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목줄 길이 2m 제한, 실효성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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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목줄 길이 2m 제한, 실효성 있나
  • 부산시 금정구 김지현
  • 승인 2019.10.01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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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어떤 사물이나 생명체에 대해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중 나는 개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와 길을 걷다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 중인 개 한 마리를 봤다. 그 당시 개를 키우던 친구는 반가운 나머지 이름 모를 개에게 다가갔다. 친구가 개의 곁으로 가까이 다다르자, 개는 한순간에 친구의 손목을 물어버렸다. 손목에 피를 철철 흘린 채 울면서 나타난 친구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개에게 물린 친구는 손목에 열상을 입었다. 다행히 상처가 심하지 않아 손목을 몇 바늘 꿰매는 것으로 끝났지만, 나는 그때부터 개를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피해 다녔다.

중년 여성이 건물 문 앞에 버티고 있는 개를 보며 경계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중년 여성이 건물 문 앞에 버티고 있는 개를 보며 경계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예나 지금이나 개 물림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매년 2000여 명 이상이 개 물림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개 물림 사고로 병원에 이송한 환자는 2016년 2111명, 2017년 2404명, 2018년 2368명으로 총 6883명이었다. 병원에 이송하지 않은 환자들을 더한다면 실제로는 통계 수치보다 더 높을 것이다.

개 물림 사고가 계속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반려견의 목줄 길이를 2m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아 발표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반려견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외출 시 목줄 길이를 2m로 제한하고, 공동주택 등의 건물 내부 공용공간에서는 동물을 안거나 목걸이를 잡아야 한다. 다만, 반려견 놀이터 등 시·도 조례로 정하는 시설에서는 목줄 길이 조절이 가능하다. 나는 개정안을 보고 ‘목줄 길이를 제한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과연 실효성이 있는 규칙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목줄 길이를 제한하는 것은 1차원적 사고에 불과하다. 목줄을 하지 않고 외출하는 것은 이미 불법임에도 반려견에 목줄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 물림 사고 기사들을 살펴보면, 목줄을 하고 있는 개보다 목줄을 하지 않은 개가 사람을 공격한 경우가 훨씬 많다.

목줄뿐만 아니라 맹견의 경우 입마개 착용이 의무화돼 있지만, 맹견으로 분류된 견종은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 로트와일러 5개 종 뿐이다. 대형견이라도 맹견에 포함되지 않으면 입마개 착용이 의무가 아니다. 개의 크기가 아닌 견종에 따라 입마개 착용이 의무화돼 있어 개의 크기가 커도 맹견으로 구분되지 않은 종의 개에게는 입마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줄 길이를 제한한다고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줄 길이를 2m로 제한했을 때, 단속은 어떻게 이뤄질지 의문이다. 현재 공공장소에서 반려견 목줄 미착용에 대해 단속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목격해도 목격자가 상처를 입지 않는 이상 처벌은 매우 어렵다. 반려견에 목줄을 채우지 않은 견주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인 ‘개파라치’ 도입도 견주들의 반발로 무기한 연기됐다.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견주들은 목줄 미착용이 불법임을 알고 있어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목줄을 하지 않은 개의 단속도 잘 이뤄지지 않는데 목줄 길이를 제한했을 때 견주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목줄 길이 제한을 먼저 하기보다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 목줄 길이보다 입마개 착용 의무화 기준을 견종이 아닌 무게에 따라 재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상해를 입힌 견주에게 지금보다 더 강력한 처벌로 견주들이 경각심과 책임감을 가지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체계적인 신고체제를 정립해 상해를 입지 않아도 공포를 느낀 피해자가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있는 법이나 규제를 방치하지 않고 잘 단속하는 것도 실효성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개 물림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견주들의 인식도 재고돼야 한다. 견주들은 자기의 개는 사람을 물지 않아 안전하다고 하지만 안전한 개는 없다. 개에게 물린 기억이 있거나 나처럼 목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목줄이 풀려있는 개만 봐도 공포의 대상이다. 견주들은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한다. 계속 자기 입장만 고수한다면 개 물림 사고는 물론 반려견에 대한 모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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