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지구인'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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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지구인'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난다
  • 취재기자 이원영
  • 승인 2015.10.22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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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수 7,200명 오프라인 프리마켓...수제 먹거리, 노래 등 재능 팔기도

미국에서 유래한 알뜰 살림의 대명사 벼룩시장(flea market)이 한국에서는 누구나 중고품이나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까지 팔 수 있는 ‘프리마켓(free market)’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은 무명 예술가나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수제품을 판매하는 ‘아트마켓’이기도 하다.

간혹, 부산에서 프리마켓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상업적으로 토산품을 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진짜 시민들이 장을 펴는 ‘참’ 프리마켓이 있다. 매주 토요일 부산진구 전포동 송상현 광장에서 열리는 ‘지구인 시장’은 IMF의 추억 한 켠에 있는 ‘아나바다’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지구인 시장은 문화공동체 ‘지구인’이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지구인은 이름 그대로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지구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 10일 송상현 광장에서 시민들이 지구인 시장을 구경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지구인 다섯 명이 지구인을 시작하다
애당초 지구인시장은 2010년 사회적 기업을 공부하던 부산 내 대학생들의 스터디 그룹 ‘지구인(zi9in)’팀에서 출발했다. 학생들이 서너 팀을 이뤄 부경대, 자갈치 시장, 부전동, 보수동 등 부산 곳곳에서 장소를 옮겨 가며, 프리마켓 형태의 지구인 시장을 꾸려 나갔다. 당시 학생들이 돗자리를 깔고 중고품을 내다 팔자, 점차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0년 심종석(45) 씨가 부산의 한 강의에서 지구인 팀을 만나 지구인 시장 운영진에 합류하게 됐다. 심 씨는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들이 지역 사회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 선배로서 대견하고 한편으로 대단해 보였다”고 말했다.

심 씨는 곧바로 팀에 힘을 보탰다. 학생들에게 지구인 시장을 중앙동에 정착시켜 볼 것을 제안했고, 2012년 지구인 시장은 중앙동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3년 3월 학생들이 취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면서 지구인 팀이 해체됐고, 지구인 시장도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심 씨와 학생들은 지구인 시장이 지속되길 원했고, 그 염원을 이어받아, 심 씨가 2대 대표로 현재까지 지구인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작년까지 중앙동에서 열렸던 지구인 시장에는 물건을 파는 상인이 되는 카페 회원 수가 4,000여 명, 참가팀이 70팀이었다. 보다 넓은 공간을 물색하던 심 대표는 애초 구 하이야리아 미군부대 자리에 있는 드넓은 부산시민공원을 원했으나, 부산시민공원 측의 제안으로 지구인 시장은 그보다 작은 전포동의 송상현 광장에서 작년 10월 세 차례 시범 운영 끝에 올해 4월부터 정식 운영 중이다. 지구인 시장은 현재 매주 토요일 송상현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심 대표는 “사람이 적지도 많지도 않고, 잔디와 나무가 있는 송상현 광장이 지구인 시장에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지구인 시장의 상인 참여자인 온라인 카페 회원은 7,200여 명, 매주 참여자는 총 130팀으로 그 수는 300~400명에 달한다. 상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중고품을 파는 ‘벼룩 지구인,’ 직접 만든 먹거리와 장신구 등을 파는 ‘수공예 지구인,’ 노래나 그림 등 자신의 재능을 판매하는 ‘재능 지구인’으로 나뉜다. 참여자는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어 대기자가 30~40팀일 만큼 회원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심 대표는 “대기 인원까지 수용하는 것이 현재 목표”라고 말했다.

▲ 지구인시장에서 참가자가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팔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자연스러움’의 가르침
지구인 시장에 상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이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배경에는 심 대표의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인생철학이 깊게 깔려 있다. 심 대표는 “교육에도 특별한 것은 없다”며 “아이들이 직접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100원에 팔고 돈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사회를)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10일 지구인시장에서 아이들이 ‘손팔찌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심 대표와 지구인 시장 운영진은 뒤에서 방패막이다. 지구인 시장은 전적으로 시민들의 ‘자율과 자유’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지구인 시장에 상인으로 좌판을 벌이는 데엔 참가비가 없다. 단, 수익금에 대해 10% 기부금을 자율적으로 부담한다. 심 대표는 기부금이 모두 운영비로 쓰이고 있으며 남은 운영비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구인 시장은 돌고 도는 재활용품을 의미하는 ‘돌고(DOLGO)’ 브랜드를 만들었다. 바로 일반 가정에서 쓰지 않는 종이가방, 서류봉투, 참치캔, 일회용컵을 기부 받아 재활용하는 것이다. 종이가방과 서류봉투는 ‘돌고’라는 상표 스티커가 부착돼 지구인 시장에서 쇼핑백으로 쓰이며, 시민들은 다시 그것들을 가져다주면 재활용된다. 또, 참치 캔과 일회용 컵은 아이들이 체험 프로그램에서 화분을 만드는 활동에 쓰이고 있다. 심 대표는 “(재활용품의 돌고 브랜드가) 시민들에게 재활용품을 다시 내놓는 것이 작은 기부로 생각하게 하고 시민들이 프리마켓에 쉽게 참여할 수 있게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지구인 시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물건도 팔고, 자연스럽게 옆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심 대표는 지구인 시장이 시민들을 위한 회합(會合)의 장이 되길 바란다. 그는 “지구인 시장으로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참 어색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바쁜 일상을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쉴 수 있는 공간인 프리마켓으로 나들이 오라는 의미로 “지구인 시장으로 소풍 오세요”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다.

사람이 중심이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태어나 줄곧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살아온 심종석 씨는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심 씨는 한 때 부산에서 노동을 주제로 활동했던 극단 ‘일터’에서 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지구인 대표인 그는 현재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 사무장, ‘문화예술 플랫폼B’ 대표로 활동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지역 문화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문화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 심종석 씨는 문화 활동 중 하나로 ‘아이씨 밴드’에 참여해서 음악활동도 하고 있다. 사진은 아이씨 밴드 멤버들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심 씨의 모습이 보인다(사진 출처: 아이씨밴드 페이스북 페이지).

심 씨는 문화예술플랫폼B에서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부산 중구 일대에서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빈 점포와 사무실을 창작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또, 프리마켓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인 시장의 운영 시스템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부산 지역 곳곳에서 지구인 시장처럼 시민들이 작은 물건이나 재능을 나누는 지역 문화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심 씨는 궁극적으로 시민을 중심으로 지역문화가 꽃피기를 희망한다. 그가 하는 활동 모두가 그 희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부산시는 노후화된 지역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는 “감천문화마을이 관광명소가 됐지만, 주민은 없고. 빈집에 (장사하는) 외부인만 들어섰다”며, “(감천문화마을이) 사실상 실패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론은 지역에는 지역민이 있어야 지역 문화가 사는 것이다. 그의 머리에는 사람이 있어야 마을이 있다. 그래서 지구엔 지구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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