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의 순간에도 돈과 권력의 양극화가 작동한다...영화 ‘2012’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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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망의 순간에도 돈과 권력의 양극화가 작동한다...영화 ‘2012’를 보고
  • 부산시 금정구 오혜인
  • 승인 2019.09.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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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2' 공식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2012' 공식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2012년,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대 마야문명의 지구종말에 대한 예언이다. 2009년 개봉한 영화 <2012>에서는 이 예언이 실제로 일어난 지구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은 이 예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은 ‘아크’를 만든다.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이 아크에 탑승할 수 있는 ‘아크 탑승권’을 판매한다. 2012년이 되자, 정말 지각이 이동하면서 지진과 해일, 화산폭발이 온 지구를 덮쳤고, 아크 탑승권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크가 위치한 중국으로 이동한다. 이 상황은 일반 시민들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다. 일반 시민들은 아크가 어디에 있는지는커녕, 아크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에서 우연히 아크의 존재를 알게 된 주인공 일행은 구사일생 끝에 아크의 위치가 있는 지도를 확보하고 중국으로 향하지만, 중간에 합류한 아크 탑승권이 있는 자들만 구조를 받고, 아크 탑승권이 없는 자들은 그대로 버림받는다. 또, 아크 탑승권을 가진 자들이 대피하는 와중에 부유해 보이는 한 할머니가 반려견 두 마리를 데리고 바쁘게 달려가는 장면도 들어 있다. 물론 반려견도 소중한 생명임은 맞지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아크 탑승권이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일이 아크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자, 미리 탑승해 있던 고위 공직자가 사람들을 태우지 않고 먼저 출발하자고 주장한다. 온 세계의 상류층, 부유층만이 모인 곳에서도 역시 ‘등급’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에 반기를 드는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아크 탑승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끝까지 백악관을 지키다가 사망하고, 한 과학자는 아크에서 자신이 배정받은 방을 보고 10명은 더 태울 수 있는 넓이라고 분노한다. 또 그 과학자는 대통령의 딸과 함께 먼저 출발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며 다른 나라 고위 공직자들까지 설득해 아크에 사람들을 태우기도 한다.

결론만 보자면, 이 영화는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다. 흔히들 말하는 ‘주인공 버프’로 주인공과 가족들은 살아남고, 지구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아크는 목적지를 향해 순항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무난한 해피엔딩을 보고도 마음껏 안심하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이 예언을 감지했던 과학자 역시 해일에 목숨을 잃었고, 너무나도 많은 일반 시민들이 아크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런 천재지변 속에서 모든 사람이 대피하는 것은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삶과 죽음의 기준이 권력과 돈이라는 것이 굉장히 잔혹하고, 참담했으며,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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