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졸업 작품, 인터넷 카페서 사고 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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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졸업 작품, 인터넷 카페서 사고 팔고...
  • 취재기자 배수철
  • 승인 2015.11.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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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작품 통째로 사서 제출 일쑤 ... 대행업체, 공개 광고하기도

“평점 A+ 받은 졸업 작품 팝니다. PPT와 논문 파일도 같이 드려요.” 최근 중고 거래 인터넷 카페에 접속하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글이다. 최근 대학 졸업 작품 발표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졸업 작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졸업 작품 발표회는 미술계열 등 예술계 일부 학과나 건축 등 공학계열 일부 학과에서 주로 실시되고 있으며, 졸업 작품을 사고파는 행위는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취업 준비하기에 바쁜 공학계열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다.

▲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에 접속하면 졸업 작품 판매 글이 쉽게 보인다(사진: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

매년 11월경이면, 각 대학 중 공대나 예술계에서는 학생들의 땀방울로 빚어진 졸업 작품 발표회가 열린다. 졸업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학교에서 정한 규정에 따른 졸업 조건을 갖추기 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학생들의 취업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양질의 졸업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지난 4년간 배운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졸업 작품은 취업을 앞둔 졸업생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예비 졸업생들은 졸업 작품 준비하는 일 외에도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준비 등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졸업 작품 발표회가 다가오면 학생들은 졸업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새워 작업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졸업 작품을 스스로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작품을 통째로 구매하여 제출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전자공학과 졸업반인 박모(27) 씨는 졸업 작품 발표회를 앞두고 걱정이 컸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졸업 작품을 제출기한 내에 제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박 씨는 우연히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졸업 작품을 판매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그는 곧장 판매자에게 연락하여 완제품은 물론 발표에 필요한 PPT 자료까지 모조리 구매했다. 박 씨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취업 준비 때문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공대 출신 신모(28) 씨는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인 졸업 작품을 그냥 두기 아까웠다. 그는 용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 자신의 졸업 작품을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했다. 결국, 그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자신의 졸업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 할 수 있었다. 신 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판매 글을 올렸는데, 구매 희망자가 생각보다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졸업 작품 상행위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졸업 작품을 아예 외주업체에 직접 의뢰해 맡기는 경우도 있다.

영상 프로덕션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30) 씨는 몇 달 전, 한 대학생으로부터 영상을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김 씨는 영상을 제작하던 중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 영상을 의뢰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완성된 영상을 대학생에게 건네주며, 영상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에 관해 물었다. 알고 보니 대학생은 부산의 영상 관련 학과 학생으로 그가 의뢰한 작품은 바로 그의 졸업 작품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김 씨는 “졸업 작품인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정말 황당무계하다”고 말했다.

▲ 졸업 작품을 전문적으로 대행하여 제작해주는 업체들의 사이트가 버젓이 공개적으로 광고되고 있다(사진: 네이버).

한편, 학생들이 외주 업체에 졸업 작품을 의뢰하는 사례가 점점 늘면서 졸업 작품을 대신 맡아 제작해주는 대행 전문 업체까지 등장했다. 대행 전문 업체는 학생들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시안을 건네받고 견적을 매긴다. 학생들은 견적서에 청구된 비용만 지불하면 손쉽게 졸업 작품을 외부 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다. 네이버에 버젓이 광고하는 졸업 작품 대행업체들의 서비스 내역은 대개 공학계열의 작품을 취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작품 대행업체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업체에 의뢰된 제품 중 20% 이상이 학생 졸업 작품이다. 그는 “본래의 업무에 졸업 작품 대행까지 맡게 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졸업 작품을 외부에 의뢰하는 경향은 학과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공대 계열 학과는 졸업 작품보다는 취업 공부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졸업 작품의 속임수 행위가 성행하지만, 대부분의 예술 계열 학과 학생들은 졸업 작품 제작에 심혈을 기우린다는 것이다. 부산 시내 대학의 디자인학과에 다니는 김진아(24) 씨는 “우린 절대 그런 일 일어 날 수 없다”며 “우리는 학교 작업실에서 완전 밤새 가면서 진짜 본인이 다 작업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들 졸업 작품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올 7월 6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북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관계자가 올 6월에 졸업 작품 상행위를 불법으로 처벌한 사례가 있다. 이 사건은 대학을 진학 못한 고졸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컴퓨터 관련 학과 200여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대리 제작해준 협의로 입건된 사례였다는 것이었다. 전북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대학 학사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적용했다.

경성대 법무감사실 박봉철 변호사는 졸업 작품 제작을 타인에게 의뢰하거나, 타인의 졸업 작품을 대행해서 제작할 경우,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에 의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 씨는 “졸업 작품을 의뢰한 학생은 형법 이외에도 학칙에 따른 근신, 정학, 퇴학 등 졸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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