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취준생 면접시험용 정장 싼 값에 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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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취준생 면접시험용 정장 싼 값에 빌려줍니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5.11.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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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옷장,' 기증받은 옷 활용...단돈 3만 원에 풀세트 3박 4일 대여
▲ 열린옷장은 기증받은 정장을 대여하고 있다(사진: 열린옷장 제공).

2015년 하반기 기업 공개채용이 진행되는 요즘, 면접장으로 향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면접 보러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남자는 칼 주름이 잡힌 검은 정장, 색이 화려한 넥타이, 때 빼고 광낸 구두로, 여자들은 검은색 투피스 정장이 대세다. 이들 옷은 마치 면접 유니폼 같다. 하지만 좁은 취업문을 뚫으려고 긴장 속에 면접을 준비하는 취준생을 울리는 것이 바로 면접 유니폼 같은 이들 정장이다. 백화점 매장에 가보면 구색을 갖춘 정장 한 벌은 40여만 원이 훌쩍 넘는다. 비싼 정장을 면접 한 번 보기 위해 사자니 취준생에겐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런 취준생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정장을 빌려주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등장했다. 바로 ‘열린옷장’이다.

2012년 7월에 처음 문을 연 '열린옷장'은 정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장을 빌려준다. 3박 4일 대여를 기본으로 하는데, 가격은 재킷·바지·치마 1만 원, 셔츠 5,000원, 넥타이 2,000원이다. 보통 3만~4만 원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차려입을 수 있다.

열린옷장의 특별한 점은 저렴한 가격만이 아니다. 가게가 보유하고 있는 정장의 대부분은 모두 기증받은 옷들이다. 가게를 연 지 3년, 이 가게가 보유한 정장 1,000여 벌과 셔츠와 넥타이 등 액세서리까지 총 4,000여 점이 모두 기증받은 물품이다.

우리 사회는 남의 옷을 입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옷 기증이라 하면 대다수의 사람이 의류수거함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엎고, 열린옷장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옷에 기증자의 사연을 더했기 때문이다. 열린옷장의 옷엔 저마다 꼬리표가 붙어 있는데, 그 표에는 각각의 사연이 쓰여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의 정장, 입사 기념으로 산 첫 정장,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 친구의 정장 등의 사연이 적힌 꼬리표를 달고 있는 정장들은 취준생에게 인생 선배의 응원이 된다.

▲ 최태성 씨는 후배들을 응원하는 메세지를 담았다(사진: 열린옷장 제공).

간호사 윤나라 씨는 남편의 정장을 기증했다. 윤 씨는 자신이 처음으로 선물한 정장이라며 남편이 입고 멋을 내고 다닌 일, 친구들의 결혼식에 다녀온 일들을 적어 그 정장을 기증했다. 또 다른 기증자 최태성 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체격 변화로 못 입게 된 정장을 기증했다. 최 씨는 "면접 시험에 자신의 옷이 잘 활용되길 바란다"며 “청년들이여, 힘내라”라는 말로 응원했다.

열린옷장의 편지는 기증자만 쓰는 것이 아니다. 대여자 또한 옷을 대여하고 반납할 때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게 되어 있다. 대여자들도 기증자 못지않게 여러 가지 사연들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졸업사진이나 취업 이력서 사진을 찍기 위해 빌렸다는 사람, 서류 합격이 면접 3일 전에 발표되어 급하게 면접을 보러 빌렸다는 사람도 있다.

대여자 안성준 씨는 대학교 졸업사진을 촬영하는데 당장 정장 맞출 시간이 없고 체격도 큰 편이어서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도 안 씨에게 맞는 옷이 열린옷장에 있었고, 그는 정장 대여를 통해 촬영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안 씨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정장 문제를 해결했으니 그것을 다시 께끗하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히 든다”며 기증자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 대여자들은 기증자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사진: 열린옷장 제공).
▲ 기증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적은 대여자의 편지(사진: 열린옷장 제공)

외국계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김유연 씨는 우연하게도 외국인 미구엘 수자 씨가 기증한 정장을 대여하게 됐다. 김 씨는 "미구엘 씨가 남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편지 덕분에 면접을 잘 본 것 같다"고 전했다.

첫 면접을 보러 간 최다영 씨는 쇼핑 갈 시간에 열린옷장을 방문한 일이 면접 전 가장 잘한 선택이라 말했다. 최 씨는 “기증자 변소영 씨의 정장을 입으니 어떤 응원과 기를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며 "자신도 옷을 장만하게 되면 기증자처럼 응원과 기운을 담아 기증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열린옷장은 오늘도 기증자와 대여자의 마음을 연결하며 공유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열린옷장은 김소령 대표가 설립했고 현재 한만일 씨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만큼 11명의 직원 외에 다른 일손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빌리고 있다. 매장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해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매장을 찾아가 입어볼 수 있으며, 택배로도 대여할 수 있고, 반납도 택배로 할 수 있다. 아직 지방의 연계 단체는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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