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의 책과 사람]⑤책이 위대한 왕을 만들었다-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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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의 책과 사람]⑤책이 위대한 왕을 만들었다-세종대왕
  • 김윤환
  • 승인 2019.10.0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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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도서 김윤환 대표
영광도서 김윤환 대표

경전에서 의학서까지 다양한 책을 읽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열거하자면 손가락, 발가락이 부족하다. 우리 역사에 세종임금이란 조상이 있다는 건 감격만세다. 위대하다는 말조차 계면쩍다. 고맙고 고맙다. 그의 영정에 엎드려 3000배를 올린다 한들 고마움을 갚을 수 없다.

세종은 어린시절부터 엄청난 책을 읽었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몹시 추울 때나 더울 때에도 밤새 글을 읽는구나. 나는 그 아이가 병이 날까 두려워 밤에 글 읽는 것을 금하였다. 그런데도 나의 큰 책은 모두 청하여 가져갔다”고 했다.

세종의 독서는 유학의 경전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법학·천문·음악·의학 다방면에서 전문가 이 상의 지식을 쌓았다. 경서는 모두 100번씩 읽었고, 경서 외에 역사서와 다른 책들도 꼭 30번씩 읽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을 비교하여 정리했다.

1422년, 태종이 죽고 세종은 재위 4년 만에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태종이 만들어놓은 정치적 안정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했다. 선현의 지혜를 신뢰했던 세종은 우선 유학의 경전과 사서를 뒤져 이상적인 제도를 연구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골격만 갖춰진 제도를 세부사항까지 규정해나갔다. 작은 법규 하나 만들 때에도, 그 제도에 대한 역사를 고찰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 다른 제도와의 관련성, 현재의 상황을 고려했다.

세종은 지방 관리들에게 각 지역의 지도·인문지리·풍습·생태 등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올리라고 명했다. 이를 수합(收合)하여 책으로 편찬했다. 많은 자료를 간행하다 보니 인쇄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세종 치세에 인쇄 속도가 10배로 성장했다.

세종은 집현전의 연구기능을 확대했다. 집현전은 국립연구소다. 요즘으로 치면 한국학중앙연구원+카이스트인 셈이다. 정인지·성삼문·신숙주 등 당대의 수재들에게 연구를 분담시켰다. 이렇게 해서 윤리·농업·지리·측량·수학·약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편찬했다.

관료·조세·재정·형법·군수·교통 등에 대한 제도들을 새로 정비했다. 이때 정해진 규정들은 조선에서 시행된 모든 제도의 기본이 되었다. 세종은 과학기술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 초에 천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운관을 설치했으며, 혼천의·앙부일구·자격루를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박연을 등용해 아악을 정리하고 맹사성을 통해 조선에 적합한 음악을 만들었다.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독서휴가제를 시행하다

1426년, 세종은 촉망받는 젊은 인재들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년 정도 휴가를 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현재 맡고 있는 직무로 인해 책 읽는 데 집중할 겨를이 없으니, 대궐에 출근하지 말고 집중할 수 있는 거처에서 글을 읽고 성과를 내어 나라에 보탬이 되라는 게 제도의 핵심이다. 관리로 등용된 인재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최소 1∼3년에 이르는 독서휴가 기간 동안, 신하들은 집 혹은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읽은 내용을 정리하여 리포트를 올렸다. 왕은 식량과 술 및 물품 등을 내려 주며 독서를 권장했다. 이는 독서를 배려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특정 주제에 대한 몰입을 요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학 교수에게 주어지는 안식년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성종 때에 이르러서는 독서당도 지어 학문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배려했다. 한양에만 3곳이 있었다. 옥수동 근처 한강변에 있던 동호당(東湖堂), 마포에 있던 서호당(西湖堂), 용산에 있던 남호당(南湖堂)이 그곳이다. 동호당은 이율곡이 특별휴가를 받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저술한 곳이다.

직원들에게 ‘몰입’을 요구하는 현상은 최근에 들어서 미국을 위시한 대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다. 세종의 앞선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영국에서 고위관리들에게 3년에 한 번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게 하는 휴가제도가 독서휴가제의 시초로 보인다.

기업, 공무원 사회에서도 이 제도가 확대되고 있다. 인천시는 수년 전부터 ‘독서휴가제’를 실시해서 공무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천시 인재개발원은 단기교육을 받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번에 2시간씩 총 4시간의 독서시간을 줬다.

업무 시간 외에 별도의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 데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독서휴가제를 도입해 교육시간 중 일부를 독서 시간으로 활용토록 했다. 독후감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독후감은 자율적으로 인재개발원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유도하고 우수 독후감에 대해서는 상품을 지급했다.

교육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평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안 읽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동기 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독서휴가제는 사장과 직원, 상급자와 하급자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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