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 광장 민주주의 속, 사라지는 숙의(대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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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광장 민주주의 속, 사라지는 숙의(대의) 민주주의
  • 부산시 동구 박신
  • 승인 2019.10.1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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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 목격한 광장의 모습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다. 부산 중심부인 서면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이어나갔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이어진 행진의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그 관련자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시간이 흘러 2019년 가을, 광장은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와 정반대다. 하나였던 목소리는 두 개로 갈라져 서로를 물어뜯기에 바쁘다.

현재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진 두 집단은 서로를 악, 적폐 세력 등으로 규정해 버리고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면 상대방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조국 수호와 조국 퇴진을 외치는 양 진영의 주장은 단순명료하기까지 하다. 나와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광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조국 사태 이후 계속됐던 진영논리가 광장에서 폭발한 셈이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 집회 선봉장에 진보와 보수 진영의 정치인들이 서 있다는 것이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이들의 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시민들을 광장으로 내몰고 있다. 이들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 참여자가 100만, 200만이라 과시하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결국, 서초동 집회는 진보진영, 광화문 집회는 보수진영으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지금 각 진영 정치인들에게 세상의 가치는 진보와 보수밖에 없는 듯 연일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처럼 정치인을 필두로 대한민국이 양극단으로 쏠리면서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들에는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북핵 문제, 패스트트랙 협의 등 진영논리에 휩쓸려 제대로 된 회의조차 진행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지난 11일 패스트트랙 협의를 위해 정치협상회의가 열렸지만 제1야당 대표가 불참하면서 앞으로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지조차 미지수다. 정치권은 국민이 양극단으로 쏠리는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국회로 돌아와 현안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우선 여야 정치인들은 광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야 한다. 광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민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광장은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인다. 집회 단상에 오른 여야 정치인들은 상대 진영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각 진영 간의 갈등을 더욱더 부추기는 꼴이 되고 있다. 반대 진영의 주장을 듣지도 않고 비난하기보다는 합리적인 협상을 통해 절충안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또 정치인들은 이번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를 단순히 자신들의 지지층을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보여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생각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는 진보와 보수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 정치인들이 이념에만 갇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마저 외면한다면 내년 총선 때 국민의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들은 하루빨리 진보와 보수 이외에 국민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 정당 중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까지 매주 여론조사를 해온 갤럽의 조사를 보면, 무당층은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꾸준히 25% 안팎에 머물렀다. 이처럼 현재 많은 국민은 낡은 진보와 낡은 보수 정당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인들이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 정당을 비판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면 국민이 정치를 외면해버리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

광장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광장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없다. 진보 아니면 보수,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 있다. 이 가운데 정치권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게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장으로 나간 시민들도 서로를 향한 비난과 폄하를 멈추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정치권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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