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영의 법률산책]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와 피의사실유포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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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의 법률산책]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와 피의사실유포죄에 대한 단상
  • 정해영 변호사
  • 승인 2019.09.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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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의 법률산책
정해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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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경찰이 최근 특정했다.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모 씨’라는 것이다. 관련 보도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찰과 언론은 이미 실명까지 공개한 상황인데,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경찰은 25일 현재까지 이 씨를 ‘범인’으로 결론 내지 못한 상태이다.

이 대목에서 ‘용의자’란 무엇이며, 지금 경찰과 언론의 태도가 적절한지를 짚어보자.

용의자(容疑者)‧피의자(被疑者)‧피고인(被告人)

‘용의자’란, ‘의심은 가지만 뚜렷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났을 때 특정한 사람이 범인이란 상당한 의심은 가지만 확실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을 ‘용의자’라고 한다. 단지 ‘의심이 간다’는 뜻이다.

용의자를 조사한 뒤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정식으로 형사사건이 된다. 이때 수사기관은 입건(立件)을 하게 되는데, 수사기관에서 정식으로 입건을 하면, ‘용의자’는 ‘피의자’의 신분이 된다.

경찰이 ‘이모 씨’의 자백이 없는데도 어쨌든 DNA 증거 등을 토대로 이 씨를 범인으로 확정하고 입건을 한다면, ‘이모 씨’는 피의자 신분이 된다.

이후 검사가 피의자에 대하여 죄가 있고 처벌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공소제기(기소)’를 하게 되면, ‘피의자’는 ‘피고인’ 신분이 된다.

‘이모 씨’는 피고인이 될 수 있을까?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마지막으로 발생한 건 1991년이다. 무려 28년이 지났다. 당시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됐기 때문에 검사는 기소를 할 수 없다. ‘이모 씨’가 용의자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다만,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이 지난 19일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임영무 기자, 더 팩트 제공).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이 지난 19일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임영무 기자, 더 팩트 제공).

경찰은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에서 한 가지 법률적으로 살펴볼 게 있다.

현재 실명이 거론된 ‘이모 씨’는 DNA 증거와 과거 화성에 거주한 사실 등에 근거하여 유력한 ‘용의자’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다.

경찰이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뚜렷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입건’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등이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혐의나 의심을 받음) 사실을 기소 전에 여러 사람에게 널리 드러내어 알리는 경우 성립하는 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규정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부당한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찰과 언론에서 ‘용의자’ 신분에 불과한 ‘이모 씨’를 두고 실명을 거론하며 마치 진범인 것처럼 몰아가는 건 상당히 위험하고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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