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 리스트]자동차로 북한 거쳐 100일간 유라시아 대륙 횡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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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 리스트]자동차로 북한 거쳐 100일간 유라시아 대륙 횡단하기
  • 김원명
  • 승인 2019.10.2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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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나의 버킷리스트]⑦
김원명(경성대 음악학부 교수)
김원명 교수
김원명 교수

솔직히 버킷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고 청탁을 받고 꽤나 곤혹스러웠고 머릿속 정리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게 자연스럽게 정리되어가는 느낌이다. 꼭 하고 싶었던, 해야만 하는 것들은 대체로 했고,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것들은 포기하게 되었고,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없어진 것들도 있다. 이래저래 세월 덕분에 욕망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진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동차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에, 아니 정신과 몸이 크게 망가지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여행’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필자가 외국 자동차여행을 처음으로 하게 된 건 10여 년 전 연구년을 받아 1년 동안 미국에 머물 때였다. 중부의 소도시 콜럼비아에 있는 미주리대학에 적을 두고 틈이 날 때마다 미국 전역의 음악박물관과 명소들을 자동차로 돌아다녔다.

콜럼비아가 미국 중부에 위치해 있어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기에는 유리한 입지여서 인생의 틈이 생기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3주 정도 잡아 나비 날개 모양을 그리며 50개 주들 중 40여 개 주를 여행했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여정들 중에는 캐나다도 몇 차례 포함되었다.

자동차여행의 매력에 빠지다

여행의 방식이 많겠지만 자동차여행의 특징과 장점을 이때 많이 느낀 것 같다. 사실 우리가 국내 여행을 할 때 관광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인이나 가족 차원의 여행이라면 대부분 자가용 자동차를 이용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유’가 아닐까. 비록 운전의 수고로움은 있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어디로든 내 맘대로 갈 수 있는 자유, 자동차 여행은 그걸 주니까 말이다. 때론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계획에 없는 엉뚱한 곳에 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는 경험은 더욱 짜릿하다.

이때부터 맛들이게 된 자동차여행은 연구년이 끝나고 귀국 후에도 마약처럼 계속되었다. 외국 여행은 자동차여행이 아니면 아예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까지 여행사 모객 상품은 극구 사양하겠단다.

결국 한국과는 운전 방향이 반대인 일본이나 호주에서조차 자동차여행의 모험을 강행하게 되었다. 아무리 운전 경력이 많다 해도 렌터카로 남의 나라 길거리에 떡 나섰을 때 느끼는 그 공포감은 섬뜩하다. 그럼에도 자동차여행이 주는 자유와 편리함은 공포감을 극복하게 만든다.

이렇게 계속되던 자동차 외국여행은 2016년 봄 서유럽 자동차여행으로 이어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이 여행은 스트라스부르~샤모니몽블랑~밀라노~베로나~베네치아~볼로냐~피렌체~로마~나폴리~소렌토~아말피~폼페이~피렌체~피사~친퀘테레~제노바~산레모~모나코~니스~칸~마르세유~엑상프로방스~아비뇽~아를~바르셀로나~발렌시아~세고비아~마드리드~아랑훼스~톨레도~그라나다~코르도바~세비야~리스본~빌바오~보르도~몽생미셸~에트레타~파리~프랑크푸르트 여정으로 40일간 계속되었다.

대학에서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필자로서는 음악사의 현장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직접 보고 느끼는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은 베르디의 숨결이 남아 있는 밀라노음악원을 둘러보던 중 빈 강의실에 그랜드피아노가 보이자 객기가 발동했다. 피아노 뚜껑을 살짝 열고 평소 잘 알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선율을 연주한 것. 연주가 끝나자 갑자기 뒤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브라보!”라는 외침이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옆방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던 이탈리아 인부들이 살짝 귀동냥을 하고 있었던 것. 역시 노래로 세계를 평정한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1600년 오페라 탄생의 현장인 피렌체의 메디치 궁전, 파가니니의 고향 제노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활동지 크레모나, 세계 3대 야외 오페라 명소인 베로나의 원형경기장과 로마의 카라칼라욕장, 리스트의 유명한 ‘죽음의 무도’의 영감을 준 피사의 캄포산토 벽화, 그 외에도 세고비아, 아랑훼스, 세비야 등 음악 역사의 성지들을 ‘내 맘대로’ 둘러보는 즐거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베로나에서 일방통행 위반으로 범칙금(꽤나 비쌈) 낸 것 말고는 아무런 문제없이 렌터카를 반납할 수 있었다. 반납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니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쫙 빠질 정도로 일순간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감개무량이었다.

자동차여행의 장점은 ‘자유’ 외에도 더 있는 것 같다. 짐으로부터의 해방이 그 하나이다. 장기 여행일수록 이 장점은 부각된다. 중년 이상의 여행객이라면 외국 여행 며칠만 지나도 생각나게 될 식료품들을 비롯해 한국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준비물을 잔뜩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이동 중에 대형마트가 보이면 수시로 들어가 먹거리를 쇼핑해 싣고 다닐 수 있으니 식비도 꽤나 절감하게 된다. 지역 특유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삼시세끼를 외식으로만 때우지 않아도 되는데다 한국 음식을 가져가 거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자동차로 북한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싶다

자동차여행의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나라를 여행한다면 앞으로도 자동차여행을 계속할 것 같다. 그러나 가장 가까우면서도 절대 내 자동차로 갈 수 없는 곳, 그 곳은 바로 북녘 땅이다. 섬이 아니면서도 사실상 섬나라인 우리나라는 내 차를 운전해서 절대 외국에 나갈 수 없다.

다만 북한을 지나갈 수만 있다면 대박이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버킷리스트 ‘자동차여행으로 북한 거쳐 100일간 유라시아 대륙 횡단하기’는 그래서 꼭 실행하고 싶다. 이번에는 러시아의 음악 성지들을 거쳐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 지역까지 둘러보고 싶다.

이 버킷리스트는 개인적 의지나 여건과 상관없이 실현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로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집에서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외국 자동차여행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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