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뉴스를 만든다...익명보도는 뉴스 신뢰도 떨어뜨리는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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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뉴스를 만든다...익명보도는 뉴스 신뢰도 떨어뜨리는 주범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0.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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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윤석열 검찰총장 윤중천 별장 수차례 접대 보도 관련
'3명 이상의 핵심 관계자'에 의존한 익명보도로 진실성 떨어져

미국의 대표적 언론 ‘뉴욕타임스’는 익명보도를 뉴스의 신뢰도를 훼손하는 ‘No. 1 killer(주범)’로 정의했다. 뉴욕타임스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뼈아픈 자기반성의 결과물이다. 지난 2003년,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기자가 쓴 73개 기사 가운데 37건에서 다른 기자의 기사를 표절하거나, 가지 않은 현장을 묘사하고, 인터뷰를 조작해 보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사건은 뉴욕타임스의 명성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사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제이슨 블레어가 기사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대처 방식이다. 뉴욕타임스는 5개 지면에 걸친 사과문을 게재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시 부국장의 이름을 딴 ‘시걸위원회’를 조직했다. 위원회는 3개월 만에 사태 발생의 원인, 조직 내부의 문제점, 대책을 담은 ‘왜 우리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바로 이 보고서에서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개인적 견해나 의견 및 상대방을 공격하는 내용을 익명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다. 이 말은 상대방의 명성에 해를 끼치는 내용의 보도도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으로 보도하는 대다수 국내 언론이 한 번쯤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

지난 11일 한겨레 신문은 검찰, 특히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의혹을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기사를 1면으로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지난 2013년 김학의 전 차관을 둘러싼 일명 ‘별장 성접대 사건’ 1차 수사 기록에서 윤 총장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 지난해 과거사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이 김 전 차관의 스폰서로 지목된 윤중천으로부터 “윤 총장과 친분이 있고, 별장에서 윤 총장이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냈으나 검찰이 이를 덮었다는 내용이다. 해당 보도가 나간 직후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검찰 수사단 모두 “한겨레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특히 윤 총장은 한겨레 기자 등을 고소한 상태다. 현재 여론은 한겨레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흘러가는 모양새다. ‘3명 이상의 핵심 관계자’에 전적으로 의지한 한겨레 기사보다 얼굴을 드러내고 본인의 입장을 명백히 밝힌 이들의 말을 더 신뢰한 것이다.

당시 진상조사단의 자료 가운데 윤 총장의 이름은 면담보고서에 한 번 등장한다고 한다. 지난해 김 전 차관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면서 진상조사단은 검사와 외부위원으로 된 담당팀을 꾸려 사건 관련자들에 관한 사전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이때 핵심 조사 인물은 단연 김 전 차관의 스폰서로 지목된 윤 씨. 당시 조사단은 수사 강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윤 씨가 조사를 받도록 설득한 끝에 서울의 호텔에서 검사 2명과 수사관 1명이 윤 씨와 면담했다고 한다. 이때 윤 씨의 거부로 대화 내용은 녹음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면담 뒤 따로 만나 그날 윤 씨의 말을 메모한 것과 기억을 복기해 정리했는데 이것이 바로 면담보고서라고 한다.

만들어진 경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면담보고서는 정식 수사 기록물로 채택되지도 못했을 만큼 갖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철저히 수사단의 기억력에 의존해 만들어진 보고서라 신뢰하기 어렵고, 실제로 윤 씨와 면담에 동석한 수사관 3명 중 1~2명도 “윤 총장의 이름은 들은 기억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면담보고서에 윤 총장의 이름이 등장한 것을 알면서도 검찰이 덮었다”는 한겨레 주장과는 달리 검찰은 당시 직접 윤 씨를 불러다가 해당 사실을 확인했으나 본인이 부인해 확인 작업을 할 단서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면담보고서와 관련된 인물 모두 그 내용을 부인하거나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보도대로라면, 한겨레는 현재 ‘정식 수사기관이 작성하지 않은, 그 내용에 대한 신뢰도 또한 현저하게 떨어지는 기록물’을 근거로 검찰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씨 휴대전화 8대를 포렌식해서 나온 연락처 1000여 개 가운데 윤 총장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는 확실한 근거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이는 평소 피의자의 인권을 중시하고 “‘결정적 한 방’이 나올 때까지 털고 파는 것은 먼지떨이 조사, 표적 수사일 뿐”이라며 과도한 검찰력 행사를 줄곧 비판해온 한겨레 보도의 논조와는 상당히 배치되는 부분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에 한겨레는 현재“보도에 다분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눈초리를 받고 있다.

한편, 해당 기사를 보도한 한겨레의 하어영 기자는 11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그는 윤 총장의 접대 여부에 대한 사실보다는 ‘검찰이 윤중천 씨의 진술이 나왔음에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구조’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기자는 오로지 기사로만 말해야 한다. 그가 어떤 의도로 썼든지 간에 기사 어디에 방점을 찍을지는 기사의 독자가 정하는 게 맞다. 설사 하 기자가 정말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안 하려 했다는 점을 더 부각하고 싶었더라면 기사 타이틀을 ‘[단독]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로 내보낸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검찰’ ‘별장’ ‘접대’ 위 세 가지 키워드를 보면 대중들은 당연히 ‘별장 성접대 사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단독보도가 나왔을 당시 댓글 반응을 봐도 성접대 사건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이후 같은 방송에서 하 기자는 “(접대 의혹에서) 성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늦은 감이 있고, 보도 진정성에 대한 의심만 짙게 했다.

“익명 취재원은 민주주의를 위한 안전밸브이고 양심의 도피처로 불리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게으르고 나태한 기자들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미국의 미디어 윤리 서적 <78개의 최신 사례로 보는 미디어 윤리>에서 나온 말이다. 취재원은 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원의 안전을 보장 못 할 수 있다든지 언제든 예외 상황은 존재하는 만큼, 취재원을 익명으로 보도해야 하면 취재 과정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한겨레의 후속 보도가 기다려진다. 지금의 역풍을 한 번에 뒤집을 만한 확실한 근거를 갖고 보도를 했는지, 단순히 익명 제보자의 증언에 기대어 팩트체크도 없이 보도했는지 후속 보도를 보면 알 수 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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