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 사태 따라 춤추는 ‘피의사실공표’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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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장관 사태 따라 춤추는 ‘피의사실공표’논란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0.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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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집단이 한날한시에 촛불을 들었다. 한쪽은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다른 한쪽은 ‘조국탄핵’과 ‘정의검찰 지지’를 연일 외쳤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정확히 반대되는 의미의 피켓을 든 시위대의 모습은‘조국 사태’로 양분화된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9월 28일 서울중앙지검 앞 8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지난 9월 28일 서울중앙지검 앞 8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임명 이후 점차 잦아들 것이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애초 기대와는 달리 점차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 달이 넘도록 조국 법무부 장관에 관한 새로운 논쟁거리가 매일 생겨나고 있어 논란이 잦아들 새가 없다. 최근 정치 양상을 요약해보자. 조국 법무부 장관, 혹은 그의 측근이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여당은 즉시 검찰에서 수사 정보를 야당·언론에 일부러 흘렸다며 경위 조사를 촉구하고, 야당은 제기된 의혹을 빌미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다. 이 같은 똑같은 패턴의 정쟁을 뉴스를 통해 매일 접하면서 나는 다른 것보다 피의사실 공표를 들먹이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여당이 의문스러웠다. 지금의 여당 역시 과거 보수 정권 인사들의 수사 정보가 알려질 때마다 이를 문제 제기 없이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올해 3월 22일 밤 11시 넘어 한겨레 신문은 "[단독] 김학의 한밤중 타이로 출국하려다가 긴급 출국금지”라는 단독 보도를 내놓았다. 이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23일 새벽 법무부는 법무부에 등록된 모든 매체의 기자들에게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하여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취해 출국을 못하도록 조치했습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법무부의 이러한 조치는 당시 취재기자들이 “수사기관이 피의자 출국금지 사실을 공식 확인해주는 것 자체가 거의 처음 아니냐”고 입을 모았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피의사실을 공표한 3월 23일 당일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어땠을까.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법무부의 피의사실 공표를 그대로 인용해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속히 증거를 보강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을 주문하는 서면 논평을 내놨다.

시간이 지나 여당은 조 장관 측근의 출국금지와 관련한 동일 사안에 다른 반응을 보여줬다. 지난 8월 28일 동아일보는 "[단독] 檢, 조국 부인-모친-동생-처남 출국금지"라는 단독 보도를 냈다. 이 보도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복수 언론사 기자들에게 “중요 수사 대상에 대해서 압수수색 이전에 출국금지를 하는 것은 수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이 보도가 나온 당일 민주당의 반응은 전과 달랐다. 여당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았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28일 당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주요 언론들이 후보자 가족에 대한 출국금지 여부 관련 수사 상황 등의 내용 등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피의사실 공표 법 위반을 과거 검찰의 대표적인 적폐 행위로 규정했다.

이처럼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두고 약 5개월 만에 전혀 다른 입장을 견지한 민주당은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정치권에서 해마다 반복됨에도 해결되지 못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검찰 수사의 칼이 반대 진영을 향할 땐 이를 신명 나게 활용했다가 수사의 칼이 자신들을 향할 때만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정색하고 외쳐댄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행동하는 정당의 이러한 행태는 ‘내로남불’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고, 국민으로 하여금 ‘믿을 정당 하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해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증가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피의사실 공표죄를 더는 사문화 상태로 두지 않겠다고 작심한 상태다. 법무부가 만든‘공보준칙 개정안’초안을 보면 앞으로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구체적 수사 내용은 검찰, 법무부, 청와대를 빼고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밖에도 재판이 열리고 나서도 최소한의 정보만 일반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경찰과 검찰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현행범이나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공인에 대한 수사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수사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개해왔지만 이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규정대로라면 사법 농단이나 국정 농단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의 수사과정도 앞으로는 비밀에 부쳐진다.

“언론의 문제를 온통 법적 규제로 풀겠다는 시도는 결국 누군가가 입맛대로 언론을 규제하고 통제할 길을 열어주게 된다.”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은 언론 전문 계간지 ‘관훈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계식 수사 보도가 문제가 된다고 해 지금처럼 모든 사건에 대한 공개를 금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법무부는 이 방안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취재 자유를 역으로 침해하진 않는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 또한, 각 정당은 유불리를 떠나 그들의 말처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해서 부디 과거 본인이 한 언행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정치적 일관성을 가지길 바란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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