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영의 법률산책] 고의범과 과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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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의 법률산책] 고의범과 과실범
  • 정해영 변호사
  • 승인 2019.07.0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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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의 법률산책
정해영 변호사
정해영 변호사

얼마 전, ‘폭행치사죄’와 ‘살인죄’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경찰이 직업학교에서 만난 친구를 집단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10대 4명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 게 계기였다.

경찰은 당초 이들 10대 4명에게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었다.

경찰은 ‘가해자들이 구타로 인해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인식한 점’, ‘부검 결과 다발성 손상이 밝혀진 점’, ‘폭행 장면이 찍힌 동영상’, ‘다수의 폭행 도구’ 등을 토대로 살인죄 적용을 결정했다.

이들은 숨진 친구에게 수차례에 걸쳐 돈을 빌려오라고 시키고, 빌려오지 못하면 폭행을 가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숨진 친구가 주차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 75만 원을 빼앗아 유흥비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급기야 지난달 9일 새벽 광주 북구의 한 원룸에서 숨진 친구를 무자비하게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가 구속됐다.

지난달 광주에서 10대 4명이 친구를 집단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얼마 전, 경찰이 친구를 마구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10대 4명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고의냐 과실이냐

폭행치사죄와 살인죄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 폭행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살인죄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중대한 결과’는 동일한데, 왜 형량은 크게 차이가 나는 걸까? ‘고의범’과 ‘과실범’의 차이 때문이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처벌을 위한 형법 조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형법 제250조 살인죄와 형법 제267조 과실치사죄이다. 살인죄는 살인의 의사(고의)를 가지고 살해하는 경우이고, 과실치사죄는 부주의에 의한 실수(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현행 형법은 고의범만을 처벌하며, 과실범은 예외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실화죄(실수로 불을 내는 경우), 과실치상죄 및 과실치사죄 등이 과실범에 해당한다. 과실치사죄의 유형 중에는 폭행 치사죄, 상해 치사죄처럼 비록 폭행 등이 고의였지만, 사망은 예기치 못한 경우였을 때처럼 고의범과 과실범이 합쳐진 것도 존재한다.

앞에서도 본 것처럼 과실치사죄 등은 살인죄에 비해 형량이 가벼운 편이다. 형법 제267조 과실치사죄의 경우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볍게 처벌한다.

과실범을 약하게 처벌하는 이유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과실범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 처벌을 할 때도 고의에 의한 범죄보다 그 처벌의 수위가 상당히 낮다. 그 이유는 형사처벌은 가해자의 신체나 생명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가혹하며,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충적으로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실범을 약하게 처벌하는 이유를, 필자의 형사 변론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하나. 가족과 피서를 갔다 집으로 돌아오던 A는 야간이어서 길이 어두웠고, 길이 구불구불하여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으며, 중앙선에 도로분리대가 있는 편도 2차선 도로를 운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에 충돌하여 차량을 멈추었는데, 중앙선을 침범하여 길을 건너던 사람이 선행 차량에 치어 넘어진 것을 다시 충돌하여 결국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A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였다.

둘. 지방 병원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된 인턴 4일차 B는 병원 과장의 지시를 받고, 인근 바닷가에서 익사 직전에 이송되어 온 응급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채 근처 대학 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환자가 호흡곤란 등의 이유로 사망하게 되었다. 검찰은 B를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다.

셋.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간 대학생 C군은 방학을 맞아 필리핀 세부 지역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서 관광을 하던 중, 폭포 위쪽으로 올라가 휴양지 측에서 폭포수 아래로 점프를 하라고 표기한 지역에서 뛰어내렸는데, 마침 폭포수 아래에서 뗏목을 타던 피해자 머리에 떨어져 피해자가 사망하게 되었다. 검찰은 C를 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다.

이런 사례를 보면 A, B, C는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인데, 이들을 처벌하는 게 타당한지, 처벌 근거는 무엇인지, 이들이 어떻게 했어야 피해자들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당시 변호인이었던 필자는 피고인들의 주의의무위반(과실)이 존재하는지 즉, 어떠한 주의를 더 기울였어야 사망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A는 무혐의 처분을, B는 무죄를, C는 형사처벌 중 가장 경미한 선고유예를 각각 선고 받았다. 결국, 검찰 혹은 법원도 가해자들의 과실이 존재하지 않거나, 과실의 정도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형사적 책임과는 별도로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은 성립한다. 형사 책임과 달리,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은 고의 또는 과실에 차이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적 보상의 경우는 가해자 혹은 보험회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요컨대, ‘사망’이라는 결과가 동일할지라도 고의냐 과실이냐에 따라 차별해서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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