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새해 "뚫자! 솟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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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새해 "뚫자! 솟자!"
  • 칼럼니스트 박찬용
  • 승인 2015.12.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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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찬용(朴贊龍)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우주(宇宙)의 운행(運行)은 한결같으나 인간의 필요에 따라 또 1년을 쪼개며
60년 주기의 도돌이표 이름에 새 희망을 건다. 
병신년을 음양배합과 동물띠로 보면 ‘붉은 원숭이 해’에 해당한다.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운을 점치거나 의지를 다지곤 하는데,
바뀐 새해 이름은 어떤 기준점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줄까 궁금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정신적 산물에는 여러 상징이
암호 형태로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붉다는 색감과 원숭이의 행동양식에서
이미 ‘열정과 재미’라는 코드를 찾아내 주위사람과 공유 중이다.
좋은 해석과 긍정적 마인드가 출발점을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올해가 지닌 상징성의 코드가 이것 뿐일까?
우리는 여기서 붉다와 원숭이를 키워드로 해 또 다른 코드를 찾아내 보자. 
보물창고에는 비밀의 문이 있기 마련이다.

주지하다시피 병(丙)은 십간(十干)에서 오행(五行)상 양화(陽火)에 속해 붉은 색으로 대변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뜻은 위로 솟구쳐 오르는 힘을 상징한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五行)을 두고 나무니 불이니 해서 물상(物像)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역리학자들은 물상이 아니라 그 성질로 여러 현상들에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한다.
따라서 병(丙)에는 위로 오르려는 밝은 색깔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또한 원숭이 해가 되고보니 자연스레 동양 판타지의 백미인 <서유기>가 떠오른다.
많은 이들은 이 소설이 명나라 때 오승은이 지은 공상소설로만 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상징 코드를 찾아낸 선사(禪師)나 도학자(道學者)들은
<서유기>가 몸과 마음에 관한 비유소설이라 말씀하신다.
일단 ‘깨달을 오(悟)’자와 ‘빌 공(空)’자가 든 손오공의 이름을 지적하며
일체법은 다 비었다(一切法空)는 불법(佛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마음을 원숭이에 곧잘 비유하곤 하는데 손오공이 바로
번뇌의 마음을 의인화한 인물이 되고 삼장법사는 양심(良心)의 화신이 되는 셈이다.    
소설 중 나오는 여러 요괴는 몸속 각 장기의 특성을 대변하거나
인간이 가진 나쁜 습성을 나타내는 것이란 얘기다.
사오정은 肝의 속성이고 저팔계는 소화기 계통을 대변하며
삼장일행이 도착하는 서천은 단전(丹田)을 뜻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십이지(十二支)상 원숭이를 나타내는 신(申)을 살펴보자.
자전(字典)에 적힌 몇가지 뜻 가운데 ‘펼친다’의 의미를 주목해보면
상징적 코드를 찾아내는 탐험에 보다 다양한 길이 보일 것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뜻글자인 한자를 두고 다양한 유희가 발달해 있는데
그중 측자점(測字占)이란 게 있다.
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한정하지 않고 글자를 쪼개거나 덧붙이고, 혹은
목적에 걸맞게 추리하여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옛 선비들은 점술과는 관계없이 파자(破字)를 문자 유희로 즐기기도 하였지만
측자점과 관련된 고명한 예화(例話)는 중화권에서 많이 회자된다.

한 가지 사례를 들면, 어떤 사람이 저명한 측자고수에게 불 화(火)자를 써 보이며
은둔을 풀고 나가야할지에 대해 길흉을 묻는다.
이에 고수(高手)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며 해설하기를,
“글자의 모양이 다리를 벌리고 걷는 모양새이므로 나가는 게 맞으며
집에 있으면 불(火)이 집(宀)안에 있는 꼴이라서 재앙(灾=災)이 되니 반드시
나쁜 일이 있을겁니다”란다.

이 측자(測字)의 방법을 원용하여 신(申)자를 풀어보자.
신(申)자는 세 줄의 가로금에 한 줄의 세로금이 관통하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 글자 앞에 ‘보일 시(礻)’자 부수를 붙이면 신선 신(神)이 되므로
신(申)자에는 신비한 기운이 펼쳐져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가로 세 줄은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내는 상징적 경계선으로 볼 수 있고
세로 한 줄은 그 삼재(三才)를 하나로 관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저 아래 용궁에서 하늘 끝까지 꿰뚫는 손오공의 여의봉을 닮았다 할까.

지금까지 귀납(歸納)의 과정을 통해 드러난 의미들을 통합하여 보면
우리는 바로 ‘뚫고 솟아 오르다’란 상징코드를 도출해낼 수 있다. 
그렇다해서 이 또한 정해진 답이 아니므로
누구든 자신의 상황에 맞춘 희망의 상징코드를 찾아볼 일이다.

그러면 뚫는 대상은 무엇인가?
우선 개인의 좋지 못한 습관이 되겠으며, 또 하나는
천지인에 경계를 짓는 마음의 금긋기를 허무는 일이 될 것이다.
욕망과 어리석음에 집착하는 개인의 나쁜 습관을 불가(佛家)에서는 습(習)이라 한다.
피를 빠는 습성을 지닌 거머리는 죽여서 가루를 내어도 여전히
피를 흡착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끊기 어려운 習의 무서움을 비유하는 경우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인간은 오히려 이 거머리의 습을 종기를 삭히거나 어혈을 푸는
한약재(水蛭)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어쨌건 현재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하고 있는 많은 갈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만성적으로 체질화되어 있는 편가르기의 습과
그로 인한 무기력의 관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습(習)과 마음속 경계선의 문제는 나태한 개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임무는 잊고 일신영달(一身榮達)만 꾀하는
공인(公人)도 해당된다 하겠다.

앞서 열거했던 여러 인용과 언급은 혜안을 지닌 현인(賢人)들의 말씀과 저작에서
빌려왔지만 활용하는 일은 우리 몫이다. 
국난의 위기를 맞아 팔만대장경의 주조 작업을 착수한 해가 병신년(丙申年)임도
지금 생각해 보면 사뭇 의미심장한 일이다.
개인의 일이지만 작년 을미년(乙未年)이 밝으면서, 필자는
새해에 숨겨진 희망의 상징코드를 ‘숨어 힘을 기르자’로 파악한 바 있다.
하여 시간을 쪼개어 어느 때보다 심신단련에 노력한 결과
부족한 지식의 일부를 채우거나 불편했던 몸도 추스릴 수 있었다.

매년 세밑이 되면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라며
한 해 동안의 나라 사정을 종합, 분석 판단하여 발표한다.
지난 사자성어들을 살펴보면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색깔 일변도다.
지금도 사람들 마음은 종교간 인종간 금긋기로 분주하고
세상은 여전히 혼란한 상태라 미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올해 만큼은 ‘개물성무(開物成務):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천하의 일들을 성취시킨다 – 역경(易經)' 같은 긍정적인 사자성어가 나올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할 일이다.

뚫고 솟자!

*필자 박찬용은 부산MBC 기자로 입사, 보도국 각 부서를 거친 뒤, 전략기획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주)한세투어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수필집을 낸 명 칼럼니스트이며, 한학에 조예가 깊다. 불가에서 일수(日水)란 법호를 얻은 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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