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일본은 우방인가?
상태바
[차용범 칼럼]일본은 우방인가?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19.05.07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레이와 시대' 개막 일본에서 느낀 단상
5월 1일 새벽 0시, 일본 오사카 도심 도톤보리에 모인 젊은이들이 ''레이와 시대'의 개막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다(사진: 요미우리 신문 캡처).

일본은 우리의 우방인가, 원수인가? 우리와 우호관계인가, 대립관계인가? 대답은 간단할 수 없다. 이성 및 감성의 차원에서 크게 다를 터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일본과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피치 못할 화두라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우리와는 어느 민족보다 서로 닮았으면서 체질적으로 다르고, 어느 나라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정서적으로 멀다. 역사상, 또는 현실적으로 일본만큼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고, 우리의 적대감정을 자극하는 나라도 따로 없다.

그 적대감정의 뿌리는 그들의 과거에 대한 특이한 역사인식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과는 전혀 대조적인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이 과거에 대한 죄의식의 과잉상태에 빠져 있다면, 일본은 죄의식의 태무(殆無)상태일 정도라는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하는 일본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성, 죄악문화의 결여이다.

일본은 우방인가?’-우리에겐 이런 의문 형식의 질문조차 금기시한 시대가 있었다. 한일병합이나 3·1만세사건, 일제통치를 몸으로 겪었던 그 세대가 현대사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일본은 동 시대를 살던 한국인에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의식에 있어 원수, 1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도 변했다.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과 현실감정은 부침을 거듭했다. 우리의 외교원리 역시 바뀌었다. ‘우리 편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순정(純正)외교에서, ‘뚜렷한 적이 아니면 모두 우방인 실리외교 시대다.

우선 일본은 우리의 뚜렷한 적이 아닌 만큼 우리의 우방임이 분명하다.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그 책임을 잊는 나라, 우리에게 창씨개명까지 강요하고도 한일병탄의 긍정성을 들먹이는 나라. 일본은 그러한 나라가 아니래서 우리의 우방인 것은 아니요, 그러한 나라여서 우리의 적도 아니다. 바로 그러한 나라임에도 일본은 우리의 우방인 것이다.

한일관계 사상최악 속 국가 핵심이익 현실적 악영향

그 한일관계가 다시 우리의 화두이다. 그 우방관계가 사상최악이라 할 만큼 험하기 때문이다. 정부간의 갈등이 국민감정의 대립으로 옮겨 붙으면서 양국관계의 바탕까지 흔들리고 있다.

그 원인을 보는 시각은 당연히 다르다. 과거사를 둘러싼 고질적 갈등구조에, 한국 진보정권과 일본 보수정권 간 뚜렷한 인식차가 있다. “일본정부는 한일현안을 놓고 반한 프레임을 조성, 국내정치에 활용한다”-한국의 시각이다. “한국은 민족주의에 근거한 정책적 반일 프레임으로 국가간 약속을 깼다”-일본의 시각이다.

상황에의 대처방식 역시 대조적이다. 먼저 일본, 영악하고 재빠르다. 한국에 대해선, “반한(反韓)을 넘어 멸한(蔑韓)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 있다.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문제 삼아 이미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시킨 상태다. 송금 제한과 관세 인상 같은 보복조치도 공론화하고 있다.

중국과는 밀월관계다. 두 나라는 30조원 규모의 중·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고 20조원 규모의 기업간 경제협력에도 합의했다. 일본은 미국의 환심을 사는 데도 영악하다. 아베는 최근 트럼프를 만나 이틀간 정상회담-부부동반 만찬-골프회동까지 소화하는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그리고, ‘레이와(令和) 시대를 열며 한층 결속하고 있다. 아베의 견고한 경제성장 전략으로 잃어버린 20을 탈출, 그 덕분에 정치상황 역시 견고하다. ‘미래의 성장을 위해, 미래세대를 위해’, 그 슬로건 아래 국론을 통일했다. 그들의 도시에 왕성한 활기가, 그들의 삶에 넉넉한 여유가 뚜렷하다. 언론의 논조는 그들의 자신감을 한껏 드러낸다. 과거를 회고·평가하며 새 시대에 임하는 전략·기상(氣像)을 다짐하고 있다.

다음, 우리나라. 우선 대응전략이 뚜렷하지 않다. “대일외교에 대한 철학·비전이 없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있다. 미국-중국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동북아에서, 일본과 향후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그 지표가 없다는 것이다. 큰 그림이 없으니 개별사안에 대한 대응도 어렵고, 대일외교의 기조라 할 과거사 & 미래지향의 투트랙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해자일본을 통제할 명분도, 설득력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레이와 시대계기 한일갈등 해소를... 우리 정부도 적극 나설 때

우리 민간지성들은 이런 상황을 걱정한다, 경협, 무역, 관광 관계는 비대칭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것, 국가 핵심이익과 관련한 외교·안보문제에 실질적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유력지 주필은 경고한다. 외환위기 때 한국을 IMF로 내몬 건 YS버르장머리발언을 기억한 일본의 반격이며, 지금 일본이 한국 대신 중국을 택하면 한국엔 재앙이리라는 것이다.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Peter Zeihan) 역시 신작 베스트셀러에서 향후 한국의 선택지를 묻는다, 미국이 세계 지역분쟁에 간여하지 않는 시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충돌이 일어날 때, 한국은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그는 단언한다, 동북아 국가 중 경제·인구구조·군사적으로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최근 국내에서 ·중 패권시대, ·일 보조 맞춰야 동북아 안정같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 간의 갈등을 풀 계기는? 지금이다. 일본에선 나루히토 새 일왕이 즉위하며 레이와’(아름다운 조화)를 다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신·구 일왕에게 축전·서한을 보내며, ‘일왕이 아닌 천황으로 명기해 예우했다. 두 나라가 최근 수년간의 깊은 반목관계를 극복할 좋을 계기일 수 있다. 함께 잊지 않아야 할 명제 역시 분명하다. 두 나라는 역시 멀지만 가까운 나라이며, 동반관계를 가져야 할 당위적 우방이라는 사실이다.

일본 역시 첨예한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가야 한다. 그들의 꿈, 활력 있는 일본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의 대응은 보다 현실적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외교가 옛 순정외교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현대사에 우리를 침공한 북한을 예우하고 중국과도 잘 지내고 있지 않나. 국가안보나 경제협력에 이롭다면, 아무리 밉고 서운해도 서로 잘 지낼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 문제를 민간차원에만 맡겨둘 수도 없다. 정부부터 지혜롭게 결단하고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이 점 우리가 기대하는 정부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