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사하라 사막에서 '어린왕자'의 별을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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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리스트]사하라 사막에서 '어린왕자'의 별을 찾아볼까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9.2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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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나의 버킷리스트④
이광우(시빅뉴스 대표/발행인 겸 경성대 신방과 객원교수)

내 고향은 경남 김해다. 김해, 김해평야, 금바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김해 들녘은 그 이름만큼이나 늘 ‘금바다’가 되곤 했다. 김해 들녘은 온통 황금색이었다. 황금색 벼들이 물비늘처럼 빛났다.

이 노오란 넉넉함과 아련함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은 개발 광풍 탓에 김해 들녘이 대폭 쪼그라들었고, 화목과 강동들판 정도에서나 겨우 ‘금바다’의 자락을 느껴볼 수 있을 정도가 돼 버렸다. 못내 아쉽다.

들녘과 더불어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짙게 남아 있는 게 하나 더 있으니, 전하다리 앞에서 바라보았던 '별바다'이다.

봉황국민(초등)학교 시절, ‘자연’ 과목 숙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봉황동 쪽 전하다리 끝자락에 자그마한 의자를 놓은 채 여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공책에 별자리를 그렸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삼태성 따위의 이름을 되뇌면서 별자리를 그렸을 때, 어린 나는 아름다운 별의 바다를 헤엄치는 행복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때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미지의 별들을 만났다. ‘어린 왕자’는 B-612란 조그만 별에서 왔는데, 사막에서 일부러 뱀에게 물려 자기 별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때, 생텍쥐페리가 그려 놓은 반짝이는 별 그림 하나는 지켜보자니 마음이 무척 시렸다. 나는 사하라사막으로 날아가 B-612를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교과서에서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접했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뤼브롱 산맥에서 양을 돌보는 한 목동의 착한 짝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나(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나는 그 목동이 내심 부러웠고, 은근히 시샘을 하던 터라서, 연애 시절에는 일부러 그런 장면을 연출해 보기도 했었다.

성인이 되어 도시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광공해(대기오염물질과 인공불빛 때문에 시야에서 별이 사라지는 현상)’ 탓에 별빛이 흐릿했고 일상마저 분주해서 대체로 별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어쩌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기껏해야 서너 개의 별밖에 보이지 않아서 흥취가 나질 않았다.

이광우(시빅뉴스 대표/발행인 겸 경성대 신방과 객원교수, 부산일보 전 이사)
이광우(시빅뉴스 대표/발행인 겸 경성대 신방과 객원교수)

그러던 차에 6년 전 중국의 장쾌한 우주 드라마를 접했고, 심장이 기지개를 켰다.

이 이야기를 하자니, 중국의 유인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의 이름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유인우주선의 이름은 ‘선저우 10호’다. 한자로는 ‘神舟(신주)’라 쓴다. 신령스러운 배? 우주정거장의 이름은 ‘텐궁’이다. 한자로는 ‘天宮(천궁)’이라 쓴다.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 궁전? 그러니까, ‘우리는 신령스러운 배를 타고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 궁전으로 간다’는 판타지가 성립되는 셈이다.

이때 여성 우주인 왕야핑(王亞平)은 선저우 10호를 타고 텐궁 1호에 들어가 물방울이 기묘하게 변하는 물리학 실험을 했고, 무술 고수처럼 공중부양을 선보이기도 했다

비닐봉지를 거꾸로 들었는데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 장면을 보여준 뒤에는 “만약 이백(李白 : 중국의 대 시인)이 우주에 왔었다면 그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중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 폭포가 삼천 척을 날아내린다)’이란 시구를 결코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단언하기도 했다.

왕야핑은 별 이야기도 했다. 우주선에서 별을 보면 지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밝지만, 대기가 없는 탓에 반짝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순간, 잊고 있었으나 마음속에 품어왔던 무수한 별들이 물소리를 내며 은하수가 되어 흘러갔다.

일삼아 세어보니, 다른 나라를 얼추 40여 곳 다녀왔다. 별에 관한 한 운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네팔 카투만두에 갔을 때는,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함께 '별바다'를 기대했는데 공기가 나빠서인지 별을 볼 수가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언젠가 추운 겨울에,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타고 한 달 정도 시베리아를 돌아다녔을 때도 자작나무와 눈과 별을 실컷 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별은 거의 보지 못했다. 기껏 “겨울 시베리아에는 새벽에 공중에서 얼음 결정들이 대지로 내려앉으면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데, 그걸 ‘별들의 속삭임’이라 부른다”는 동화 같은 말만 들어야 했다.

인도 바라나시에서도, 미국 뉴욕에서도, 캐나다 로키산맥에서도, 중국 장가계에서도, 일본 삿포로에서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소문을 듣자 하니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막이나 사하라사막, 아랍의 사막, 아프리카와 몽골의 초원 같은 곳에서는 별을 실컷 볼 수 있다고들 한다. 사막에서는 별이 수박만 하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근래 들어 우선 몽골의 대초원에 누워서 질릴 때까지 별들을 바라보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아랍 어느 나라의 사막과 사하라사막으로 갈 수도 있겠지. 언젠가는 아프리카 초원에도. 이런 곳에서는 인문학과 천체물리학 간의 연애담을 들으면서 오래 전의 행복감을 한번 더 만끽하게 되지 않을까?

다른 풍문으로는 가까운 시기에 민간 우주왕복선이 나올 것이라고들 한다. 왕복 요금은 1인당 1억 원 정도가 될 모양인데, 내 버킷리스트의 완결판은 이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 공간에서 별들을 바라보는 게 되지 않을까 싶다.

비용 부담이 엄청나고, 우주에서 사고로 미아가 되어 막막하고 캄캄한 공간을 하릴없이 유영하는 가위눌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미상불 한번밖에 없는 생인 바에야.

여기까지 적고 났더니 “그건 다음 생에서나 하라”는 핀잔의 목소리가 들린다. 간절히 원하는 버킷리스트라 할지라도 모두 다 이룰 수는 없다는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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