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야 산다”...복고, 성격검사, 문화 공간 카페 등 부산 카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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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야 산다”...복고, 성격검사, 문화 공간 카페 등 부산 카페 열전
  • 취재기자 고여진
  • 승인 2019.10.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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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인테리어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이제 한물갔다. 어느 카페를 가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음악 사이트에 있는 인기차트 노래들이고, 메뉴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요즘 카페들 사이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독특한 테마와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색 카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래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부산 덕천 뉴그린 다방의 입구와 할머니 집에 온 듯한 내부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부산 덕천 뉴그린 다방의 입구와 할머니 집에 온 듯한 내부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문세의 <옛사랑>이 귀를 사로잡는다. 부산 북구 의성로에 위치한 ‘뉴그린 다방’은 복고풍을 컨셉으로 한 테마 카페다. 노란 조명에 꽃무늬가 그려진 양은쟁반 테이블에 둘러앉아 기타를 튕기는 손님들을 보면 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LP플레이어, 자개장, 불량식품, 게임기 등 그 시절에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소품들이 카페 안에 빼곡하게 차있다. 5000원을 지불하면 과거 유행했던 바람막이, 스포츠 가방, 그리고 스카프나 선글라스도 대여해서 입어볼 수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품들은 손님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이곳을 방문한 고등학생 정지혜(19, 경남 김해시) 양는 “너무 신기하다. 옛날에 보거나 가지고 놀던 것들을 즐길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고 추억에 잠기게 된다”고 말했다.

뉴그린 다방에는 다이얼 전화기와 재봉틀, 한 켠에 불량식품들이 마련돼있다(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뉴그린 다방에는 다이얼 전화기와 재봉틀, 한 켠에 불량식품들이 마련돼있다(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뉴그린 다방의 주인장 김현호(37, 부산 수영구) 씨는 주위에서 복고를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가정집이나 할머니 집을 모티브로 한 카페가 없어 자신이 직접 열게 됐다고 다방의 시작을 설명했다. 실제로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20∼30대뿐만 아니라 40대 어머니들까지 복고를 다시금 느끼기 위해 뉴그린 다방을 찾는 손님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김 씨는 “복고는 마음의 고향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잠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문으로 자기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부산 부산진구 동평로에 자리 잡은 카페 ‘애니핑거’는 애니어그램(enneagram)과 손가락(finger)가 합쳐진 단어로, 애니어그램 검사와 지문적성검사를 할 수 있는 이색 체험카페다. 애니어그램이란, 사람을 아홉 가지 성격유형으로 분류한 성격유형 검사의 지표로, 자신의 유형을 발견하고 행동패턴을 이해함으로써 성장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 연령, 직업에 상관없이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찾아온다.

카페 애니핑거의 전경과 애니어그램, 지문검사를 위한 설문지(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카페 애니핑거의 전경과 애니어그램, 지문검사를 위한 설문지(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카페 애니핑거의 사장 손진선 씨는 카페를 운영하며 여러 사람과 마주한다. 먼 지역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왔다가 이색 카페를 찾아온 커플, 시험을 앞두고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고민하는 공무원, 적성을 찾으려는 학생 등 그들과 상담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소통한다.

또한 카페로써의 임무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과일을 이용한 음료는 직접 착즙해 사용하고 빙수에 들어가는 팥은 직접 쒀서 만든다. 음식의 질과 양에 대한 정성 덕분에 애니핑거의 빙수는 손님들에게 ‘대접빙수’, ‘고봉빙수’라고 불린다. 한 손님은 “처음 빙수를 봤을 때, 너무 놀랬다”며 “카페 분위기도 좋고 즐길거리가 많아서 다시 오고싶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재밌는 일화도 생긴다. 손 씨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해 고민하다 결국 군대로 떠난 한 남성이 휴가를 나왔다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애니핑거로 오게 됐다. “상담을 마치고 결과지를 들고 다급하게 아들과 엄마가 카페를 떠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며 손 씨는 웃었다

손 씨는 카페를 운영하는 데는 편안함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손님들이 커피 한 잔 마시러 들어와서 여유도 즐기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곳의 목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애니핑거는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재치있는 손 씨의 입담이 더해져 딱딱할 수도 있는 검사를 웃으며 즐길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사람들이 검사를 통해 ‘방향성을 잡았어요’,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온기앳더모먼츠의 입구에 놓여진 입간판(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온기앳더모먼츠의 입구에 놓여진 입간판(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문화예술과 커피를 팝니다.”

카페에 들어가는 입구에 적혀있는 문장은 이곳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다.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에 위치한 ‘온기앳더모먼츠’는 단순한 카페와는 조금 다르다. 맛있는 음식과 다양한 문화 컨텐츠, 그리고 목욕탕을 컨셉으로 한 공간까지, 세 가지 모두를 즐길 수 있다.

카페 온기앳더모먼츠에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진짜 목욕탕과 비슷한 공간이다. 실제로 이곳은 ‘범천탕’이라는 목욕탕으로 운영되다가 문을 닫고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카페 사장 최인영(27) 씨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빈 공간 활용을 강조했다.

최 씨는 부산에 있는 빈 공간을 잘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이곳을 발견하고 “너무 괜찮은 공간인데 왜 남아있을까? 우리라면 20대의 패기로 이곳을 충분히 키울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조촐했던 목욕탕은 과거의 모습을 살리면서 이색 세트장으로 꾸며졌다. 카페를 찾은 대학생 문승주(20, 부산 금정구) 씨는 “겉모습만 보면 당장이라도 목욕을 해야할 것 같은데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재밌고 독특하다”고 말했다.

온기탕이라고 불리는 카페 온기앳더모먼츠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온기탕이라고 불리는 카페 온기앳더모먼츠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하지만 카페 온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곳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복합문화공간이란, 작품 전시와 판매의 기회, 배움의 기회, 작업 공간을 제공하여 누구나 예술과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을 말한다. 그리고 카페 온기는 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현재 ‘일레갈로: 혼합색으로 이루어진 온기’라는 이름의 미술 전시회와, 일러스트 등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가 진행 중이다. 이곳의 또 다른 사장인 최수은(24) 씨는 평소에 문화예술을 접할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언급했다. 빈 공간을 활용하면서 접근성이 높은 카페와 접목해 “편하게 즐기고 문화예술에 스며들도록 하고 있다”고 최 씨는 말했다.

‘일레갈로: 혼합색으로 이루어진 온기’ 그림 전시회가 카페에서 열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일레갈로: 혼합색으로 이루어진 온기’ 그림 전시회가 카페에서 열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고여진).

최 씨의 의도처럼 카페 온기는 공간을 전시회나 원데이 클래스 등으로 대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를 포함하여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계획돼있다. 전문적인 강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수업은 있지만 공간이 없는 경우, 그런 사람들에게 카페 온기는 무료로 대관을 해주고 있다. 최 씨는 “대관자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려움이 생기면 자신들이 전문가로서 투입돼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영 씨는 “이곳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 찾아와줘야 온기스러워지고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그냥 비워뒀던 자리에 들어가 포토존으로 활용하거나 배치해둔 소품을 이용해 노는 손님들을 보며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최 씨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문화적 갈증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최수은 사장은 부산에도 이러한 공간이 생겼으니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사람이 많이 찾아준다면 문화예술 인프라가 점점 퍼질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은 공간을 같이 만들어나가며 자연스럽게 커피와 문화예술에 스며들어갈 사람들을 온기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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