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산 경관을 정원으로 끌어들여 '한폭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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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산 경관을 정원으로 끌어들여 '한폭의 그림'
  • 취재기자 이정은
  • 승인 2015.11.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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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원의 교과서' 라 불리는 교토 아라시야마 덴류지를 찾다

기자는 7월 3일부터 7월 6일까지 총 3박 4일간의 오사카 자유여행 동안 오사카 인근에 있는 교토에 하루 일정으로 다녀왔다.

교토는 일본 헤이안 시대(794-1185)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의 수도였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간주될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다. 도심 곳곳에 세워진 사찰과 신사는 무려 2,000여 개가 넘으며 기요미즈데라 절, 덴류지 절, 료안지 절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사적만 해도 17곳이 된다. 여러 사적 중 기자는 일본 정원(庭園)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덴류지(天龍寺) 절을 방문하기로 했다.

▲ 아라시야마 역에서 덴류지를 가려면 지나가야하는 도월교. 달이 다리를 지나간 모습과 비슷하여 도월교라고 한다(사진: 구글이미지).

아라시야마 역에서 덴류지까지는 도보로 20분. 하지만 초행길에 혹시나 길을 잃을까 아라시야마 역에서 28번 버스를 타고 두 개의 정거장을 지난 후 내렸다. 나중에 다시 역으로 돌아갈 때 교토의 버스가 요일별, 시간별로 같은 번호 버스라 해도 정차하는 곳이 달라 버스정류장을 찾는데 난감했었다.

덴류지는 무로마치 시대 장군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천황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찰이다. 덴류지는 교토의 선종 사찰 중 제1위로 세력을 떨쳤지만 막부(일본의 무사 정권을 지칭하는 말)의 몰락과 함께 축소됐다. 창건 당시 150여 개의 사찰이 있었지만, 당시의 건물은 불에 타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메이지 시대에 지은 것이다. 그런데도 입구에서 본당까지 걸어오는 데만 도보로 5분, 300m가량 됐다. 건립 때부터 있었던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유일하게 일본 정원 중 정원이라는 덴류지 소겐치 정원만이 1339년 건립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 덴류지 매표소 바로 앞의 법당 건물. 법당으로 들어가면 왼쪽은 본당에 해당하는 대방장(大方丈), 그리고 오른쪽으로 서원인 소방장(小方丈)이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덴류지 정원 및 경내 입장료는 500엔(한화로 약 4,600원), 법당 입장료는 별도로 500엔을 내야 한다. 법당 입장료를 더 내는 대신 입장권을 끊은 사람들에 한해 신발을 벗고 법당 안을 둘러 볼 수 있다. 기자는 일정이 촉박해 원래 덴류지 방문의 목적이었던 정원만 둘러봤다. 시간이 있었다면 법당 안에서 소겐치 정원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을 듯했다.

▲ 오른쪽 사진은 덴류지 정원 입구로 들어가면 보이는 돌과 자갈의 물결(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왼쪽 사진은 교토 료안지 정원에서도 자갈을 이용한 물결을 볼 수 있다(사진: 구글 이미지).

기자는 곧바로 정원으로 가는 옆문으로 향했다. 옆문을 통과하면 바로 돌과 자갈로 정성스럽게 손질해서 무늬를 만든 정원의 일부가 보였다. 평범한 모래 정원보다 입체감도 있고 멋들어지게 보였다. 한국인 가이드 김은주(31) 씨는 돌과 자갈은 일본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정원을 꾸미는 재료로써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눈에 잘 띄는 커다란 돌은 신으로 추앙했고, 자갈은 신성한 장소로 표시하는 용도”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덴류지의 가장 명소라는 소겐치 정원이 보였다.

▲ 소겐치 정원을 둘러싼 나무들과 아라시야마 산이 경계 없이 어우러졌다. 일본 정원의 특징 중 하나인 ‘빌린 경치’가 느껴진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소겐치란 '한 방울의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모든 사물의 근원’이라는 ‘소겐치 잇테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소겐치 정원은 연못을 중심으로 그 주의 산책길에 따라 거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회유식(回遊式) 정원이다. 그래서 연못을 중심으로 소나무와 암석이 어우러져 있고, 주변의 산들은 배경으로 흡수되었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정원 밖의 풍경을 정원의 디자인으로 흡수하는 것 또한 일본 정원 특징의 일부라고 가이드 김 씨는 설명했다. 최지인(21, 서울시 강남구) 씨는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다”며 “과연 일본 정원의 교과서로 불려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감탄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덴류지 소겐치 정원은 아라시야마의 자연을 그대로 배경 삼아 만든 정원이라는 찬사를 얻은 사찰로 일본 사적명승지정 제1호로 지정되었다. 사적 및 명승이란 역사적 유적과 주위환경이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구성하고 있는 곳을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기념물을 뜻한다.

▲ 한국과 달리 일본정원에서는 잔디 대신 이끼로 정원을 꾸민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본당과 소겐치 정원에서 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아기자기한 산책길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잔디 정원과 달리 산책길에서도 일본 정원 특유의 이끼 정원이 보인다. 나무 관목 잔디 등 수많은 식물이 일본식 정원을 위해 쓰이지만, 100여 종이 넘는 이끼도 정원을 꾸미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원의 잔디밭에서 오는 향긋한 풀 냄새도 좋지만, 새소리가 들리는 산속의 촉촉한 이끼밭 냄새도 색다르고 좋았다. 이동한(22, 부산시 연제구) 씨는 "이끼 표면이 보송보송 해 보이는 것이 마치 녹색의 카펫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촬영지로 유명한 대나무 숲인 치쿠린(竹林)과 연결된다.

▲ 덴류지와 이어진 대나무 숲인 치쿠린(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일본 사람들의 정원 사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별나다. 그 역사도 1,000년을 거슬러 갈 정도로 오래 됐다. 원래 일본에서 정원은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써 그들의 복과 행운을 빌었다. 집주변 공터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소에서 점차 흙을 쌓아 나무를 심거나, 연못을 파는 등 정원이 관상 목적으로 변하게 됐다.

또한, 힘의 세력에 따라 그들이 추구하는 정원의 모습도 달랐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헤이안 시대에 귀족들이 정원 예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귀족들은 자기의 궁이나 건물에 정원을 짓기 시작했고, 정원은 불교의 이상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식으로 지어졌다. 헤이안 시대의 정원은 ‘극락 정원’이라고 할 만큼 연꽃과 아름다운 탑이 꼭 포함되어있는 정원을 원했고, 커다란 연못에 보트가 지나갈 수 있게 지어진 다리로 연결되는 섬이 빠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극락 정원의 요소를 포함하는 정원은 있을지라도 오늘날까지 모습을 유지하는 극락 정원은 없다고 한다.

화려함이 목적이었던 헤이안 시대의 정원과는 달리 덴류지가 건립된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정원은 명상과 종교적인 수양을 위해 사찰 근처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귀족에서 무신정권으로 힘의 세력이 옮겨가면서 헤이안 시대 정원의 특징인 연못, 섬, 다리 등과 같은 요소는 그대로 간직하되 그 크기가 작아지고 간략해졌다. 교토의 덴류지, 료안지가 대표적인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정원이다.

덴류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끼로 일정하게 손질한 이끼 정원, 돌과 자갈로 정성스럽게 손질한 물결 등을 미루어 봤을 때 일본 정원은 섬세한 기교를 다양하게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아라시야마 산을 배경으로 소겐치의 위치를 잡은 것은 정원을 조영하는 데에 자연을 한정된 공간 속에 응축한다. 반면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을 모방하고 축소하기보다는 자연 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입된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 경북 영양의 서석지 등은 지연의 지형을 변형시키지 않았다.

일본 교토의 유명한 사찰이자 정원인 덴류지와 소겐치 정원을 둘러보며 일본인들의 섬세한 정원 예술을 느낄 수 있었고, 오닌의 난 등 여러 교토의 난에도 소겐치 정원만이 8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일본인들의 유별난 정원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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