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자투리 문화 공간이 시민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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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자투리 문화 공간이 시민을 부른다
  • 취재기자 이원영
  • 승인 2015.12.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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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역 문화 공간 '쌈(SSAM)' 오픈...차도 마시고, 작품도 보고, 수다도 떤다

오늘도 지하철 역사를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간다. 지하철역은 사람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이다. 주로 환승역에는 지하상가가 있어서 가끔 걸음을 멈추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지하철 역사를 그냥 삭막하게 지나친다. 지하철역은 그저 지나쳐 가는 곳인가? 아니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3호선 환승역인 수영역 지하상가에는 이곳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수영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향하다 보면, ‘쌈’이라는 글자가 시선을 끈다. 이곳은 밖에서 통유리를 통해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자그마한 카페 같다. 쌈을 싸서 먹는다는 그 쌈일까? 짧게 발음한 싸움을 가리키는 쌈일까? 쌈이란 글씨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 문화 매개 공간 ‘쌈’은 부산도시철도 2호선 수영역 내 위치한 수영상가 13호이며, 4번 출구 방향에 있다.

쌈(SSAM)은 수영역 문화 매개 공간을 뜻하는 Suyeong Station Art Mediate Space의 약자다. 문화 매개 공간 쌈은 입구에서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입니다. 편하게 들어 오세요’라고 써서 걸고 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쌈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잠시 쉬어 가며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문화 매개 공간 쌈 입구에 있는 안내 문구

입구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전시작들이 눈길을 끈다. 쌈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신진 작가들이 예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공간을 대여해 주고 있다. 또,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 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현재 경성대 학생들의 섬유를 이용한 작품들이 이곳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쌈에선 2주 간격으로 새로운 기획 전시를 유치하고 있다. 지나던 길에 잠시 들러, 다양한 예술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쌈은 미술관보다 더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곳으로, 시민들이 보다 쉽게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 쌈의 현재 전시작인 경성대 학생들의 작품들

문화 공간 쌈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가와 교수들로 구성된 부산교통공사 자문단인 '문화예술자문위원회'가 건의해서 생겼다고 한다. 문화예술자문위원회는 부산교통공사가 추진하는 각종 문화 행사에 자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단다. 위원회 중 한 분인 남혜련 씨가 쌈의 대표를 지칭하는 '쌈장'을 맡고 있다. 공간 쌈에는 수영역에서 파견된 공익요원이 자리를 지키며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쌈에선 특별한 모임이 있다.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시간인 ‘쌈수다’다. 쌈수다는 쌈만의 매력이다. 쌈수다는 강연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자리에 초대되는 문화예술인은 배우, 연극 연출가, 화가, 소설가, 영화감독 등으로 다양하다. 지난 11월 25일에는 올해의 마지막 쌈수다가 열렸다. 이날은 마을 활동가 김기식과 함께하는 242번째 쌈수다였다. 243번째 쌈수다는 내년 1월 5일 한국 음악인 신지은과 함께할 예정이다.

▲ 쌈수다의 진행 모습(사진: 쌈 페이스북 페이지)
▲ 쌈수다의 기록을 엮어 낸 단행본

쌈에서의 수다는 쌈수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쌈에선 시민단체부터 작은 동아리, 동호회, 교회 등 어떤 소소한 모임이든 책상에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이곳을 찾아 가볍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간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쌈은 시민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 쌈은 전시 공간이기도 하고, 대화의 장이기도 하면서, 카페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인근 주민 이수지(53,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씨는 최근 수영역을 지나가다가 쌈을 처음 알게 됐다. 하 씨는 “처음 카페인 줄 알고 친구와 점심 먹고 나서 이곳을 찾았다. 예술 작품도 볼 수 있고, 다른 전시 일정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와서 책을 봐도 되고, 둘이 와서 차를 마시기에도 좋은 분위기라, 앞으로 자주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쌈에서 친구와 함께 담소를 나눈 하영은(53,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씨는 “보통 지하도를 보면 빈 상가들이 많아 삭막한데, 이곳은 참 공간 활용을 잘한 것 같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쌈과 같은 문화 공간이 다른 곳에도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쌈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시민들

쌈은 기부금 형식의 이용료를 받고 있다. 이곳에 구비된 차를 마시려면, 종이컵 사용 시 1000원, 머그컵 사용 시 500원을 지불해야 한다.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책정된 해당 비용은 모두 쌈의 운영비로 쓰인다.

쌈에 있는 책장에는 부산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일정을 안내하는 책자를 비롯해 문화예술 관련 서적이 가득하다. 쌈은 우수 문학 도서를 보급하는 문화 재단 ‘문화나눔’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소설책도 구비하고 있다. 이곳 책은 반출이 불가하지만, 운영 시간 내에서 별도의 서류 작성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 행사 포스터와 팸플릿이 쌈 곳곳에 걸려 있다

쌈에서 캘리그라피나 악기 연주 등 작은 강좌가 열리기도 한다. 전시 및 강좌를 위한 대관 비용은 쌈의 운영비로 쓰인다.

쌈은 부산 지역의 예술인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로 5년간 부산교통공사를 설득한 끝에 2009년 12월 이곳에서 처음 문을 열게 됐다. 쌈의 운영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주말은 휴관한다.

▲ 수영역 내에서 쌈의 위치를 안내하는 문구

꽃잎의 모양을 한 쌈의 로고에서 삭막한 지하철 역사에 문화 예술의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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