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사람이 있어, 나는 산복도로만 찍는다"
상태바
"그곳에 사람이 있어, 나는 산복도로만 찍는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5.10.13 13: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복도로에서 평생을 살아온 74세 노익장 박청익 사진작가 개인전 성황
▲ 부산 가톨릭센터 마음밭 갤러리 입구에 박청익 작가의 첫 개인전을 알리는 홍보물이 서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박청익 작가는 영주동 산복도로에서 태어나 6.25 사변을 겪었으며 지금까지 산복도로에 살고 있다. 그가 산복도로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거기에 있어야’만 가능한 사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이제 그는 산복도로를 찍는 사진가로 또 다른 그의 본질을 해산(解産)하려 한다.” 부산 중구 대청동 가톨릭센터 마음밭갤러리에서 8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박청익 사진작가의 첫 개인전에 대해서 사진작가 쁘리야 김은 이렇게 평했다.

박청익 사진작가는 70세에 사진기를 처음 잡았다. 그리고 74세인 올해 첫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전 이름은 <까풀막... 서다>다. 여기서 까풀막은 가파른 언덕길을 가리키는 부산 사투리다. 그래서 제목의 까풀막은 구체적으로는 부산의 산복도로다. 산의 중턱, 즉 사람으로 치면 배(복: 腹)에 해당하는 곳에 나 있는 도로라 해서 산복도로인데, 이를 찍는 이가 바로 박청익이다.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했지만 스무 살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사진을 찍는 그는 산복도로의 거의 모든 것을 찍는다. 박 작가는 산복도로에서 언제 어느 곳에 가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부산은 산업화를 거치며 언덕과 산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었으며, 그 사이에 산복도로를 조성했지만, 그 모습은 예전 60, 70년대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완전한 옛 모습은 아니지만 구불구불한 산복도로와 지형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이곳은 도시의 과거와 오늘을 다 가지고 있다. 박 작가는 이런 산복도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 사진전이 열리는 가톨릭센터 마음밭 갤러리에는 박청익 작가의 사진 20여 점이 산복도로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고 텅 비어버린 산복도로지만,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에는 부산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이기도 했다. 박 작가는 고향 산복도로를 떠나 외지에서도 살았지만 결국 산복도로로 돌아왔다. 그는 산복도로를 찍는 이유에 대해 “이곳에는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있고 어릴 적 향수가 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골목사진을 찍지만 골목만 찍지 않는다. 그가 찍은 골목 속에는 꼭 사람이 있다. 텅 비어있는 골목은 공허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그 안에 사람이 있어야만 힘이 있고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기다림이 철칙이라고 말했다. 구상한 사진을 찍기 전 미리 그곳에서 여러 번 사진을 찍어보고 또 적당한 때에 가서 그가 생각한 그림이 나올 때까지 인내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가 한 번은 아무래도 길을 지나는 사람이 없어 출근 시간에 맞춰 나가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준다. 그는 “길을 찍는데 그 속에 사람을 담아서 찍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10~20분은 기본으로 기다리고, 그렇게 한 사람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10~20분, 1시간, 2시간, 다른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 박청익 작가가 일화가 담긴 아파트 사진 앞에 서 포즈를 취했다(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박 작가는 영주동의 낡은 아파트를 찍으러 간 적이 있는데, 아파트 입구에 나와 앉아 있는 할머니를 찍었다. 그는 그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다시 그곳에 들렀는데, 그날은 아파트 입구에 웬 차가 한 대 서있는 것 아닌가. 카메라로 아파트를 담아보니, 차가 아파트를 가렸다. 화가 났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고 아파트와 사람이 함께 담길 때를 기다렸다. 한 사람, 두 사람이 지나가고, 그 할머니가 다시 아파트 입구에 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해가 들고 차창에 아파트가 반사돼 모든 것이 함께 담기는 순간이 생겨났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앞서 찍은 사진보다 차가 함께 있는 사진이 더 마음에 들어 이번 개인전에도 전시했다. 이것 또한 기다림이 만들어낸 작품인 것이다.

박 작가는 멀리 출사를 가지 않고 집 가까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좋다. 그에게 소재는 늘 그의 옆에 있다. 카메라를 들고 매일 산복도로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는 그는 사진 찍는 일로 마음은 물론 몸마저 건강하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사진 인생의 1막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1막이 끝남과 동시에 2막을 어떻게 꾸며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여기 말고 저기도 가봐라,” “물만골에 가서 사진을 찍어봐라” 하며 다른 곳을 추천하지만, 그는 “거기에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라는 말로 2장 역시 산복도로가 피사체가 될 것임을 내비친다. 박청익 작가는 오늘도 그의 사진 인생 마지막 페이지가 되어 줄 산복도로를 훑으며 낯익은 골목을 걷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