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옆 ‘시간이 멈춘 오지’ 매축지 마을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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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옆 ‘시간이 멈춘 오지’ 매축지 마을이 사라진다
  • 취재기자 이예진
  • 승인 2019.10.2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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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매립으로 조성, 일제 때 마구간, 전후는 피난민촌 역사 현장
재개발로 2023년, 전면 아파트 숲으로 변신 예정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지 바로 옆에서 대한민국의 197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부산의 매축지(埋築地) 마을이 그렇다. 매축지 마을은 부산역 번화가 주변의 수많은 고층빌딩과 도로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에서는 간혹 지나가는 차창으로 흘깃 보거나 아니면 그냥 못보고 지나칠 정도다. 그러나 정작 그 모습은 인터넷으로만 봐왔던 1970년대 풍경과 유사하다. 매축지 마을에서 60년 이상 살아온 조문기(80, 부산시 동구) 씨는 “마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왜 매축지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을까. 매축지는 사전적으로 바닷가나 강가 따위의 우묵한 곳을 메워서 뭍으로 만든 땅을 뜻한다. 매축지 마을도 원래는 부산항 인근 바닷가 갯벌이었던 곳을 매축해 땅으로 만들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매축지 마을은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철 1호선 좌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빠르게 갈 수 있다. 부산역에서 20분 정도 걸어 가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매축지 마을은 지리적으로 동서남북으로 도로에 둘러싸여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부산역으로 가는 철도 선로가 통과하고, 남서쪽으로는 관문 대로(부산제3도시고속도로)가 통과하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부산항 항만 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어 동구 도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주변의 눈부신 발전에도 매축지 마을은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아 ‘도심 속의 고립된 섬’, ‘시간이 멈춘 마을’, ‘도심 속 오지 마을’이라 불리곤 한다. 겨우 5~10평 남짓 한 집들, 판자로 덮어놓은 지붕,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 철거 예정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등은 2019년 현재 사람들의 삶에서 쉬이 보기 힘든 광경이다. 매축지 마을을 둘러보던 여행객 이은혜(20, 충남 천안시) 씨는 “이런 마을 모습은 처음 본다. 실제로 보니 그 역사가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매축지 마을을 안내해주는 매축지 마을지도와 (오른쪽)지도 상 매축지 마을(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네이버 지도).
(왼쪽)매축지 마을을 안내해주는 매축지 마을지도와 (오른쪽)지도 상 매축지 마을(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네이버 지도).

매축지 마을은 대한민국의 1970년대 모습을 간직한 마을로도 유명하지만, 그 역사 자체도 매우 특이하다. 1913년부터 1938년까지 일제는 부산의 동구·수정동·범일동 일대와 중구의 중앙동 일부, 남구의 우암동 일부에 이르는 해안을 매립하여 150만 5884.3㎡ 면적의 방대한 매축지를 조성했다. 매축지 마을의 설명문에 따르면, 일제가 부산에 대륙 지배의 발판을 놓기 위해 시모노셰키와 부산항을 직항으로 연결하고 일본인들이 부산으로 많이 이주해 오면서 매축사업이 시작됐다. 박 씨 할머니는 “일본 사람들이 철도 관사를 지었는데 뼈대만 세워놓고 후퇴해서 돌아가는 바람에 (일본사람은) 없고, 우리 한국 사람이 땅 사서 집 짓고 살았다”고 말했다.

또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사회자본 형성 과정: 부산 동구 매축지 마을 만들기 사례 연구’ 논문을 보면,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만주지역으로 보낼 각종 군수물자들을 모아놓기 위해 매축된 땅에 막사와 마구간을 지었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그 당시 짐 운반에 필요한 말을 보관하기 위해 마구간, 마부, 짐꾼들의 막사들이 대규모로 만들어진 것이다. 부산 동구청에서 나눠준 부산의 부산 동구이야기 책자에도 “(매립지) 마구간은 만주로 보낼 군마들의 임시 거류 장소였다”고 적혀있다.

부산동구청 도시전략재생과에서 나눠준 ‘부산의 부산 동구 이야기’ 책자에는 매립지의 역사가 소상히 기록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부산동구청 도시전략재생과에서 나눠준 ‘부산의 부산 동구 이야기’ 책자에는 매립지의 역사가 소상히 기록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부두에서 내린 말이나 마부, 짐꾼들이 쉬는 곳이었던 막사는 해방 이후, 해외에서 조국으로 돌아온 동포들의 임시 거처이기도 했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왔고 그들이 기존 마구간을 칸칸이 잘라 살기 시작했다. 앞선 논문에 따르면, 공간은 협소하고 사람은 많아, 피난민들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에 칸막이 집들을 밀집하여 세우게 된다. 경성대학교 사학과 김혜진 교수는 “광복 후 도시하층민들이 매축지마을의 마구간을 개조하여 거주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때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매축지 마을 골목길은 50년대 피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 모습이 그대로 유지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매축지 마을 골목길은 50년대 피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 모습이 그대로 유지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매축지 마을이 피난민 거주지가 된 것은 당시 이곳 인근에 콘크리트 전신주 공장과 항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부산 동구 이야기’ 책자에 따르면, 1970년대 계속된 호경기로 부산은 증가한 물류와 인류를 감당하기 위해 매축지 마을 주변에 길이란 길은 다 만들었다고 한다. 같은 책자에는 “동서남북으로 매축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 고가, 바닷길과 철로 등 온갖 길들은 오히려 마을을 철저히 고립시켰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있는 만큼 마을의 재개발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지금의 좌천·범일 제1지구, 좌천·범일 제8지구, 좌천·범일 통합2지구, 좌천·범일 통합3지구라 불리는 좌천·범일 도시환경정비구역은 1990년대부터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철거가 예정돼있지만, 한동안 아무 진전 없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6월, 제1지구는 아파트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이, 2017년 7월에 8지구는 ‘오션브릿지’ 아파트가 들어서 각각 입주까지 완료했고, 통합3지구의 ‘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가 2023년 5월 준공될 예정이다. 또한 마지막 통합2지구도 2018년 조합이 설립돼 재개발을 향해 도약 중이다. 매축지 마을 통합2지구 주민 한 분은 “드디어 28년 만에 조합이 설립됐다”고 말했다.

매축지 마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건물이 많다. 철거 예정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티가 많이 난다. 가구가 다 부서져 밖에 나와 있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집도 많다. 하지만 골목골목 사람이 사는 흔적도 여전히 보인다. 꽃이 피어있는 화분과 담밑에는 고양이들이 똥을 싸지 않게 하기 위해 물을 담아놓은 페트병이 나란히 놓여 있다. 고양이가 변을 보려고 담 밑에 왔다가 물 담긴 패트병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도망간다는 말을 듣고 마을 주민들이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매축지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박 씨 할머니(92, 부산시 동구)는 “동네가 오래 됐어도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은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나란히 줄지어 놓아진 물이 담긴 페트병. 고양이가 페트병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도망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나란히 줄지어 놓아진 물이 담긴 페트병. 고양이가 페트병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도망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통합3지구의 재개발로 매축지 마을에 있던 마을의 역사를 설명해주던 매축지 문화원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매축지 문화원이 있던 자리는 통합3지구에 포함되어있어 이미 철거되고 곧 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가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동구청 문화체육관광과 관계자는 “재개발로 인해 통합3지구에 있던 건물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통합3지구로 ‘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가 들어설 곳으로 공사장 담벽이 이미 세워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오른쪽은 통합3지구로 ‘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가 들어설 곳으로 공사장 담벽이 이미 세워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예진).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전봇대에 걸려있는 종이 보인다. 이 종 또한 마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종은 마을에 불이 나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용도로 설치됐다. 종에 대한 설명문에는 오래전 마을에 일어났던 대형화재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1954년 4월 3일, 부산진 좌천동 일대에 일어난 화재에 관한 것이다. 화재는 미군 소방관 입회 하에 송유관 수리를 하던 중 개천으로 휘발유가 유출돼 주민들이 이를 확인하려 성냥불을 가져갔다가 발생했다. 가뜩이나 집과 집 사이가 좁아 불은 삽시간에 퍼졌고, 37명의 사망자와 140명의 부상자, 그리고 640채의 집이 전소되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매축지 마을에서 자신의 인생 절반 이상을 보낸 서반교(80, 부산시 동구) 씨는 “그때 불이 나서 동네가 다 타버렸다. 끔찍했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매축지 마을에 불이 나면 치게 만들어 놓은  종이 과거 끔찍한 화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사진: 제이디 컴퍼니 블로그 캡처).
오래전부터 매축지 마을에 불이 나면 치게 만들어 놓은 종이 과거 끔찍한 화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사진: 제이디 컴퍼니 블로그 캡처).

매축지 마을은 일제 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마을에는 여전히 판자촌이 모습은 남아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재개발은 완성될 것이다. 김혜진 교수는 “현재 상태로 보면 매축지 마을은 곧 새로운 신도시 주거공간이 형성되어 예전의 판자촌의 모습은 더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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