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다 데이트폭력 몰카 무서워 연애마저 힘든 세상
상태바
취업난에다 데이트폭력 몰카 무서워 연애마저 힘든 세상
  • 취재기자 안나영
  • 승인 2019.06.10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은이들 ‘비싸고 위험한 연애’ 기피...TV 속 주인공으로 대리만족

취업난 속에 주머니는 가볍고, 데이트 폭력이나 불법 촬영 등 성범죄의 두려움에 연애를 선뜻 시작하지 않거나 못하는 한국 청춘들의 모습이 미국 CNN 방송 홈페이지 메인에 등장했다. CNN은 최근 서울발 홈페이지 톱기사에서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연애는 너무 비싸거나 위험하다"는 제목으로 연애를 기피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소개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44세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교제 중인 이성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남성은 26%, 여성은 32%만이 연애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학생들이 젊은이들의 연애기피 현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대학생들이 젊은이들의 연애기피 현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젊은이들에겐 사치가 돼버린 연애

CNN은 한국 젊은이들이 연애를 멀리한 데는 먼저 취업난 속에 연애할 비용을 대기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기도 어려운 현실이 있다고 짚었다.

부산 동명대 학생 최예진(23) 씨는 학업과 병행하며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 과제를 끝낸 뒤 자격증 취득을 위해 컴퓨터 학원에 갔다가, 밤에는 체력단련을 위해 매일 킥복싱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나머지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필기시험공부와 진로 관련 스터디를 하고 있다.

최 씨는 "연애할 시간이 없다""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에게 투자할 시간이 없어서 미안할 것 같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20대에 연애하는 건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김해대 학생 오예지(22) 씨는 매일 상시시험 치기에 바쁘고 돌아서면 새벽 일찍 출근해야 하는 간호실습이 있어 요즘은 시간을 나에게 말고 다른데 쓰기가 아깝다며 속내를 전했다.

문제는 데이트 비용 자체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결혼정보 회사 듀오는 1회 평균 데이트 비용을 63495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시간당 8350원의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7.6시간을 일해야 충당할 수 있는 액수다.

박지훈 씨(25)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연애를 자꾸 피하게 된다. 월세는 부모님께서 지원해줘 그나마 다행이지만 1년 내내 알바를 2개나 해도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데이트 한번 하려면 5만 원은 써야 하는데 그 돈이면 식비나 생필품 등 다른 생활비에 보탤 수 있다고 전했다.

커플이 공원에서 웃으며 데이트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커플이 공원에서 웃으며 데이트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성범죄와 데이트 폭력

CNN은 한국 청춘들의 연애를 가로막는 장애물 중에는 성범죄도 있다고 전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연인 등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20169000 건에서 2018년 약 19000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 1월 서울 관악구 한 빌라에서 20대 여성 A 씨가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6개월째 사귀던 B 씨였다. B 씨는 A 씨가 3~4시간 동안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다른 남성을 만난다고 의심해 빌라로 찾아가 다툼 끝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A 씨의 동생에 따르면 A 씨는 몇 번이고 헤어지려 했지만 B 씨가 너 뿐만 아니라, 너의 친구들까지도 모조리 찾아 죽이겠다며 협박해 헤어지지 못했다.

대학생 김유진(24) 씨는 데이트 폭력 기사를 많이 접하면서 누구를 새로 사귄다는 것 자체에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경계하게 되고, 잘 해주더라도 경계심을 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연인 간엔 믿음이 필요한데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박효진(23) 씨는 한 친구가 남자친구로부터 폭행과 스토킹을 당하는 것을 보고 연애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박효진 씨는 "요즘은 믿을 수 있는 남자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처음엔 상대방이 잘해줘도 다툴 때 언제 돌변해서 해코지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연애가 그렇게 내 삶에서 중요한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CNN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특히 폭력 외에도 불법 촬영 등의 파장이 큰 디지털 성범죄를 걱정한다고 소개했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방에는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피해자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자신을 ‘90년생 여자라며 자신이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3년 동안 불법 촬영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글쓴이가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전 남자친구는 본인 집에서 글쓴이의 성기 및 나체를 찍은 동영상 55개를 만든 다음 이 가운데 촬영물 46장을 나체 사진 인터넷 카페 회원 등에게 유포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통계를 보면, 불법 촬영 피해의 65%는 전 배우자나 연인 등 아는 사람이 저지른 것이었다.

목숨을 잃을 정도로 잔혹한 연인 간 데이트 폭력 사례가 빈발하고 연인 간 카메라 이용 촬영 성범죄(불법 촬영물·몰카)도 꾸준히 발생하면서 누굴 믿고 사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대학생 이아름(21) 씨는 최근 정준영을 비롯한 케이팝(K-Pop) 스타들의 성폭행 단톡방이 공개됐는데 큰 충격이었다새로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만약 그가 성관계 도중에 내 몸을 찍으면 어떡하나 두렵다. 그런 몰카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만큼 연애도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성범죄 불법촬영 등 불안해 연애파업하고 대중문화로 대리만족

최근 케이팝 스타들의 단톡방에서 벌어진 성범죄를 보며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 불법 촬영이나 동영상 유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깨달았다. 가장 친밀한 연인과의 사랑 행위가 몰래 촬영되는 것은 아닌지 여성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이렇다 보니 비싸고 위험한 연애를 직접 하는 대신에 대중문화로 연애를 소비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저출산이 고착되면서 TV에서 육아 관찰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었듯이 연애 파업이 일반화되면서 남의 연애를 관찰하는 TV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또 연애 대신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며 그 연예인과 마치 연애를 하듯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종종 있다.

대학생 김지은 씨(22)요즘 같은 각박한 현실에서 연애하기도 어렵고 굳이 내 환상을 깨고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싶다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쪽이 더 행복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대학생 이지은 씨(22)연애를 하면 시간과 돈과 감정 등 많은 것을 소비하게 된다. 연애로 인해 나를 채운다기보단 오히려 나를 쓰는 느낌이라 굳이 찾아서 연애를 하고 싶진 않다요즘은 연애 관찰 TV프로그램의 보기 좋은 연애를 보면서 대리만족과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연애 기피 현상이 일어났다. 지난 2015년 일본에서 이루어진 국가 출산율 조사에 따르면 40세 이하 여성 44%와 남성 42%가 평생 단 한 번도 성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18~34세 여성 60%와 남성 70%가 현재 애인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낮은 성 경험과 연애 기피 현상은 출산율에 영향을 미쳐 일본의 고령화·저출산 현상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결혼, 출산, 성 경험 역시 일본과 비슷한 상황으로 연애 기피 현상과 미혼율 증가, 출산율 저하가 지속 되면 국가경쟁력 부분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지난 2월 구직자 45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취업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구직자들은 평균 26개 기업에 지원서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류전형 합격 횟수는 평균 3회에 불과했다. 최종 합격을 통보받은 경험은 평균 1회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가난한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 격차와 사회정책 과제보고서에 따르면 젊은 근로 연령층의 빈곤율(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비중)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고 해서 나온 ‘3포 세대’를 넘어 이젠   포기하는 것들이 더 많아 ‘N 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취업난과 소득분배 문제가 완화됐을 때 젊은이들이 쉽게 연애할 수 있는 환경, 결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데이트 폭력 연구소 김도연 소장은 데이트 폭력에 있어서는 처벌 수위가 우선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관련 법이 없어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또  피해자의 심리적 요인도 상당수 작용된다. 정신적 외상을 크게 받았을 때 왜 그런 사람을 만났느냐, 왜 처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느냐 등의 피드백 보다 주변에서 더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는 그런 사회적 문화가 많이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연애 중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EBS FM 공감 시대'에 출연해 말했.

인터넷상에서는 몰카 성범죄로 인해 몰카 찾는 팁’ ‘몰카 탐지 어플’ ‘몰카 탐지 업체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몰카 방지 상품이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경험담도 속출하고 있다. 몰카 탐지 어플을 깔았다는 한 네티즌은 “(해당 어플이) 정수기고 환풍기고 키보드고 철 재질로 된 건 다 반응한다면서 괜히 잘못 없는 사람을 의심해 창피할 일만 생기게 된다고 악평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여자친구가 불안해 해서 (어플을) 사용했는데 잘 모르겠다이런 어플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에게 몰카 안전 대책을 강구하게 하는 식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여성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웹하드 등을 통해 삽시간에 유포돼 피해 정도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불법 촬영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