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깡깡이 길,’ 선박 수선음 추억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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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깡깡이 길,’ 선박 수선음 추억을 남기고...
  • 취재기자 김주영
  • 승인 2015.10.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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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조선소 명맥 이어온 깡깡이 조선소, 재개발로 새롭게 단장한다

활기찬 부산 시내를 뒤로하고 바다내음과 함께 영도대교를 건너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영도경찰서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길 한쪽에는 고철들이 쌓여있고, 해안가에는 화물선과 어선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부산 영도구 대평동과 남항동 해안가에는 군소 조선소가 밀집해 있는데 이 일대를 ‘깡깡이 길’이라고 부른다. 

▲ 깡깡이 길은 부산 영도대교를 건너 우측 항구로 들어서면 시작된다(출처: 네이버 길찾기 지도).

 

▲ 해안가에 고철과 선박들이 줄지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주영).

‘깡깡이 질’은 선박을 수리하고 도색하기 위해 도크 위의 선박에 붙은 조개류와 붉은 녹을 쇠망치로 제거하는 작업을 일컫는 말이다. 쇠망치로 녹을 때어낼 때 “깡깡”하고 소리가 난다고 하여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깡깡이 질이라고 불렀다. 조선소에 배가 들어오면 일차적으로 하는 일이 깡깡이 질이었고, 조선소는 늘 “깡깡” 하는 소리가 넘쳐나, 사람들은 조선소라기보다는 ‘깡깡이 조선소’라고 더 자주 불렀다. 깡깡이 질은 저임금에 굉장한 중노동이었는데, 여자들이 주로 이 일을 했다. 사람들은 또한 그 아주머니들을 ‘깡깡이 아지매’라고 불렀다.

40년간 조선소에서 깡깡이 질을 한 정현심(78, 부산 영도구 청학동) 할머니는 특출 난 기술이 없었던 남편을 대신해 깡깡이 질하여 자식들을 키워낸 그 시대의 억척스런 어머니였다. 할머니는 “일평생을 깡깡이 질을 했다. 대평동은 내 인생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박해있는 배들을 지나 골목골목 더 깊숙이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커다란 조선소가 보인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조선소의 문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안겨준다. 일반인들이 조선소 대문에 조금만 붙으려 해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연신 위험하다며 경고를 했다. 용접공들이 코를 찌르는 고철 냄새와 시끄러운 용접소리 속에서 배를 수선하고 있었다. 관광객 이유리(21, 경남 양산시 남부동) 씨는 “깡깡이 길이라고 해서 한 번 와봤는데 약간 위축된다”며 “거닐기에 적당한 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 독 위에 큰 화물선이 올라가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주영).

대평동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876년의 개항 이후부터이다. 1887년 일본 다나카 조선소가 영도에 들어섰고,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업이 커졌다. 광복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조선 수리업의 전성기였다. 호황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이 일대에는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소 근처 사이 골목에는 주로 철공소와 선박용품 가게가 모여 있으며, 노후된 건물과 오래된 기계들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 골목 사이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골목길은 낡고 오래된 모습 그대로다(사진: 취재기자 김주영).

오랫동안 변화 없이 세월을 겪어온 대평동은 이미 많은 슬럼화가 진행된 상태다. 현재 대평동 거주인구는 지난 30년 사이 절반이나 줄었고, 노인 인구만 25%를 넘는다. 대평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모(74) 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대평동 같은 곳에 일하러 오지 않는다”며 “그 덕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동네 분위기가 더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다른 대평동 주민 이길자(80) 할머니는 지금은 사람도 많이 빠져나가고 음침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평동에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깡깡이 질하다 보니 여기서 살게 됐다”며 “조선소가 없었더라면 대평동도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줄고 있는 대평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깡깡이 마을이 ‘예술 상상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시가 2017년까지 35억 원을 투입해 대평동에 예술가를 위한 예술점방, 예술창작공간, 마을 커뮤니티센터와 민박촌 등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을의 어두운 조명, 녹지부족, 주민 커뮤니티 공간 부족 등을 해결해, 관광객들에게 깡깡이 길, 그리고 한국 최초 근대식 목조 조선소 등 마을에 대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식시키겠다는 의도다. 이 사업으로 조선소 주변과 깡깡이 길이 정비돼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 영도구 건축과 관계자는 현재 조성사업에 대한 행정절차 진행 중이며 주민과 함께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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