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 칠기 상감(象嵌), 한국형 수제젓가락 만들기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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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 칠기 상감(象嵌), 한국형 수제젓가락 만들기 20년
  • 취재기자 이령희
  • 승인 2015.10.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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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허용수 씨 부부...완벽 위생처리에 예술혼 불어넣어 국내외서 인기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세 나라가 각각의 문화에 따라 모양과 기능은 다르지만, 젓가락은 하루 세끼 밥상 위에서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며 그 나라의 식사문화를 보여주는 역할도 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젓가락을 단지 나뭇가지, 쇳덩이 정도로 하찮게 여기며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 가까워 그 존재를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젓가락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일반 젓가락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손수 제작되는 수제젓가락을 파는 곳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 중구 국제시장에 있는 ‘아이하시 짝사랑’이란 점포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100% 나전칠기 기법을 접목한 젓가락에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까지 입혀 우리의 식탁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새로운 예술 젓가락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사랑을 담은 젓가락이라는 뜻인 愛箸(애저)의 일본어 발음인 ‘아이하시’는 실제 대표 김정애 씨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으며, 다른 일반 젓가락보다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녀는 나무젓가락에 옻나무의 수액을 여러 번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균번식과 열전달을 막는 친환경적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에 다양한 색상을 씌어 단조로움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젓가락은 예술작품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애 씨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이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는 “한땀한땀 손수 만들다 보니 한 짝을 작업하는 데 2-3개월이 걸릴 정도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 김정애 아이하시 짝사랑 대표(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 실제 아이하시 짝사랑에서 파는 수제젓가락이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이렇게 말하면, 모든 사람은 김정애 대표가 바로 수제젓가락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본인인 줄 알 것이다. 사실 이러한 수제젓가락은 김정애 씨가 아닌 그녀의 남편 허수용 씨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그녀는 남편의 혼이 담긴 젓가락을 판매하는 일을 맡고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비록 수제 젓가락은 남편 작품이지만 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 허수용 씨는 나전칠기 장인으로 나전칠기의 기법과 일본의 젓가락 기술력을 접목해 새로운 젓가락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나무젓가락, 쇠젓가락은 나전칠기와 어울리지 않지만, 그의 손에서 탄생한 젓가락은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칠기 작품으로 승화한다.

그의 손에서 아름다운 수제젓가락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그가 20세 때 친구 곁에서 배우게 된 나전칠기에서 비롯됐다. 무직었던 그에게 나전칠기는 그의 인생에서 첫 직업이었다. 그가 처음에 하청일부터 시작하면서 돈도 벌고 기술도 배워나갔지만, 1990년대 이후 이미 나전칠기는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며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당시를 되새기던 그는 “나전칠기 명인만이 그 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시기에 자신은 앞이 보이지 않는 땅을 걷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직업을 쉽게 바꿀 수 없듯이 그도 마찬가지였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꿋꿋이 나전칠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칠기를 하면서 알고 지내던 지인을 통해 일본에서 수제젓가락 만드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90년대 초반, 수제젓가락을 만드는 한 일본인이 우리나라의 싼 인건비로 옻칠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을 찾던 중 허수용 씨와 인연이 닿게 됐다. 이후 부부는 여행 비자로 15일씩 2-3년 동안을 일본에 가서 수제젓가락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주문자생산 방식으로 일본 젓가락을 생산하면서 기술을 배워오던 그들은 익힌 기술로 일본에 전량 수출하면서 황금기를 걸었다. 그는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 허용수 ‘아이하시 짝사랑’ 사장

 

▲ 수제젓가락이 만들어 지고 있는 장면(사진: 취재 기자 이령희).

하지만 그 당시 싼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던 우리에게 가격대가 높은 수제젓가락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수 없었다. 나중에 일본 관계자도 경제 상황이 바뀌면서 더 이상 허수용 씨와 거래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일본인과의 거래를 끊기면서 수제젓가락 수요가 적었던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부부는 직접 국내에 판로를 만들기로 했다. 1996년 김정애 씨는 국제시장에서 돗자리를 들고 다니며 수제젓가락을 파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제주도 빼고 안 가본 곳이 없는 그녀는 “내 곁에는 젓가락이 들어있는 있는 여행용 가방이 전부였다”며 “남자가 들어도 무거운 여행 가방을 짊어지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이 지금은 꿈같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 실제 김정애 씨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들고 다니던 여행 가방들이다. 현재는 가방이 파손되어 7개의 가방만 남아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정성을 다해 만든 허수용 씨의 손길과 직접 뛰어다닌 김정애 씨의 발길의 결과 지금의 ‘아이하시 짝사랑’은 한국 소비자 선호도 1위 수제젓가락 브랜드로 선정되어 그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요리사, TV 방송가에서도 수제젓가락은 모두가 원하고 사용하고 싶은 제품이 되어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신혼부부의 혼수로도 인기가 높으며, 가벼운 소재이기 때문에 수제젓가락은 힘이 없는 어르신들이 사용하기에 매우 편하다. 요리사들도 식당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수제젓가락의 깔끔함은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제격이다.

▲ ‘아이하시 짝사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제젓가락이다(사진:취재기자 이령희).

 

▲ 흰색 수저는 요리사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사진:아이하시 짝사랑 제공).

현재는 수제젓가락 제조사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젓가락이 활발하게 팔리고 있으며, 실제로 독일, 미국에서도 수제젓가락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외국 땅에서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젓가락이 전해지고 있다. 허수용 씨는 “아직 인기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제젓가락은 식생활에 관련이 있다 보니, 우리나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점점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수제젓가락을 찾는 소비자의 발걸음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꿋꿋이 버티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그들은 조금은 특별한 젓가락을 만들 수 있었다. 허용수 씨는 주변 사람들이 좌우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열심히 하자”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도 저것도 할 능력이 없다면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나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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