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댓글⋅혐오표현 금지법 만들려다 표현의 자유 억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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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댓글⋅혐오표현 금지법 만들려다 표현의 자유 억압한다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0.2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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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9월, 독일의 극단적 우익 단체 ‘친독일시민운동’은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영화 <무슬림의 무지함> 상영회를 계획한다. 해당 영화는 이슬람 종교 창시자 모하메드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전 세계 이슬람 교인들을 분노하게 한 영화였다. 친독일시민운동의 상영회 소식이 알려지자, 이슬람주의 단체들은 상영회가 강행될 시 테러 공격을 하겠다고 밝혔다. 안전과 테러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되자, 독일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상영회를 불허했다. 그러자 당시 중도좌파 진영에 속했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정부의 영화 상영 불허 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명백히 타 종교를 폄훼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행사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상황은 오늘날 혐오표현 제재에 대한 입법 논의가 될 때마다 ‘표현의 자유’라는 턱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또 한 명의 연예인이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해당 연예인은 유독 지독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편에 속했고, 본인 또한 악성 댓글로 인한 스트레스를 공연히 호소해왔기에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악성 댓글을 근절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예 “악성 댓글을 쓰지 못하게 법제화해야 한다”며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악성 댓글 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게시글이 상당수 올라왔다.

악성 댓글은 혐오표현의 일종이다. 혐오표현은 연예인에게 달리는 악성 댓글처럼 한 개인을 겨냥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장애인, 성 소수자, 여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제껏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혐오 발언을 차단·처벌할 법안은 제정되지 못했을까? 정부가 인터넷상에 속수무책으로 번지고 있는 혐오발언을 차단하는 것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게 옳다고 봤기 때문일까? 혹은 더 나아가 혐오발언을 할 자유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봐서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혐오표현의 대응책으로 어떤 방안을 마련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혐오표현 금지법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물리적 폭력이라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오기 전에 표현 단계에서부터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나치 정권을 경험한 독일의 형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취지하에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를 하면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공공장소뿐만 아닌 사적 장소에서도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 혐오표현 규제를 다루는 미국의 방식은 유럽의 국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유럽이 더 큰 해악을 막기 위해 혐오표현을 사전에 규제하고자 했다면, 미국은 표현을 금지하는 것이 감정의 억압을 불러와 훗날 더 큰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봤다.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는 미국의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 규제를 “더 적은 표현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은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 대신, 미디어, 교육 기관, 기업 등에 다양한 형태의 혐오표현 억제 정책을 두고 있으며,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수시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즉 혐오표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법에 따른 강제로 풀기보단 사회에 의한 자율적인 규제로 풀어나갈 것을 택한 것이다.

이 모든 국외 사례들을 고려해봤을 때 앞으로의 한국은 혐오표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생각하건대 법을 제정해 혐오발언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기보단, ‘혐오표현 발화자는 생각이 편협하고 사회화가 덜 된 사람’이라는 사회적 여론을 먼저 형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광범위한 집단에 걸쳐 나타나는 모든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한국에선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혐오표현금지법을 제정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말했듯 혐오표현은 사회적 소수자에 속하는 여성,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여성혐오 발언은 현재 그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인지되고 있고,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형성돼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규정안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 소수자 혐오발언은 어떨까? 아직 국내 사회에서 차별과 편견의 대상인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금지하는 법을 추진하겠다고 하면 분명 큰 반발이 있을 것이다. 해당 법안이 시행된다면, 혐오표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성 소수자 혐오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만일,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반박할 여지가 없는 부분에 한해서만 혐오표현이 금지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규제해야 하는 혐오표현 모두가 아닌 일부만 규제하게 되면 그 대상에서 벗어난 혐오표현은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해도 된다’는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범죄, 비리 행태가 드러난 권력자에 대한 혐오 표현도 공인에 대한 인격권 침해로 간주해 처벌받는다면 이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연쇄살인마나 아동 성추행범에 대한 혐오발언은 지금처럼 용인돼야 할까? 이 두 물음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혐오발언은 아무런 근거 없이 발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성적 판단을 기초해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특정 정치인을 표적으로 하는 혐오 발언에 대해 당사자가 혐오표현금지법을 구실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이는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정치인이 사회적 담론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를 해결할 때는 최대한 사회의 자연 발생적 힘을 이용하고, 가능한 최소한의 강제력에 의존해야 한다.”이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한 말이다. 혐오표현 문제는 많은 사회정책 연구가들이 이를 해결하려 오랜 시간 노력했음에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 않다. 혐오표현을 규제하자니 표현의 자유가 걸리고, 규제하지 않으면 사회가 혐오표현을 용인한다는 오해를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성급하게 법을 제정했다간 또 다른 사회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법이다. 점차 상황을 개선해나가기 위해선 앞서 말했듯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은 도태된 사람, 무식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혐오표현을 듣는 당사자들에게 사회가 힘을 실어줘 그들이 혐오표현을 듣고 가만있는 것이 아닌, 직접 반박할 기회의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 언론 또한 혐오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리는데 힘쓰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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