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에는 비가 내리지만 관객이 비에 맞지 않는다(사진: 부산 현대 미술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에는 비가 내리지만 관객이 비에 맞지 않는다(사진: 부산 현대 미술관 제공).

천장에서는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지만, 사람 몸에는 물이 닿지 않는다. 또, 빗소리가 들리지만, 손을 뻗으면 빗방울이 만져지지 않는다. 빗물이 사람 몸과 손을 피해서 내린다.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입소문을 타고 사람이 몰리고 있는 부산 현대 미술관 ‘레인 룸’이다.

레인 룸이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젖지 않는 비’라는 것이다. 분명 액체인 비가 방의 천장에서 내리고 있지만 아래 있는 사람의 몸에는 ‘젖지 않는 비’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진다. 각종 SNS에서 레인 룸의 후기 사진을 보면 정말 비를 맞지 않는 사람들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레인 룸의 전시회 안으로 입장하면, 조명 하나가 켜져 있고, 천장에는 수많은 빗줄기가 떨어진다. 레인 룸은 빗줄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른 미술작품 전시회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맛보게 된다.

비는 내리고 있지만, 젖지 않는다. 이런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 대학생 김민지(22, 부산시 사상구) 씨는 일주일 전 전시회 표를 예매했다. 김 씨는 “‘젖지 않는 비’라는 홍보 문구 때문에 호기심으로 오게 됐는데, 정말로 젖지 않아서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시회의 풀네임은 ‘랜덤 인터내셔널: 아웃 오브 컨트롤’이다. 레인 룸에 적혀 있는 작품의 기획 의도는 좀 추상적으로 되어 있다. 이를 쉽게 풀어서 이해해 보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인 듯하다. 즉, 레인 룸에서 빗소리를 듣고 비가 내리는 것을 인간이 바라볼 수 있지만, 인간이 알 수 없는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빗방울을 만질 수도 없고, 비를 맞지도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감각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이때 테크놀로지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듯한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관람객들에게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곧 작품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레인 룸의 기획 의도와 레인 룸에 대한 설명이 적혀져 있는 안내판(사진: 취재기자 김해영).
레인 룸의 기획 의도와 레인 룸에 대한 설명이 적혀져 있는 안내판(사진: 취재기자 김해영).

레인 룸은 어떻게 맞지 않는 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레인 룸은 비가 쏟아지는 공간에 인체를 감지하는 3D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 3D 카메라가 사람을 인지해서 강우 밸브를 제어하는 센서에 신호를 보낸다. 그 결과, 센서는 신호를 받고 사람이 있는 곳에만 비를 내리지 않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폭풍우가 쏟아지는 곳에서도 비를 맞지 않고 비를 구경할 수 있게 된다. 대학생 조혜림(22, 부산시 강서구) 씨는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이런 신기한 전시회를 볼 수 있게 돼서 좋았다”며 “다만 10분이라는 시간 제약이 있어서 많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레인 룸의 입구에는 레인 룸의 기획 의도의 작가에 대한 설명 영상이 무한 반복으로 전시되고 있는 스크린 두 개가 설치돼 있다. 스크린도 역시 레인 룸 내부 못지않게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고 가는 곳이다.

레인 룸 안에 전시된 스크린 영상 앞에서 영상이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서 다른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해영).
레인 룸 안에 전시된 스크린 영상 앞에서 영상이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서 다른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해영).

SNS에서 레인 룸이 인기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뭣도 모르고 가면 인생 사진에 실패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한 가지의 팁을 알고 가야 한다. 바로, 빛을 가리는 것이다. 레인 룸 안에는 커다란 조명등이 하나 있는데, 그 조명등의 불빛을 완전히 가려야 제대로된 사진이 나온다. 관객 이상은(21, 부산시 북구) 씨는 “처음에 빛을 안 가리고 사진 찍었는데 완전 이상하게 나와서 친구한테 성질 좀 냈다. 두 번째 찍을 때 빛을 가리니까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레인 룸에 입장하기 전 숙지할 사항이 크게는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입장할 시에 센서가 인지할 수 있게 손을 뻗으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센서가 사람을 인지하지 못해서 비에 맞을 수도 있다. 둘째는, 사진 찍을 때 플래쉬 터지는 기능을 끄는 것이다. 조명 하나뿐인 레인 룸에서 플래쉬을 터트리게 되면, 다른 사람이 전시회 감상하는 것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잘 마르는 옷을 입고 가는 것이다. ‘젖지 않는 비’라고 했지만, 완전히 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센서가 사람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으고 인지하는 반응 속도가 느릴 수도 있기 때문에 가끔 비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 잘 마르는 옷을 입고 가는 게 좋다. 조혜림 씨는 “안내자의 말대로 보폭을 좁게 걸었을 때, 비를 맞지 않았다. 너무 신기해서 빠르게 걸었더니 비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레인 룸에 대한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현장에서 표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레인 룸은 최소한 하루 전에 표를 예약해야만 전시회를 구경할 수 있다. 예매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면, 현장에서는 표를 다시 구매할 수도 없고, 인터넷으로 당일 예매도 불가해서 전시회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김민지 씨는 “주말이라 그런지, 오는데 차가 막혀서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급하게 택시를 타고 겨우 시간에 맞춰 왔다. 표 값보다 교통비가 많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다. 온라인 예매할 수 있는 표의 수 일부라도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레인 룸의 전시 기간은 올해 8월 15일부터 2020년 1월 27일까지다. 표 값은 성인 기준 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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