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결혼식 축가가 운명적으로 이끈 '가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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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결혼식 축가가 운명적으로 이끈 '가수의 길'
  • 취재기자 박주근
  • 승인 2015.11.0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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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앨범 3장 발표한 '대형 가수' 장재호 씨, "내 노래 듣고 위로 받았으면"

“이제는 나는 사랑을 배웠네.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사랑 드려요. 이 눈물 보시는 당신에게 내 마음 드려요.”

이 곡은 가수 조하문의 노래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중 일부다. 가수 장재호(30)가 케이블 방송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장재호가 오디션 출전 곡으로 부른 이 노래는 장재호 덕분에 다시 인기를 회복해서 사연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애창되기도 했다. 장재호는 말한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이별한 사람은 실컷 울었으면 좋겠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실컷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2012년 평범한 대학생이던 장재호는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서 처음 대중 앞에 섰고 그 후 전문가에게 픽업돼서 디지털 싱글 앨범 3장을 발표한 어엿한 가수가 됐다.

▲ <보이스 오프 코리아>에 출전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 장재호(사진: 장재호 씨 제공).

사실 그가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참가한 것은 도전 그 자체였다. 2011년 11월에 오디션 참가를 결정한 그 때, 대학 졸업을 앞둔 그는 이미 대기업 공채에 합격하여 수습기간을 보내고 있었고, 수습기간이 끝나면, 정직원이 보장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회사 업무를 하면 할수록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참가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서 1차 예선에 탈락했던 경험이 있었다. 두 번째 오디션 도전이 그래서 그에게는 더더욱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컨텐츠가 될 수 있을까? 좁은 노래방 말고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장르를 불문하고 노래를 많이 듣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남들이 동요를 들을 때, 혼자 흑인 음악 들었고, 서태지 음악을 듣고 입으로 흥얼거렸다.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보다는 노래 듣고 부르는 게 그저 좋다는 생각이 그와 늘 같이 했다.

장재호와 노래의 인연은 정말 우연히 찾아 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3년, 그는 친지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고, 그것을 눈여겨본 웨딩업체 실장이 결혼식 축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그는 엉겁결에 고등학생 결혼식 축가 가수가 됐다. 그는 “당시에는 잘 모르고 결혼식장에서 한 곡에 3만 원을 받고 축가를 불렀다”며 “그런 축가 가수가 어느새 경험으로 한켜 한겨 쌓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노래와 함께 커온 장재호는 2012년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가리는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서 김연우의 <이별택시>, 김광진의 <편지>, 조하문의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등을 부르며 승승장구했다. 주위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성원에 성원을 보탰지만, 아쉽게도 최후의 8강에서 그의 도전은 멈추고 말았다. 그게 2012년 5월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인생은 새 장을 맞았다. 그는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자신의 노래가 처음 방송된 날에 평생 다시는 못 받을 만큼 주위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 때문이겠지만, 190cm가 넘는 그의 체구 탓도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거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해 그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한 작곡가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게 인연이 되어, 2012년 겨울, 그의 첫 싱글 앨범 <겨울아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가수 장재호의 첫 싱글 앨범인 <겨울아이>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2013년, 2014년, 계속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앨범을 냈지만, 성적은 부진했다. 가수 생활에 열중했던 당시에 부산 사람인 그에게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거리는 큰 부담이었고, 서울에서 앨범 작업을 하거나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울에 사는 지인들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그는 “가수라는 직업은 화려한 부분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가수에게 힘든 날만 있는 건 아니다. 가수가 노래하게 된 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도 있다. 그에게도 가수로서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그의 행복은 한참 가수활동에 바뻤던 2014년 2월 어느 사회복지사에게서 결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다. 그건 단순한 결혼식 축가를 부탁하는 전화였고, 그는 축가를 약속한 결혼식 당일인 2월 15일에 정해진 예식장을 찾았다. 결혼식장에 도착한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결혼식장이라고 알려준 주소를 보고 찾아 와보니, 결혼식장은 없고, 규모가 큰 식당만 하나 있었다. 결혼식장은 그 식당이었다. 그 날은 한 장애인 커플의 결혼식이었다. 신랑은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신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었다. 나중에 그는 사회복지사로부터 그 두 사람이 <보이스 오브 코리아> 오디션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꼭 결혼식에 그를 부르고 싶어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는 “그 때 정말 펑펑 울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내 노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그 때 받은 축가비 봉투를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장애인 커플의 결혼식 날 축가를 부른 뒤 받은 축가비 봉투를 정재호 씨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 장재호 씨 제공).

그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가수라는 일을 선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여 직업으로 삼았고, 그 직업은 자신을 기쁘게도 했고 아프게도 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만이 아름다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 <보이스 오브 코리아> 당시 선배 가수 신승훈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가수 장재호는 현재 한 인터넷 신문의 경영지원 일을 하고 있으며, 틈틈이 시간을 내어 또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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