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연식 정구에 매달려 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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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연식 정구에 매달려 한 평생
  • 취재기자 정지행
  • 승인 2016.01.0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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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촌 초교 고금자 코치....폐광 도시 문경을 연식정구 메카로 만들어

정구(庭球)란 원래 테니스를 가리킨다. 영국에서 잔디 코트에서 가운데 네트를 두고 양쪽에서 공을 치고받는 스포츠여서 정원에서 하는 구기란 뜻이 그 명칭에 담겨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구란 테니스와 약간 다른 의미로 쓰인다. 테니스가 단단한 경식(硬式) 공을 사용하는 데 반해서, 무른 공을 사용하는 테니스를 연식(軟式)정구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정구, 즉 테니스는 경식정구와 연식정구 두 종류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경식정구는 그냥 테니스라 하고 연식정구는 그냥 정구라고 편의상 불린다.

연식정구, 즉 정구는 구한말 김옥균 선생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도입한 스포츠라고 알려져 있다. 정구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생소하게 여기는 비인기 종목일뿐더러 어느 TV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는 경기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연식정구가 성행했는데, 1970년대 당시 문교부 장관이던 민관식 씨가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테니스의 진흥을 위해 기존 정구 선수들을 테니스로 전향하도록 하게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테니스는 점차 국민 스포츠로 성장했고, 반대로 정구는 점점 비인기 종목이 되면서 우리들에게 낯선 운동으로 위축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정구 선수도 있고, 코치도 있으며, 정구협회도 있고, 리그전도 있다. 거의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스포츠인 정구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정구를 지키는 데 이바지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구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정구의 중심은 서울도 아니고 부산도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구의 본고장은 경북 문경이다. 탄광의 도시였던 문경이 1980년부터 폐광으로 시민들이 빠져나갔으나, 여기저기 정구공을 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구의 구도(球都)가 된 곳이 오늘날의 문경인 것이다. 그 문경의 점촌 중앙초등학교에서 정구부 코치를 하고 있는 고금자(46) 씨는 문경을 정구의 본고장으로 키우는데 일조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문경은 각종 정구 전국대회를 휩쓰는 우승팀이 배출되는 곳이고, 전국 대회에서 문경 소재 학교끼리 결승에서 만나 우승을 나눠 갖는 일도 흔하다. 동아일보의 한 기사에 소개된 인터뷰에서 주인식 문경시청 정구팀 감독은 “문경은 초등학교부터 실업팀까지 체계가 잘 잡혀 있어 어린 선수들이 성인 정구 선수들을 롤 모델 삼아 꿈을 갖고 정구에 전념할 수 있다. 성인 정구 선수들도 어린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이 끈끈한 체계가 문경을 정구의 메카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 정구코치 고금자 씨

고금자 씨는 우연한 기회로 정구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됐다. 문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가 다닌 문경 동로중학교에는 정구부가 있었는데, 그녀는 또래들보다 뛰어난 체력과 운동신경으로 정구부 코치의 눈에 띠게 됐다. 그녀는 부모와 코치의 권유를 받고 많은 고민 끝에 정구 선수가 되기로 결정했다. 물론 농촌에 살다보니 다른 운동 종목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정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어린 중학생의 눈에 정구가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 씨는 “그때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정구에 몸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1984년 중학교 시절부터 1987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약 4년 간 정구선수 생활을 했다. 그녀가 이 기간 동안 선수로 활동하면서 눈에 띄는 큰 성과는 없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 선수로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고 씨는 “그때 너무 힘들었고 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다”고 말했다.

▲ 정구부 코치로 일하면서 받은 여러 가지 상(사진: 고금자 씨 제공)

선수로서 한계를 느끼면서도 정구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을 하지 못한 그녀가 택한 길은 정구 선수가 아닌 정구 코치의 길이었다. 4년간 닦은 정구 선수의 기량이 선수로서는 적합하지 않아도 혹시 코치로서는 유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계속해온 정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학교 정구부 코치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했다. 그녀는 “선수시절 때보다 더 잘하고 싶은 미련이 남았고, 지도자로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코치로 전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8년부터 구미 금오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코치 생활을 하게 됐다. 그녀는 처음 코치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서툴러서 지도자 일을 힘들어 했다. 특히 선수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수들에게 다가가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지도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구부 선수들을 위해 열심히 코치했다. 그래서인지 엄청난 노력이 큰 성과로 나타났다. 그녀는 경북의 구미 금오초등학교를 비롯해서, 상주의 옥산, 문경, 점촌의 중앙초등학교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는데, 제23회 전국소년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전국소년체전 정구 종목에서 그가 가르친 선수들이 금메달 7개, 은메달 5개, 동메달 5개를 거머쥐었다. 또한 동아일보가 주최한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그가 지도한 팀이 2회 우승했고, 전국 문화관광부 장관기에서도 5회 우승했다. 뿐만 아니라 구미시장 지도상, 대한정구협회장 지도상, 문경시장 지도상 등 코치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지도자 상을 수도 없이 받았다.

▲ 경상북도 문경교육지원청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올라온 고금자 씨에 대한 칭찬글 (사진: 경북 문경교육지원청 홈페이지).

그녀의 코치로서의 능력과 성실함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경북 문경 교육지원청의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그녀를 칭찬하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와있다. 한 게시글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이런 날은 훈련을 좀 쉬는 것이 어떠냐는 저의 말에 고금자 코치 선생님은 동계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직접 눈을 치워 가며 하루도 쉬지 않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지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오늘의 결실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라며 그녀의 제자가 스승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그녀는 “선수 때보다 지도자로서 더 좋은 성과를 이룬 것 같다”며 “선수에서 코치로 전환하기를 잘한 것 같고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체육정보센터 스포츠지원 포털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정구 종목에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는 전국적으로 938명이고 등록되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나 동호회 선수들을 합하면 약 5,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정구를 즐긴다고 한다. 정식으로 등록된 938명의 정구 선수 중 경북 선수가 138명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은 편에 속한다. 경북 문경에서는 전국 규모의 정구대회가 매년 3차례 이상 열리고 있으며, 5,000명 이상의 정구인들이 그때마다 문경을 방문하면서, 문경은 전국 최고의 정구 도시로 불리고 있다.

고금자 씨는 문경이 정구 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 그녀는 10대 어린 중학생 때부터 정구채를 잡기 시작해서 현재는 지도자로서 평생을 비인기 종목인 정구에 이바지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은 것, 자신의 제자들이 정구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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