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영남 정자 문화의 백미, 함안 ‘무진정’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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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영남 정자 문화의 백미, 함안 ‘무진정’을 찾아
  • 취재기자 조봉선
  • 승인 2019.10.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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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붉은 꽃과 빼어난 풍광으로 최근 방문객 발길 유혹
지방 무형문화제 불꽃놀이 축제인 ‘낙화놀이’는 4월 초파일 볼거리

경남 함안은 우리나라 가야 연맹 중 하나인 ‘아라가야’의 고도였다. 함안 특유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유서 깊은 가야 역사가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함안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 하나 있다. 그럼에도 이곳은 자연과 우리나라 정자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은 바로 ‘무진정(無盡亭)’이다.

무진정은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위치해있다. 무진정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함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만 가면 된다. 함안대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무진정’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오는데, 그 방향을 따라 들어가면 넓은 공영주차장과 함께 무진정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무진정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무진정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공영주차장에는 함안군 관광안내도와 함께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은 생긴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황복희 함안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2013년에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 유네스코 잠정 목록으로 신청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안을 찾아오다보니 관광안내소가 생겼다고 한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을 통해 관광객들은 점심시간을 제외한 주말 매시 정각에 문화관광해설사들의 해설과 함께 무진정을 관광할 수 있다.

무진정 공영주차장 안에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오른쪽은 무진정 해설시간 안내 표지판(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무진정 공영주차장 안에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오른쪽은 무진정 해설시간 안내 표지판(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무진정 공영주차장 안에 있는 무진정 관광 안내도(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무진정 공영주차장 안에 있는 무진정 관광 안내도(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공영주차장에서 연못 방향으로 들어가면 ‘부자쌍절각’이라는 전각이 가장 먼저 보인다. 부자쌍절각은 정유재란 때 왜적이 조선에 쳐들어와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자 이를 만류하며 자결한 승지공 조준남과 정묘호란 때 의주성을 지키다가 전사한 참판공 조계선 부자의 효와 충을 기리는 장려각이다. 충효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두 인물을 기리는 전각인 만큼 부자쌍절각 앞에 선 순간, 분위기는 절로 엄숙해진다. 관광객 황성희(49, 경남 함안군) 씨는 “부자쌍절각이 함안 조씨 가문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쌍절각을 보자마자 그 위엄을 보여주듯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쌍절각만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준남, 조계선 부자의 효와 충을 기리는 전각인 ‘부자쌍절각’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조준남, 조계선 부자의 효와 충을 기리는 전각인 ‘부자쌍절각’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부자쌍절각을 지나자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무진정의 연못인 ‘이수정’이다. 이수정은 녹색 개구리밥이 수면 위를 가득 덮고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황복희 해설사는 이수정은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후에 지어진 인공 연못으로, 무진정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주위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져 있고, 연못 위에는 삼신을 상징하는 3개의 섬을 연결한 다리인 ‘홍예교’가 놓아져 있어 장관이다. 그래서인지 이수정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은 대학생 조주현(24, 부산시 사하구) 씨는 “이수정은 사진 찍을 맛이 나는 장소”라며 “친구나 연인끼리 서로 찍어주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녹색 개구리밥이 가득한 이수정 위로 홍예교가 길게 뻗어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녹색 개구리밥이 가득한 이수정 위로 홍예교가 길게 뻗어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홍예교를 건너면 ‘영송루’가 보인다. 영송루는 이수정 한가운데에 있는 육각형의 정자로, 과거 손님을 맞이하고 석별의 정을 나눴던 장소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송루를 지나 또 다른 다리를 건너면 조그마한 언덕이 나타난다. 돌계단을 타고 언덕을 올라가면 우리는 비로소 무진정을 마주할 수 있다.

과거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을 보냈던 정자 ‘영송루’가 이수정 한가운데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과거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을 보냈던 정자 ‘영송루’가 이수정 한가운데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무진정은 조선시대 문신, 무진 조삼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42년에 직접 지은 정자다. 무진 조삼 선생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의 손자로, 성종 14년(1483)에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창원, 대구, 성주, 상주의 목사와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사화가 빈번했던 연산군 시절, 명현이었던 조삼 선생은 붕당정치로 여념이 없는 조정의 상황에 더 이상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함안으로 내려와 무진정을 지었다. 무진정은 조삼 선생의 호를 따라 지은 이름으로, ‘즐거움에 다함이 없는 집’, ‘조삼 선생과 정자의 이름이 끝없이 전해지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무진정의 구조와 형태는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준다. 무진정의 기둥 위는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고 있다. 앞면의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언덕에 올라와 마주 본 무진정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언덕에 올라와 마주 본 무진정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무진정은 건물 외벽에 있는 판문을 모두 걷어 올릴 수 있게 돼 있다. 가을인 지금 무진정은 모든 판문이 활짝 걷어져 있어 관광객들이 내부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무진정은 전체적으로 넓은 느낌이 가득하며, 시원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또 정자에 앉은 순간 느껴진 선선한 바람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부산에서 온 신영재(72) 씨는 “무진정이 역사가 오래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조용한데다 날씨까지 좋아 기분이 매우 좋다. 부산에서 함안까지 찾아 온 보람이 있다”고 밝혔다.

무진정 안에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쓴 기문이 걸려있다. 기문에는 무진정 이름의 유래, 기문을 쓰게 된 이유, 조삼 선생에 대한 칭송, 무진정의 형태와 아름다움, 주변 경관 등이 기술돼 있다. 무진정 기문은 주세붕 선생이 쓴 글 중에서 백미로 일컬어진다. 글의 수준 자체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주세붕 선생이 느낀 무진정과 실제 무진정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한 탓이다. 대학생 김소연(21, 경남 창원시) 씨는 “주세붕 선생의 글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이런 귀중한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문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진정의 모든 판문들이 활짝 열려 있다. 오른쪽은 무진정 안에 있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쓴 기문이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무진정의 모든 판문들이 활짝 열려 있다. 오른쪽은 무진정 안에 있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쓴 기문이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그 이외에도 무진정에는 다른 구경거리가 있다. 바로 ‘배롱나무’다.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꽃은 7~9월에 피는 양성화다. 7월 중순이면 무진정 담장 근처에 있는 배롱나무에 붉은색을 띠는 꽃들이 만개하는데, 화려한 배롱나무꽃이 단순하면서도 검소한 무진정과 만나면서 색다른 조화를 이뤄낸다. 또 무진정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배롱나무꽃과 이수정의 조합도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함안에 거주하고 있는 조영하(51) 씨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알맞은 장소를 발견한 것 같다”며 “집 근처에 좋은 힐링 장소가 하나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무진정에서 이뤄지는 특별한 민속놀이도 있다. 바로 낙화놀이다. 낙화놀이는 조선 중엽부터 시작돼 소위 ‘부처님 오신 날’이라 불리는 매년 4월 초파일에 열린다. 참나무 숯가루를 한지에 싸서 댕기처럼 엮은 ‘낙화봉’을 줄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숯가루가 꽃가루처럼 이수정 연못 위로 흩날리는 불꽃놀이다. 조선 선조 때 함안군수로 부임한 정구 선생이 군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시작됐고, 1985년 현재의 형태로 복원됐다. 한 번 태우면 2시간 정도 유지되며, 불꽃이 바람에 흐드러지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낙화놀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가운데 불놀이 문화로는 최초로 문화재로 지정된 행사이기도 하다. 관광객 김지은(22, 경남 창원시) 씨는 “함안에 이런 뜻깊은 전통 행사가 있는지 몰랐다”며 “기회가 된다면 낙화놀이를 하는 날에 맞춰 친구들과 함께 무진정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함안군 관광안내도에 함안낙화놀이가 자랑스럽게 소개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함안군 관광안내도에 함안낙화놀이가 자랑스럽게 소개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봉선).

하지만 무진정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먼저 무진정을 향해 올라가는 돌계단이 높다는 점이다. 취재를 갔던 당시, 몇몇 관광객들이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는 나이가 많거나 무릎이 좋지 않은 관광객들이 무진정을 방문하기 어려운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비가 오면 미끄러질 가능성도 높아 안전상의 문제도 염려된다.

교통과 관련해 아쉬운 점도 있다. 무진정은 도보로 함안역에서 15~20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40분~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그렇다보니 무진정을 보다 빠르고 편하게 가기 위해서는 버스나 택시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무진정으로 갈 수 있는 버스는 하루에 6회만 운행하며,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가량의 배차 간격이 있어 시간대를 잘 맞추지 않으면 이용하기가 힘들다. 무진정을 가고자 한다면 버스도 좋지만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진정은 그 어떤 장소보다 역사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정은 이제 막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무진정 관광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가치가 충분하다. 황복희 문화관광해설사는 “현재 군청에서 함안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며 “무진정도 군청이 관광 활성화를 위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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