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여기 계십니다"...사물 존칭,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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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여기 계십니다"...사물 존칭, 도를 넘었다
  • 취재기자 이하림
  • 승인 2015.10.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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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존댓말 바로쓰기 운동, 민관 차원서 활발 전개
▲ LOUD캠페인의 일환으로 컵홀더에 사물존칭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임소현).

“커피 나오셨습니다.”최근 커피숍이나 백화점 등 서비스업 직원들이 사물에 존칭을 쓰는 엉터리 존칭 문제가 이슈가 됐다. ‘커피’가 주어인 문장에 ‘나오시다’라는 존칭이 쓰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 같은 존칭의 파괴현상은 비단 사물존칭의 문제만이 아니다. 압존법과 경어, 그리고 한 번 사용한 존칭의 어미는 다시 같은 문장의 동일구조에서 사용하지 않는 등의 올바른 존댓말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는 올바른 높임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많은 사람들이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사물에 존대를 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포장이세요?”“화장실은 이쪽 이십니다,”“원하는 사이즈가 없으십니다”라는 말은 요즘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포장해 드릴까요?”“화장실은 이쪽에 있습니다,”“원하시는 사이즈가 없습니다”로 써야 한다.

이 같은 사물존칭 문제가 부각되면서 각종 서비스 업계는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을 벌이거나 ‘불필요한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내걸고 종업원들의 서비스 관련 언어를 고치려고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잘 실천되지 않고 있다.

부산 서면의 한 치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정연정(27) 씨는 일을 하면서 잘못된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고치기가 쉽지 않다. 정 씨는 "진료 들어가실게요," "처방전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말을 매일 쓰고 있다. 최근에 이게 잘못된 표현이란 것을 알았지만, 고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처방전 나왔습니다"라고 바른 어법으로 말하면 손님에게 무례한 말을 쓰는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미 처방전이란 사물에 존칭어를 쓰는 게 내게 익숙해져서 이제는 처방전에게 존칭어를 안 쓰면 오히려 내가 손님에게 무례해지는 것 같아 계속 '처방전 나오셨습니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설명했다.

압존법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고 있는 표현 중 하나다.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사람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을 경우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표현법이다. 예를 들면, 손자가 할아버지 앞에서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집에 안계십니다”라고 말하면 안되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집에 없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압존법은 가족이나 사제 간에는 적용되어야 하고 직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게 어법에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압존법은 특히 사용자들의 혼란을 야기한다.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직장에서의 압존법은 전통 언어 예절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누구든 말하는 사람보다 윗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장님, 김과장이 저기 있습니다”라고 압존법을 사용하지 않고 “부장님, 김과장님이 저기 계십니다”라고 해야 맞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거주하는 김재학(28) 씨는 군복무 시절 압존법을 배운 뒤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압존법이 당연히 모든 상황에 해당되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더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았는데, 직장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그는 “어디서 압존법을 써야하고 안 써야 하는지 너무 헷갈린다. 그냥 압존법을 모든 상황에 해당시키든지, 압존법을 아예 쓰지 않든지 하면 올바른 우리말 사용이 더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압존법이라는 개념자체를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직장인 김희정(26) 씨는 기자가 압존법에 대해 설명을 한 뒤에서야 압존법의 존재를 알았다. 그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무조건 존댓말을 써왔으며 그게 예의인줄 알았다. 그녀는 "이제 압존법을 알았으니 상황에 따라 압존법을 잘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헷갈려서 잘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압존법을 모르던 또 다른 직장인 장은미(27) 씨는 “의미만 서로 통하면 되지, 압존법은 쓰려고 해도 너무 이상하고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문장에서 존칭을 중복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예를 들어, “교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러 가셨습니다”라는 문장에는 너무 많은 존칭이 들어있다. 이는 “교수님이 식사를 하러 가셨습니다”로 고쳐 써야 한다. 또 신문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이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를 ‘박근혜 대통령님은’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에 존칭이 들어 있기 때문에 뒤에 ‘님’이라는 존칭을 중복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경대 학생 김은지(22) 씨는 “말하면서 내가 존대를 중복해서 하고 있는지도 못 느끼겠고, 언제 그런 것을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말하겠나”라며 “익숙해지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나오는 대로 존대를 막 쓴다. 반말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315명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작성 시 국어 문법의 어려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국어문법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이중 ‘높임말 사용이 어렵다’는 답변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0년에 문법이 어렵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접수해 ‘국어사용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표준 언어 예절’을 발간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불편은 시원하게 해소되지는 않고 있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김경림 연구원은 “문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준 언어 예절’을 제안하고 있으니, 어렵더라도 관심을 갖고 봐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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