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이 발견됐다" 560년 신라 진흥왕 명문 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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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이 발견됐다" 560년 신라 진흥왕 명문 판독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5.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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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60년 진흥왕 울진 성류굴 행차 내용...진흥왕 순수비 추가 발견 가능성

신라시대 금석문이 발견된 경북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에서 신라 제24대 임금 진흥왕(재위 540576)560년에 다녀갔다는 암각 명문이 추가로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흥왕은 북한산, 마운령, 황초령 등에 순수비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울진군은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王擧(진흥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라는 성류굴 명문을 24일 공개했다. 이는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와 신라사 전공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함께 판독했다.

문구의 뜻은 경진년(560)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 잔교는 부두에서 선박까지 연결하는 다리모양의 구조물이다.

울진 성류굴에서 진흥왕과 관련된 국보급 명문이 확인됐다(사진: 오세윤 사진작가 촬영, 울진군 제공).
울진 성류굴에서 진흥왕과 관련된 국보급 명문이 확인됐다(사진: 오세윤 사진작가 촬영, 울진군 제공).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 25, 35, 42, 52, 66자로 모두 25자를 새겼다.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정도다. 진흥왕은 '眞興王擧'(진흥왕거)라는 네 글자를 다른 글씨보다 유독 크게 썼다.

명문이 발견된 장소는 성류굴 입구 제8광장이다. 지난 321일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를 아우르는 국내 최초 동굴 내 각석(刻石) 명문 30여 개가 무더기로 발견된 바 있다.

울진 성류굴에서 신라 진흥완과 관련된 명문이 발견된 석주 전경이다. 노란색 네모가 경진년명의 위치다(사진: 울진군 제공).
울진 성류굴에서 신라 진흥완과 관련된 명문이 발견된 석주 전경이다. 노란색 네모가 경진년명의 위치다(사진: 울진군 제공).

아울러 이번에 발견된 명문은 삼국사기 등 기존 문헌에는 나오지 않은 자료다. 조사단은 문화재청이나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전문기관에서 직접 조사해야할 정도로 국보급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조사단은 특히 '진흥'(眞興)이라는 글자를 통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선 왕명 변화 과정이다. 568년 북한산·황초령·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태왕'(眞興太王)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명문에 따르면, 560년에는 '진흥왕'이라고 적었다.

진흥왕의 이름이 생전에 진흥이었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중국 역사서인 <북제서> 7 제기7 무성 하청 42월 갑인조에 신라국왕 김진흥(金眞興)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고 적혀있다. 무성제 하청 4년은 진흥왕 26(565)이다. 성류굴 명문 작성 시점은 560년으로 명문에도 진흥이라는 이름이 확인됐다.

심 연구사는 향후 울진지역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성류굴 신라 명문들은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에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한 권의 역사책이 새로 발견된 것과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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