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입으라고”...현대판 코르셋이 돼 가고 있는 여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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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입으라고”...현대판 코르셋이 돼 가고 있는 여성복
  • 취재기자 김지은
  • 승인 2019.09.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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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작은 옷 사이즈로 여성들 불만의 목소리 높아

“내가 왜 비참함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터무니없이 작은 국내 여성복 사이즈를 향한 불만 섞인 글들이 많이 보인다. 비교적 저렴한 보세 옷 매장이나 쇼핑몰에 들어가면 아동복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사이즈를 가진 옷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조모(22, 부산시 남구) 씨는 “요즘 옷 매장에 가면 너무 작아 성인이 입을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옷이 많다”며 “대부분 작은 사이즈의 옷뿐이라서 다양한 옷을 구매할 수 있는 폭이 좁아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실제 보세 매장에서 판매되는 여성복으로, 손바닥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사이즈가 작은지 알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실제 보세 매장에서 판매되는 여성복으로, 손바닥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사이즈가 작은지 알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일반 보세 옷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의 주 소비자층은 20대다. 그런데 부산지역 대학가 주변 5곳의 보세 매장의 옷 중 일반적인 성인 표준 옷 사이즈에 비해 현저히 작은 사이즈의 의류가 약 30% 정도에 이른다.

이 의류들은 ‘프리사이즈’라고 명시되어 판매되고 있다. ‘프리사이즈’란 표준 체형에 따른 평균 사이즈를 의미한다. 하지만 ‘프리사이즈’에 맞는 몸매를 가진 여성은 많지 않다. 이른바 '마른 66사이즈' 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프리’라는 말로 어떠한 사이즈의 체형에도 맞도록 제작된 것처럼 착각과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프리사이즈’는 사실상 마른 체형의 사람에게만 허락되고 있다.

대학생 정모(22, 경북 포항시) 씨는 “보기에 좀 작아 보이는 옷이었지만 프리사이즈라고 해서 옷을 구입했는데 표준체형인데도 옷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며 “팔기 위해서 무작정 프리사이즈라는 말만 써놓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옷 사이즈의 문제가 아닌 자신이 우리나라 여성 평균 사이즈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탓하며 이로부터 불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대학생 이모(22, 부산시 남구) 씨는 “요즘 옷 매장에 들어가기 싫다”며 “아동복 사이즈 수준의 옷들을 보면서 왠지 안 맞을 것 같아 불안하고, 그 옷들을 입으려면 내 몸을 거기에 맞추라고 강요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한다”고 말했다.

실제 여성의 표준 사이즈에 비해 옷 크기가 훨씬 작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옷 크기가 실제 여성 표준 사이즈에 비해 훨씬 작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일반적으로 국내 여성복 사이즈는 44·55·66사이즈로 나뉘며 그 이상부터 빅 사이즈로 분류된다. 이 기준은 국가기술표준원의 전신이었던 한국공업진흥청이 1981년에 만든 의류제품 기준 치수 호칭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20대 성인 여성 평균 키는 155cm, 가슴둘레는 85cm였다. 이를 한국공업진흥청은 두 숫자의 끝자리 '5'를 따서 55라는 국내 표준 사이즈를 만든 것이다. 55사이즈 키에서 5cm, 평균 가슴둘레 3cm를 빼면 44사이즈(키 150cm, 가슴둘레 82cm), 각각의 값을 더해 66사이즈(키 160cm, 가슴둘레 88cm)라고 정했다.

하지만 현재 20대 성인 여성의 평균 사이즈는 키 160cm에 가슴둘레 90cm로 66사이즈(키 160cm, 가슴둘레 88cm)를 넘는다. 과거에 55사이즈가 여성 표준 사이즈였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의 평균 사이즈가 66사이즈로 바뀐 것이다.

여성의 평균 사이즈의 증가로 더는 이전에 44·55·66사이즈 표기법을 그대로 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국가기술표준원은 1999년에 44·55·66사이즈라는 의류 치수 표기법을 없앴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한 사이즈 측정 방법이 되다보니, 현재 의류 시장에서도 여전히 과거 여성 표준 사이즈였던 ‘55사이즈’를 기준으로 옷을 제작하고 있다.

이 때문에 터무니없이 작은 사이즈로 옷을 만드는 제조업체를 향해 소비자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한국의 유행 때문에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옷을 제작하는 제조업체도 어쩔 수는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유행은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가장 크다. TV와 SNS 속에서 온통 마른 체형의 연예인들이 화면에 아름답게 묘사되는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자신도 살을 빼면 연예인처럼 예뻐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다수의 방송에서 마른 체형을 강조하는 의상을 입은 연예인들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다수의 방송에서 마른 체형을 강조하는 의상을 입은 연예인들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최근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한 연예인이 특정 다이어트 방법으로 체중을 많이 감량한 것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 즉시 유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체형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소비자들은 마른 체형이라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짧고 작은 사이즈의 옷을 많이 찾아 입어 이런 스타일의 옷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런 경향에 맞춰 제조업체와 판매업체에서도 소비자의 수요에 맞게 작은 사이즈의 옷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평균 사이즈보다도 훨씬 작은 사이즈의 옷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의류업계에서는 플러스 모델을 앞세워 66사이즈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여성복을 제작해 판매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실제 66사이즈를 판매하는 매장이나 쇼핑몰을 들어가 보면 마른 체형이 선택할 수 있는 폭보다 66사이즈 이상의 체형의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옷의 폭이 현저히 좁다.

대학생 김모(22, 부산시 남구) 씨는 “옷 매장에 가면 여전히 마른 체형을 위한 옷들이 대부분”이라며 “보통의 체형이나 통통한 체형의 사람도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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