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너라는 애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 내가 너를 어떻게 잊어. 사랑해, 종인아.” 이것은 여성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보미’가 남성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 ‘카이(본명은 김종인)’에게 보낸 문자다. 이것은 현재 사귀는 중인 남녀 아이돌 멤버 둘이 나누는 사랑 대화처럼 보인다. 이런 문자가 세상에 공개됐다면, 아마도 연예지 1면을 장식할 대형 뉴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돌 그룹 남녀 두 명의 진짜 대화가 아니다. 이 문자는 두 명의 남녀 아이돌 그룹 멤버인 척하는 두 명의 남녀 10대가 서로 진짜 자신들이 아이돌 그룹의 당사자인 것처럼 역할을 맡아 나눈 사랑 밀담의 일부다.
10여 년 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하는 코스프레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 속 대화 수단으로 자신이 연예인이 되어 상대 연예인이 된 친구와 대화하는 문화가 등장했다. 이것을 10대들은 멤버놀이라 부른다.
멤버놀이는 주로 10대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연예인을 선택하고 그 연예인의 성격, 말투, 습관을 똑같이 따라 하는 놀이다. 줄여서 '멤놀'이라고도 한다. 멤버놀이는 주로 네이버, 다음의 카페, 카카오톡, 라인, 카카오 스토리, 트위터 등을 이용해 진행되는데, 각자 자신이 흉내 낼 인물을 선택하고 다른 연예인을 흉내 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노는 것이다.
멤버놀이는 주위 친구들끼리 할 수도 있고 카페나 SNS로 멤버놀이를 할 회원을 모집해서 할 수도 있다. 멤버가 모아지면, 각자 어떤 연예인 역을 할지 정하고, 서로 그 연예인이 되어 어떤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에 따른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그 연예인인 양 충실하게 대화하면 된다. 우리가 흔히 소설이나 아이돌 팬픽(fanfic: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쓴 만화, 소설. 영화 등을 말한다)을 쓰는 것처럼 멤버놀이는 연예인이 되어 대화로 팬픽을 한다고 보면 된다.
멤버놀이는 포털의 카페에서부터 시작됐다.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 SNS가 활발해지면서, 원래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이 음지에서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했던 대화들이 SNS에 캡처되어 떠돌면서 멤버놀이가 청소년들에게 널리 퍼지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멤버놀이를 한다고 밝히는 청소년들은 거의 없다. 음지 문화인 멤버놀이는 일반 대중들에게 안 좋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포털 사이트에 관련 카페가 1만 개 이상이고, 회원 수도 카페당 수천 명이 넘는다. 트위터에도 멤버놀이를 검색하면 수 천 개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같이 멤버놀이를 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카페나 트위터에 홍보글로 멤버를 모집한다. 멤버를 다 구했으면. 각자 어떤 연예인 역을 할지 정한 뒤, 상황극을 대화로 한다.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친구를 맺어 멤버놀이를 하다가 실제로 만나서 멤버놀이를 이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중학생 이모(16, 경남 양산시 서창동) 양은 작년부터 반 친구들과 멤버놀이를 하고 있다. 반 친구들과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을 한 명씩 정해 역할 놀이를 한다. 이 양은 친구들과 멤버놀이를 하면서 실제 연예인이 되어 다른 연예인을 사귀는 듯한 야릇한 기분을 맛보고 있다. 이 양은 “우리끼리의 놀이가 대중들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는 것이 속상하다”며 “이러한 멤버놀이를 하는 이유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흉내 내면서 좀 더 그들 연예인들과 가까워지고 거리감이 좁혀지는 기분이 들어서다”라고 말했다.
멤버놀이가 일반에 알려지며, 멤버놀이를 통해 일어나는 문제들도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멤버놀이를 하는 친구들과는 더욱 친해지지만, 멤버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중학생 김연희(16, 부산시 북구) 양은 “같이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멤버놀이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화에 잘 못 끼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멤버놀이는 실제인 것처럼 배역과 상황이 주어지지만 실제는 아니다. 그렇다보니 멤버놀이 중 나누는 대화들이 비속어와 성희롱적인 언어들로 가득 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에서처럼, “오늘 원나잇 어때?” 등과 같은 농도 짙은 성적 유희가 대화로 지속되면서 멤버놀이를 하는 청소년들은 성적 대리 만족을 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이러한 멤버놀이를 즐길 경우, 놀이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하는 정신 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 멤버놀이를 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부 문은영(44, 부산 금정구 장전동) 씨는 중학생 딸이 아이돌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대신해 놓고 친구들과 채팅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있다. 최근 멤버놀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문 씨가 중학생 자녀에게 멤버놀이를 하냐고 질문하자 딸은 거칠게 아니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문 씨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멤버놀이를 통해서 자신이 연예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놀이에 너무 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산 청소년 상담 복지 센터 관계자는 “청소년 시기 때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예인 역할극을 하면서 자아도취적인 상태로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어서 (멤버놀이 같은) 역할극에 심취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