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삭발은 미디어 쇼 아닌가?
상태바
정치인들의 삭발은 미디어 쇼 아닌가?
  • 경북 포항시 임소정
  • 승인 2019.10.01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교안 대표의 삭발 이후 한국당 전·현직 의원들도 삭발하며 '릴레이 삭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황교안 대표의 삭발 이후 한국당 전·현직 의원들도 삭발하며 '릴레이 삭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정치인의 삭발식은 자극적이고 의도가 빤히 보이는 아침 드라마와 같다. 조국 사태 이후인 9월 10일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삭발을 감행했다. 또 지난 11일에는 자한당 박인숙 의원과 김숙향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16일은 자한당 대표 황교안이, 17일은 김문수 전경기도지사가 삭발을 이어갔다. 이언주 의원을 시작으로 야권의 릴레이 삭발이 시작된 것이다. 시작을 끊은 이언주 의원은 자신이 왜 삭발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를 영상으로 알렸다. 영상에서 이언주 의원은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대신해줘야겠다. 이렇게 내가 삭발을 하고 메시지를 던지면 대통령이나 조국도 듣고 있겠지”라고 말했다. 국민의 마음을 삭발로써 보여줬다는 뜻이다. 이언주의 눈물의 삭발식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지 않다. 정치적 쇼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삭발한다고 해서 시민들의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호소력도 없고 자극적이기만 한 삭발은 기사로도 그만 접하고 싶다.

이언주 의원의 삭발에 관한 뉴스 기사는 대부분 왜 삭발을 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지어 13일 JTBC의 비하인드 뉴스는 첫 키워드를 ‘삭발의 이유’로 정하면서 삭발의 취지를 좋게 풀어나갔다. 꼭 삭발을 홍보해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삭발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까지 함께 담은 뉴스는 11일 MBC의 기사와 12일 아시아 경제 기사 정도다.

삭발은 민주화 과정에서부터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도구로 사용됐다. 1987년 대선정국에서 박찬종 전 의원이 김대중과 김영삼 두 후보의 단일화를 주장하며 삭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삭발은 공개적인 투쟁 의사 표명의 상징이 됐다. 조선 시대도 아닌 현대는 머리카락에 크게 중한 의미가 없다. 공자의 신체발부 수지부모는 옛말이 됐으며, 삭발도 하나의 스타일이 된 만큼 파격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삭발로 정치인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하고 부적합하다.

2017년 11월 15일 내 고향인 경북 포항에 큰 지진이 났다. 이 지진은 자연 재해가 아닌 지열 발전소에 의해 일어났던 지진이다. 대처를 잘 못 했던 탓에 지진이 발생했던 지점에 살던 포항 북구 시민들은 집이 아닌 체육관에서 아직 지내고 있다. 그 수는 대략 82세대에 이른다. 이후 올해 4월 2일 포항 11·15 지진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에서 이강덕 포항시장과 서재원 포항시의장이 삭발을 단행했다. 시민들이 불쌍한 것을 알아달라고 말했고, 시민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했다. 삭발한 뒤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포항 지진 특별법은 소식이 없다. 지난달 26일에는 국회 각 정당의 대립으로 특별법 제정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범시민대책위가 조기 제정을 촉구할 정도였다. 포항 시민 82세대가 체육관 텐트에서 추석을 두 번 맞이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포항 시장과 시의장이 삭발을 하면서 보였던 의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삭발은 단순히 시민 달래기였을 뿐이다.

삭발 행위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권력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삭발은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삭발은 마지막 몸부림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 정치·사회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삭발을 한다는 것은 무능함을 보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삭발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해결되는 것도 없다. 그들의 삭발은 자신의 지지자와 팬들에게 무언가 결의를 보여주고자 하는 일종의 쇼맨십에 불과하다. 이러한 면에서 단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서 삭발이나 단식이 아닌 사태를 해결하려는 행동력을 보고 싶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