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교수의 에너지와 국제정치] 에너지 공급의 국제정치적 배경: 미국의 셰일 혁명과 천연가스 시대에 우리의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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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교수의 에너지와 국제정치] 에너지 공급의 국제정치적 배경: 미국의 셰일 혁명과 천연가스 시대에 우리의 살 길
  • 충북대 이철우 교수
  • 승인 2019.04.2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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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철우 교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우주가 탄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석유로 전기를 얻는다면, 전기라는 새로운 에너지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석유가 전기로 변환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에너지 형태가 변화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에너지를 찾아서 사용하면 할수록 사용가능한 에너지는 줄어든다. 이를 에너지의 엔트로피(물리학적으로는 ‘무질서 정도’, 사회과학적으로는 ‘사회 혼란 정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열에너지가 식어서 못쓰게 되고, 우리가 말을 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가 소리(진동) 에너지와 열(호흡) 에너지로 바뀌지만, 이들은 우리가 말을 계속할 때 다시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변환되어 우리로부터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에너지는 소비할수록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뀐다.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줄어들면(엔트로피가 증가하면) 인간은 숨어 있거나, 혹은 아직 활용하지 못한 에너지를 찾아 다시 엔트로피를 낮추고 사회의 혼란을 줄이려 한다. 고대사회에서는 물레방아를 돌리거나 가축 또는 노예를 부려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문명은 증기력, 원유, 원자력, 풍력, 태양력, 조력, 바이오 연료 등 숨어 있던 에너지를 활용하여 열역학 제2의 법칙을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는 새롭게 창조되는 게 아니다. 그저 있는 에너지를 찾아 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에너지의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있다. 비록 인간이 신재생에너지를 찾아서 활용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것도 한정된 에너지원을 쥐어짜내서 문명을 이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주공간의 에너지는 총량 불변이다. 인류문명은 언젠가는 에너지의 고갈을 우려해야 한다.

좀더 자세히 인류문명의 에너지 역사를 살펴보자. 현재 지구에서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200MJ(메가주울)인데, 하루에 음식물로 섭취하는 에너지는 10MJ(1MJ=106Joule; 1MJ=239Cal)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인류는 자신이 섭취하는 에너지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섭취한 음식 가운데 대략 25% 정도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므로 한 사람이 하루에 노동으로 2.5MJ을 소비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 문명의 기술에 힘입어 한 사람당 대략 다른 사람 76명(190MJ/2.5MJ=76)의 노동력에 해당하는 외부 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많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산업혁명 때문이었다. 인류는 산업혁명기에 석탄을 연료로 삼는 증기기관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하면서 기차와 증기선에 의한 운송 혁신과 대량생산을 달성했다.

무겁고 더러운 석탄의 뒤를 이어 석유시대가 열렸다. 조명용 고래 기름이 고래의 남획으로 귀해지자, 원유에서 조명용 등유(kerosene)를 정제하면서 조명 위주의 석유산업이 태동했다. 등유산업은 에디슨의 백열전등 발명(1879년)과 함께 빛을 잃었으나, 비슷한 시기에 발명된 내연기관(연료를 밀폐된 공간에서 연소시켜 얻은 고온고압의 기체를 이용해 움직이는 엔진으로, 자동차 엔진이 대표적인 내연기관) 덕분에 석유산업은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등유만을 취급하던 조명 중심 석유산업 초창기의 골칫거리로 내다 버렸던 휘발유(gasoline)와 디젤유는 내연기관의 등장과 함께 20세기 석유시대를 여는 전략물자가 됐다. “만약 우리가 석유를 취득할 수 없다면 식량도, 섬유도, 그리고 대영제국의 경제발전 동력으로 필요한 그 어떤 상품도 취득할 수 없다”는 1913년 윈스턴 처칠의 의회 연설이 석유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쿠지역 유전확보였으며, 당시 전 세계 원유의 70%를 공급하던 석유 에너지 부국 미국이 연합군에 가담함으로써 전쟁의 승패가 기울었다.

그런데 1945년 2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븐 사우드 국왕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 이게 바로 전후 석유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의 서막이었다. 왜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접근했을까?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신생국으로서 그 존재가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영향권에 있었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자국 내 석유자원이 고갈될 것에 대비하고 전략물자인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의 처칠 몰래 사우드 국왕과 미 군함 퀸시 호에서 회동을 가졌던 것이다. 이게 20세기 후반의 중동 국제정치 구도를 결정지었다. 미국의 안전보장 아래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를 통해 국부를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의 주요 플레이어가 됐다.

그후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파리기후협약이나 국제해사기구(IMO)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석유의 지위가 급변하고 있다. 셰일혁명으로 2008년부터 셰일층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기 시작한 미국이 2016년부터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등극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중동 원유의존도가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석탄발전을 천연가스 발전으로 대체함으로써 온실가스 저감목표를 달성했고 사실상 미국은 에너지 자립을 이룩했다.

미국의 셰일가스 시추 장비(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게다가 미국은 석유가스 개발 생산의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통한 기술혁신으로 중동의 OPEC산유국과 경쟁 가능할 정도로 셰일석유의 생산단가를 낮추었다.

각국의 원유 생산비용 비교. 2012년에 미국 셰일자원 생산비용은 배럴당 90달러였으나 불과 5년 후인 2017년에 미국의 셰일자원 생산비용이 세계 평균 생산비용인 배럴당 50달러보다 낮은 배럴당 40달러로 OPEC국가의 평균생산비용과 비슷해졌을 정도로 미국 셰일산업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그림: 2016 Zeihan on Geopolitics).

미국은 지난 70년간 전략물자인 석유를 비롯한 상품의 자유로운 교역을 보장하는 해상운송로를 보호하는 세계경찰국가 역할을 통해 중동지역의 석유를 확보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석유자급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미국은 세계경찰국가 역할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있으며,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관심은, 발트 해에 건설 중인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Nord Stream 2)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려는 독일의 계획에 대한 트럼프의 거침없는 비난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의 전략가 ‘피터 자이한’이 지은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라는 책은 셰일석유로 에너지 자립을 이룬 미국이 세계에서 손을 자꾸 떼려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국제무대에서 그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천연가스는 원유보다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이 적지만 상대적으로 운송보관이 어렵다.

화석연료의 운송거리 및 운송비용 비교. 원유와 석탄은 MBtu당 운송비가 1달러 이하인 반면, 천연가스의 운송비는 거리에 상관없이 MBtu당 원유나 석탄보다 많이 든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운송비는 3000Km까지는 LNG운송비보다 싸지만 그 이상의 거리를 운송할 경우 LNG가 유리하다. MBtu(Million British Thermal Unit)는 원유 0.17배럴에 해당하는 에너지량, 원유 1배럴은 5.80MBtu(그림: IEA, World Energy Investment Outlook, 2014).

천연가스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하거나(PNG: Pipeline Natural Gas) 액화시켜 운송하기(LNG: Liquified Natural Gas) 때문에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곧,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통과국과 천연가스 생산국 및 소비국 간의 관계,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인프라 구축, 장기간에 걸친 안정적인 천연가스 수급 등의 영향으로 천연가스 거래는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LNG수입국이면서 LNG운반선 건조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파이프라인을 생산하는 철강산업이나 파이프라인 건설, 천연가스 액화 및 가스화 설비 건설 등의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국가 경쟁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 생산국의 주목을 끌만한 장기적인 천연가스 수급계획 아래 생산국과 이익을 공유할 연관 산업 진입전략을 수립하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핵심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LNG선박의 예를 보면, 건조시 이익은 5~7%정도인데,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화물탱크 원천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GTT에 선가의 5%를 로열티로 지불한다. 그러다 보니 “재주는 한국 조선사가 부리고, 돈은 프랑스 GTT가 챙기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에너지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에너지를 수입해야한다면, 그와 연관된 산업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LNG생산국 가운데 어떤 나라가 우리와 상생하면서 연관 산업에 기회를 열어 줄 것인지 국제정치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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