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지 않다 -연예 콘텐츠 죽이는 연예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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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지 않다 -연예 콘텐츠 죽이는 연예매체
  • 취재기자 안나영
  • 승인 2019.10.11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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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혜은(22) 씨는 평소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이 씨는 지난 4월 방영된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개봉 전부터 기다려왔다. 하지만 이 씨는 SNS를 하던 중 ‘인사이트 뉴스’가 게시한 기사의 제목과 사진을 보고 스포일러를 당했다. 영화의 중요한 장면이 담긴 사진을 기사에 싣고 영화의 결말 내용을 제목으로 그대로 쓴 것이다. 이 씨는 “의도치 않게 스포일러를 당해 허무했고, 기다렸던 영환데 그렇게 결말을 알게 돼서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연예 매체가 무서워서라도 이제 개봉 당일에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대학생 최예진(22) 씨도 연예 매체로 인해 스포일러를 당한 적이 있다. 최 씨는 랭킹 뉴스를 보다가 연예 분야에 있는 한 기사 제목을 보게 됐다. 최 씨가 평소에 즐겨보는 드라마 관련 기사였다. 드라마의 본 방송 시청을 놓쳐 재방송으로 볼 생각이었지만 기사 제목에 이미 다시 보기 할 회차의 반전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기사를 클릭한 것도 아닌데 제목만으로 드라마 내용을 스포일러 당한 것이다. 최 씨는 “가면 갈수록 기사 제목이나 내용이 스포일러인 경우가 많아 드라마를 볼 때는 뉴스 사이트나 포털 등을 피하게 된다”고 전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결말과 반전 내용을 기사 제목만으로 스포일러 하고 있는 연예매체(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영화와 드라마의 결말과 반전 내용을 기사 제목만으로 스포일러 하고 있는 연예매체(사진: 페이스북 인사이트 페이지 캡쳐).

스포일러(spoiler)란 콘텐츠의 줄거리나 반전을 예비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미리 밝히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나 결말, 반전 등을 미리 알려 예비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이 말이 인쇄매체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 또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스포일러라는 말이 대중화된 계기는 바로 서울극장 앞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1995년)’의 스포일러다. 극장 앞에 선 사람들에게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큰 소리로 "XXXX가 범인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렇게 주위에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는 교묘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중요한 내용을 미리 밝혀 감상하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연예 기자들의 무분별만 스포일러 남발 기사가 많이 생성되고 있다. 스포일러는 연예뉴스 섹션에서 무려 ‘단독’기사, 혹은 ‘프리뷰’기사로 둔갑해 시청자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나 개봉을 앞둔 대작 영화는 대중문화 소비자들의 주된 관심사고, 그런 만큼 관련 기사들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문제는 조회 수 극대화를 위해 연예 메체들이 시청자,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반전이나 결말을 기사화한다는 점이다.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무심코 기사를 클릭한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방송 담당 기자가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방송 소식을 전하는 건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 만큼 기자들은 제작진과 연예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얻는 권리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얻은 정보 모두를 기사화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정보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보는 기사화하지 않는 것이 맞다. 스포일러도 마찬가지다. 결말을 알게 되더라도 침묵하는 게 드라마를 손꼽아 기다려 온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이자 자신의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다.

영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개봉에 앞서 기자 시사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기자들이 깊이 있는 기사를 써서 관람 예정인 관객들에게 일정한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기자 시사회를 다녀온 일부 기자들은 프리뷰 기사에 결말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혹은 프리뷰 기사가 아니더라도 개봉일이 지난 후 별다른 스포일러가 있다는 표시 없이 영화의 중요한 내용을 기사에 싣기도 한다.

언론의 조회 수 경쟁은 과열될 대로 과열됐다. 심지어 조회 수를 위해 스포일러를 방조하거나 독려하는 연예 매체 데스크들도 허다하다고 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스포일러 때문에 상당히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한 적 있다. 김태호 PD는 "시청자가 방송으로 즐기기 위해 스포일러 기사의 자제를 부탁한다. 스포일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청자들이다"라며 기자에 대한 일침을 트위터를 통해 남기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 또한 5월 말 칸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을 처음으로 공개할 때 기자들에게 직접 ‘스포일러 금지령’을 내린 적 있다. “실례를 무릅쓰고 간곡히 부탁한다.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최대한 감춰준다면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다.”

언론의 특성상, 스포일러를 무조건적으로 금지시킬 순 없다. 그러므로 분별 있는 스포일러를 할 수 있도록 언론은 노력해야 한다. 조회 수 올리기에 급급하기보다 기사 제목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거나, 기사 노출 화면에 중요 사진을 띄우지 않는다거나, 기사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 돼있다는 표시를 꼭 해주는 등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걸 우선시해야 한다.

기자들의 스포일러 남발을 멈추려면 독자들과 시청자, 관객들도 나서야 한다. 스포일러 유출 매체와 해당 기자의 기사 조회 수를 올려주지 않는 것이다. ‘저 매체는 드라마, 영화 스포일러 단골 매체야. 안 보는 게 나아’라며 매체 평판 스포일러를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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