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이 스토리’와 나와 내 장난감은 같이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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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이 스토리’와 나와 내 장난감은 같이 성장했다
  • 부산시 동구 안시현
  • 승인 2019.09.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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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모를 정도로 어린 시절의 나는 집에서 DVD로 디즈니와 픽사의 영화를 아주 많이 봤다. 어느 정도로 많이 보았느냐 하면, 특정 장면의 대사를 다 외우고 폭죽이 하늘에서 터지는 장면만 봐도 눈을 반짝이며 무조건 “인어공주 불꽃놀이!”라고 외칠 정도였다. 디즈니&픽사 영화들은 전부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건 <토이 스토리>였다. 어린 시절 하루의 대부분을 장난감과 함께했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준 영화였다.

영화 '토이스토리4' 홍보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토이스토리4' 홍보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여섯 살에 판다 인형을 선물로 받았는데, 나는 그 인형에 ‘팬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잘 때뿐만 아니라 여행 갈 때, 놀이터에 놀러 갈 때도 몸에서 떼놓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인형은 한쪽 눈알도 없고, 남은 눈은 이리저리 긁혀 흠집이 나 있었다. 코는 어느 순간부터 떨어져서 접착제만 남아있고, 인형 속도 빠져서 흐물흐물한 헝겊 인형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내게 팬지는 ‘앤디’의 ‘우디’였다. 크면서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났지만, 생판 모르는 남에게 주거나,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팬지’의 존재로 인해 <토이 스토리>가 내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다.

어린 시절, 영화 <토이 스토리>처럼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말하는 장난감을 보고 팬지가 말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보고 싶어 몰래 팬지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어린 시절을 동심 속에서 살게 해 준 이 영화는 올해로 어느덧 스물네 살을 맞았고, 네 번째 속편을 개봉했다. <토이 스토리 3>은 개봉 당시, 어쩌다 극장에서 보지 못해서 집에서 IPTV로 봤는데, 너무 감동적이어서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하지만, 재개봉이 아닌 이상,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극장에서 볼 일은 없을 거라며 체념했다. 그러나 올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토이 스토리>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왔다. <토이 스토리 4>가 개봉한 것이다.

24년 동안 발전한 새 그래픽 기술도 기술이지만, 이번 <토이 스토리 4>는 기존의 <토이 스토리>의 흐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 즉 아이의 곁을 지키던 우디였지만, 이번엔 아이의 곁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한 아이의 ‘장난감’으로서의 삶이 아닌 ‘우디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기로 하며 막을 내린다. 장난감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삶을 찾는 이야기라니. 그야말로 <토이 스토리>에 걸맞은 결말인 듯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우디가 앤디로부터 떠나지 않고 그대로 앤디의 곁을 지켰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작년에 집을 이사하면서 팬지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팬지 또한 우디와 같이 아이가 더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삶에 속박당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진 않았을까? 실제로 일어날 리 없겠지만, ‘무한한 세계, 저 너머’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 자유로울 ‘팬지’가 있다면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위안이 된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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