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근 수십 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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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근 수십 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보라
  • 취재기자 최정은
  • 승인 2019.10.04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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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의 고풍스런 아름다움과 황푸강 건너 루자쭈이의 화려한 불빛의 공존
외세의 침략에 신음했던 상하이, 이젠 중국의 미래를 한 눈에 보여주는 상징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중국 수천 년의 역사를 보려면 시안을, 수백 년의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수십 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보라.” 그만큼 상하이는 수십 년 만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상하이는 1842년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인해 개항한 중국의 5개 항구 중 하나다. 이후에도 여러 불평등조약을 통해 상하이는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일본·미국 등 8개국의 조계지(租界地)가 되어 서구의 자금과 문물이 유입돼 현재의 모습을 갖춘다.

푸둥 국제공항과 자기부상열차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푸둥 국제공항에 내렸다. 푸둥(浦東)은 황푸 강 동쪽 지역을 아우르는 말로, 1990년대 들어 경제특구로 지정되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푸둥 국제공항 역시 비교적 최근인 1999년 10월 개항해 현대적이고 깔끔한 모습이 돋보였다. 도시철도와도 연결이 잘 되어 있어 우리 일행은 숙소가 있는 난징둥루(南京東路)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열차 내부 전광판에 열차의 속력이 표시되고 있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열차 내부 전광판에 열차의 속력이 표시되고 있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상하이에는 공항과 롱양루(龍陽路) 역을 잇는 자기부상열차가 있다. 당일 항공권을 제시하면 10위안 할인된 가격으로 편도권을 살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탑승구와 매표소가 있다. 중국어와 영어를 함께 표기해놓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상하이에서는 지하철역에 들어설 때 짐 검사가 필수다. 캐리어는 물론이고 미니 크로스백도 여과 없다. 짐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기계 안을 지나 다시 주인에게 되돌아온다. 상하이 여행 3일 동안 짐 검사 전 미리 가방을 벗어두는 습관이 생겨 후에 한국에 와서도 무심코 가방끈에 손이 갔다.

자기부상열차 내부는 기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 열차 사이 통로 쪽에 마련된 짐칸에 캐리어를 두고 빈자리에 앉으면 됐다. 입구 위 전광판에는 현재시각과 함께 자기부상열차의 속력이 표시된다. 내가 본 최고 속력은 301km/h였다. 창밖 풍경을 볼 틈도 주지 않고 저 너머로 사라지게 하는 속력이다. 열차는 7분여 만에 롱양루 역에 닿는다. 잠깐 정차하는 거라 여겼던 우리 일행은 열차가 다시 공항으로 향하기 직전 그곳이 롱양루 역임을 깨닫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나와야 했다.

난징루보행로와 인민광장

난징둥루 거리(왼쪽)와 난징루보행길 중간을 가로지르는 미니버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난징둥루 거리(왼쪽)와 난징루보행길 중간을 가로지르는 미니버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2호선으로 환승해 난징둥루 역에서 내렸다. 4번 출구를 나서자 서구적인 도회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난징루보행길(南京路步行街)의 중간 지점이었다. 난징루보행길은 인민광장(人民廣場)과 와이탄(外灘)을 잇는 총 1km의 대로다. 수많은 인파에도 미니버스가 지나갈 만큼 넓다. 19세기 후반부터 쭉 상하이의 번화가였다는 이곳은 현대식 건물 사이로 당시의 건축물이 혼재해 있어 찾아보는 재미를 더한다. 어디를 찍어도 만족스럽지만 특히 지오다노 매장 위에 걸린 'I♥SH' 현수막 부근은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난징루보행길은 상해 사람들의 문화 공간이기도 한 것 같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 한편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태극권을 연마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미용 봉사라도 하는지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노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있었다. 길 중간 중간 놓인 그늘을 드리운 벤치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직은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인민광장에서부터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인민광장은 마치 큰 수목원 같았다. 난징루보행길에는 젊은 사람들이 주였다면 이곳엔 선 캡을 쓴 어르신들이나 유아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어디서 중국 역사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가 나나 했더니 중년 남성 하나가 중국의 현악기 ‘얼후(二胡)’를 연주하고 있었다. 요즘엔 흔히 들을 수 없는 고풍스러운 선율이 우리 일행을 포함한 지나가던 사람들의 걸음을 붙들었다.

와이탄과 루자쭈이

날이 저물어갈 즈음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와이탄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와이탄은 본래 중산둥루(中山東路) 일대를 일컬었지만 현재는 관광지로 유명해진 황푸 강변의 산책로만을 그렇게 부른다. 이 근방은 영국의 조계지였던 만큼 와이탄을 향해 걷다 보면 영국식의 석조건물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군중의 이동 속도가 더디다 싶으면 9할이 가던 길을 멈추고 풍경을 찍는 사람들 때문이다.

고전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와이탄의 석조건물들 (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고전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와이탄의 석조건물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와이탄의 풍경은 육성으로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어스름이 깔리면 은은한 황금빛 조명이 와이탄의 석조건물들을 비춘다. 누군가 말한 대로 사실 상하이는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건축 박물관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어두운 박물관 안에서 오로지 전시품만이 돋보이게 조명을 비추는 것처럼 말이다.

화려한 조명이 켜진 루자쭈이(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화려한 조명이 켜진 루자쭈이(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맞은편 황푸 강 건너에는 이와는 정반대 느낌인 루자쭈이가 있다. 루자쭈이는 황푸 강 동쪽 금융·무역구의 이름으로 여러 고층 빌딩들이 밀집해 있다. 밤 8시가 되면 이곳의 마천루들은 자신이 최고라고 뽐내는 듯 현란한 조명에 사로잡힌다. 특히 왼편에 위치한 상하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가 가장 화려했다. 와이탄에 비하면 통일성 없고 조잡하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이었다. 저 풍경이 가장 상하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푸 강 건너로 가는 여객선 표가 매진돼 우리는 할 수 없이 택시를 이용했다. 중국은 여간해선 길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탈 수 없다. 차량공유서비스인 디디추싱((滴滴出行)이 상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배정받은 택시를 타고 황푸 강 아래로 난 와이탄 해저터널을 지나 상하이타워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상하이타워에서 바라본 상하이(왼쪽)와 상하이타워에서는 와이탄도 작게 보인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상하이타워에서 바라본 상하이(왼쪽)와 상하이타워에서는 와이탄도 작게 보인다(사진 : 취재기자 최정은)

예매한 입장권을 뽑고 전시장을 지나면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나타난다. 상하이타워의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약 1분 만에 118층 꼭대기에 다다른다. 546m 높이를 단숨에 올라가니 귀가 먹먹하다 못해 아려오기까지 했다. 아픔이 무색하게도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곳의 야경은 최고였다. 와이탄의 건물들이 미니어처만 해진 걸 보고 상하이타워의 높이를 실감했다. 관람객 일부는 어떻게든 상하이의 야경과 함께 카메라에 찍히려 창틀에 걸터앉기도 했다. 전망대의 마감시간인 밤 10시까지 황푸 강이 굽이굽이 어루만지는 상하이를 한없이 바라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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