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근거리 해외여행지 인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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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 근거리 해외여행지 인기 높다
  • 취재기자 박주영
  • 승인 2019.05.1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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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여행기➀] 짧은 비행거리에 볼거리·먹을거리 풍성
부산에서 다낭은 비행기로 약 2시간 거리다. 대만은 최근 근거리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사진: 구글 지도).
부산에서 대만은 비행기로 약 2시간 거리다. 대만은 최근 근거리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사진: 구글 지도).

“주말엔 대만 타이베이로 떠나요.” 대만 타이베이가 직장인과 대학생의 근거리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부산에서 2시간 정도, 짧은 비행거리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이 밝힌 내용이다.

지난 4월 26일 저녁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려 김해공항으로 출발했다. 대만은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대륙 푸젠성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 본토에서 약 150㎞ 떨어져 있다.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했다. 청일전쟁 뒤 일본 최초의 해외 식민지가 됐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이전해 와 성립된 국가다.

2시간의 짧은 비행 후, 대만 시간으로 자정에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대만을 찾은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만은 연평균 기온은 북부지역 22℃, 남부지역 24℃ 정도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여름을 앞둔 한국의 날씨와 비슷했다. 미리 예약한 차량을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27일 본격적인 대만여행을 시작했다. 이틀 동안만 대만을 관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연못에 연꽃잎이 떠있고, 물 속에는 잉어가 헤엄친다. 울창한 나무와 연못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연못에 연꽃잎이 떠있고, 물 속에는 잉어가 헤엄친다. 울창한 나무와 연못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임가화원, 조경예술 가치 뛰어난 한 폭의 그림

호텔이 위치한 반차오에서 5분 거리인 임가화원(林家花園)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고관이나 부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집과 정원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임가 화원은 청나라 때 푸젠성(福建省)에서 건너온 임씨(林氏) 일가가 조성한 약 5500평에 이르는 저택이다. 임가화원은 대만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고, 조경예술의 가치도 뛰어난 개인 정원으로 꼽힌다.

임 씨들이 푸첸성을 그리워해 산수를 본떠 가산을 만들었다. 사진은 가산을 본뜬 바위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임씨들이 푸첸성을 그리워해 산수를 본떠 가산을 만들었다. 사진은 가산을 본뜬 바위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임가화원 입장료는 80대만달러, 한화 3200원 정도다. 입장권을 내고, 화원 문을 나서면 울창한 용나무숲과 연못을 볼 수 있다. 연못의 북쪽에는 임씨들이 고향을 그리워해 산수를 본떠서 조성한 가산이 있다. 임가화원 가운데에 위치한 연못은 온통 연잎으로 덮여있다. 연잎 사이를 헤엄치는 잉어와 연못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용산사의 입구 광경. 지붕에 조각된 용은 상서로운 상징물을 조각하는 중국의 전통적 건물양식과 닮았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용산사의 입구 광경. 지붕에 조각된 용은 상서로운 상징물을 조각하는 중국의 전통적 건물양식과 닮았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나의 올해 운세는? 용산사에서 무료 점괘를

임가화원을 나서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용산사에 도착했다. 용산사(龍山寺)는 대만에서 제일 오래된 사원이다. 1738년에 세워진 용산사는 2차 대전 때 크게 파괴됐다가 1957년 복원됐다. 2차 대전 당시 주민들은 용산사를 피난처로 삼았다. 어느날 용산사에 모기떼가 습격했고, 주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피했다. 이 때 미 공군이 용산사를 총독부 건물로 착각하고 공습했다. 주민들은 이후 용산사가 자신들을 살려주었다고 믿었다. 본전의 관세음보살상은 조금도 손상 받지 않았다. 이에 관세음보살상이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면서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이 됐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역시 용산사의 점괘를 보기 위해 찾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속으로 된 통에는 숫자가 적힌 긴 나무막대가 꽂혀있다. 해당 숫자의 통을 열면 점괘가 쓰인 종이를 받을 수 있다. 사진은 기자가 뽑은 점괘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금속으로 된 통에는 숫자가 적힌 긴 나무막대가 꽂혀있다. 해당 숫자의 통을 열면 점괘가 쓰인 종이를 받을 수 있다. 사진은 기자가 뽑은 점괘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용산사에 꽂힌 나무막대를 하나 뽑으면 숫자가 쓰여 있다. 그 숫자가 적힌 나무통을 열면, 종이에 적힌 자신의 점괘를 볼 수 있다. 중국어로 쓰여 있지만, 영어로 번역된 책이 같이 비치돼있다. 최근에는 어플을 이용해 점괘 해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기자는 소원을 빌고, 점괘를 뽑았다. 번역책을 보고 점괘를 해석했는데 원하던 점괘가 아니었다. 아쉬웠지만 직접 점괘를 해석해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옥으로 조각한 병품의 모습. 가까이서 보면 아주 섬세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옥으로 조각한 병품의 모습. 가까이서 보면 아주 섬세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고궁박물관, 웅장한 규모에 소장품 질·양 세계최상급

용산사에서 나와 저녁을 먹고,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인 대만 고궁박물관에 도착했다. 대만 고궁박물관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힐 만큼 세계적인 소장 문물을 자랑한다. 소장한 문물의 질과 양은 세계 최상급이다. 수량이 방대하여 “박물관을 다 보려면 1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장개석은 중국 황실의 몰락과 각종 전쟁(만주사변, 중일전쟁)을 겪으며 ‘고궁의 문물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했다. 1948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철수할 때 고궁 문물도 함께 대만 기륭항으로 옮겨졌다. 상자로 2,972개, 물건으로 약 60만 건이다. 문물의 안전을 위해 동굴 속에 보관했다가, 1965년 현재의 자리에 박물관을 완공했다.

유리에 적혀있는 유물의 번호를 오디오 가이드에 입력하면, 해당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로 들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유리에 적혀있는 유물의 번호를 오디오 가이드에 입력하면, 해당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로 들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박물관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박물관 입구에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는 부스가 있다. 오디오 가이드는 중국어, 한국어, 영어로 제공한다. 한국어 서비스가 있는 것을 보니 많은 한국인이 대만을 찾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나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꼽고, 위층부터 차례로 관람했다. 고궁박물관에서 꼭 봐야 한다는 것으로 손꼽히는 두 가지 유물이 있다. 바로 비취로 조각한 배추인 취옥백체(翠玉白菜), 천연자연석을 동파육과 똑같이 조각한 육형석(肉形石)이다. 안타깝게도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전시돼있지 않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전시장과 유물에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움직였다. 이렇게나 많은 유물을 손상 하지 않고 들여왔다는 사실에 관람하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박동기(5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박물관이 크다는 것을 알고 왔지만, 실제로 보니 그 규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어로 제공되는 오디오가이드를 이용하니 유물을 보는데 편리했다”고 말했다.

스린야시장의 입구(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스린야시장의 입구(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진정한 대만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고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야식을 먹기 위해 스린야시장을 방문했다. 스린야시장은 대만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야시장이다. 관광객들에게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길거리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909년에 시작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이다. 스린거리를 관통하는 다둥루와 그 안쪽의 츠청궁을 중심으로 야시장이 형성된다.

야시장의 길목에는 싸고 맛있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주말에는 평균 5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스린야시장을 찾는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야시장의 길목에는 싸고 맛있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주말에는 평균 5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스린야시장을 찾는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스린야시장은 부산의 부평깡통야시장과 느낌이 비슷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스린야시장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붐볐다. 시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에 떠밀려 간다’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기자는 서둘러 스린야시장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감자 그라탱과 지파이(대만식 닭튀김)를 포장했다. 포장한 음식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대만에서의 1일차 여행을 마무리 했다. 시장에서 먹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대만의 야시장을 경험해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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