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계층, 개인을 '벌레(蟲)'로 비유한 신조어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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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계층, 개인을 '벌레(蟲)'로 비유한 신조어 난무
  • 취재기자 조정원
  • 승인 2015.10.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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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충,” “노인충,” "설명충" 등.... 사회적 약자에 혐오감 표출 심각

대학생 김인선(22, 부산 수영구)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즐겨한다. 익명으로 글을 올리고 댓글이 달리는 커뮤니티의 자유로움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최근에 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게시 글 마지막에 "설명충 환영~’"라는 말 때문이었다. 여기서 '설명충'이란 말은 '댓글을 다는 사람'을 벌레로 비하한 말이며, '설명충 환영'이란 말은 '댓글다는 사람 환영'이란 의미다. 김 씨는 “설명충이란 마지막 말 때문에 기분이 나빠 댓글을 못 쓰겠다”며 “댓글을 달려고 하는 사람을 왜 벌레로 칭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인터넷에서는 어휘에 벌레를 뜻하는 ‘충(蟲)’을 붙여 남을 비하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하위문화 계열로서 여러 분야의 지식을 다루는 잡학사전 ‘나무위키’에서는 인터넷에 난무하는 ‘충(蟲)’자의 뜻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떼거리를 지으면서 몰려다니며 자신이 추종하는 대상(인물, 사물, 사상을 가리지 않고)에 대한 집단을 낮잡아 이르는 말, 혹은 자신의 신경에 거슬리는 대상을 인물, 사물, 사상에 관계없이 비하하는 의미"라고 정의하고 있다.

▲ ‘설명충’ ‘맘충’ ‘진지충’ 단어를 키워드로 검색한 연도별 건수(출처: 구글 사이트, 취재기자 조정원)

구글 사이트에서 ‘설명충’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올해의 경우 10월 4일 현재까지 33만 4000건이 검색된다. 이는 2013년 조회 건수보다 약 4배, 지난 해보다는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맘충’이라는 단어는 올해 10월 4일까지는 13만 9000건으로 2013년, 2014년 조회 건수보다 약 3배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진지충’이라는 키워드는 올해 10월 4일까지 14만 건이 검색되었고, 이는 2013년보다는 약 7배, 2014년보다는 약 4배 높은 조회 건수였다.

2015년 8월 22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충’의 유래는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 이용자들을 비하하는 단어인 ‘일베충’에서부터 시작하면서 점차 확산됐다고 보도했다. 고인인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고, 특정지역을 혐오하는 ‘막장’ 성향이 드러나자 네티즌들이 이들에게 ‘벌레’ 딱지를 붙여 부르는 현상이 ‘충’의 유래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단어에 ‘~충’을 붙여 개인이나 특정계층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다른 사람이 사용한 유머나 어려운 단어를 굳이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일컫는 ‘설명충,’ 유머러스한 상황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진지충,’ 개념 없는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자신들이 한 잘못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거나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주부들을 일컫는 ‘맘충’이 대표적이다.

▲ 네티즌들이 말하는 ‘설명충’의 예시. 가수 김장훈 씨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말에 대해 괄호를 사용하여 설명을 붙이는 트위터의 글. (자료출처: 가수 김장훈 트위터 캡쳐)
▲ 배우 하연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스폰서' 모르느냐는 질문에 '저 스폰서 없어요'라고 대답해 ‘귀여운 진지충’으로 등극했다. (자료출처: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기사 일부)

하지만 이런 ‘~충’ 단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서 이들의 눈치를 보는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고등학생 조모(19, 부산 남구 용호동) 군은 온라인상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대학의 입시전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고 있다. 괜히 길게 정보를 전달했다가 ‘설명충’이라는 딱지가 생길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조 군은 “친구들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도 길게 하면 친구들이 혹시 나를 ‘설명충’으로 볼까봐 말을 길게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네 살 딸을 둔 주부 김모(27, 부산 남구 대연동) 씨는 아이와 남편과 외식할 때 괜히 아이를 한 번 더 타이른다. 혹시 아이가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면 식당 안 사람들이 자신을 ‘맘충’으로 볼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혹시 아니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 어느 날 인터넷에 ‘맘충’으로 불리며 나와 나의 아이의 글이 올라올까 겁이 난다”며 걱정을 드러냈다.

▲ ‘맘충’의 예시. (출처: 나무위키)

사람들이 이런 비하하는 단어를 통해 자신보다 약한 사회적 약자에게 혐오감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는 현상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초, 중, 고등학생 등을 비하할 때 부르는 말인 ‘급식충,’ 노인들을 비하할 때 쓰이는 ‘노인충’ 등과 같은 단어가 그 예이다.

▲ 특정계층을 무분별하게 비하하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글.(출처: 커뮤니티 ‘네이트판’ 캡쳐)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충’자를 붙여 사용하는 세태에 대해 청년층이 겪고 있는 실업과 과도한 경쟁, 저임금 등의 경제적 문제는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네트워크 상에서 냉소와 혐오가 교차하는 태도가 지배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게 만든 요인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청년들이 정치권의 무능, 경제적인 불안을 마주하면서 생긴 불만을 여러 방향으로 표출하는 한편 상대방을 배려할 여유는 잃어가는 분위기가 지금 사태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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