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삽한 법률용어 법전에서 걸러내기 본격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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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삽한 법률용어 법전에서 걸러내기 본격 가동
  • 취재기자 최위지
  • 승인 2015.10.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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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1000여 개 조문 순화...산업계선 정체불명 외래어 추방운동

한글의 우수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를 한글로 순화하는 작업이 각계각층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 1958년 제정된 민법 법조문에는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국민이 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민법 조문을 한글식 표현으로 순화한 민법 개정안이 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은 현행 민법 표현 중 주요 용어 133개, 문장 64개 등 전체 민법 조문 중 1056개 조문을 순화했다.

예를 들어, 일본식 표현이었던 ‘除却(제각)’은 ‘제거’로, ‘기타’는 ‘그 밖의(에)’로 순화했으며, 어려운 한자 표현이었던 ‘胞胎(포태)’는 ‘임신’으로, ‘蒙利者(몽리자)’는 ‘이용자’로 순화됐다.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개정으로 민법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해서 믿고 따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기존의 민법 조문 중 이번에 새롭게 순화된 단어들(자료: 법무부 제공)

형법은 민법보다 앞선 지난 7월부터 한글 순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형법 역시 민법과 마찬가지로 일본식 표현과 어려운 한자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상의 감경사유가 없어도 법률로 정한 형이 범죄의 구체적인 정상에 비춰 과중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관이 그 재량에 의해 형을 감경하는 것을 뜻하는 ‘酌量減輕(작량감경),’ 피고인이나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자를 불리하게 할 목적을 의미하는 ‘謀害(모해)할 목적’ 등이 그 예다.

법무부장관 자문기구인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워회는 법제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어학자들과 손잡고 형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오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연말까지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글 순화 바람은 산업계에도 불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월 전력 분야 전문용어를 한글로 순화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와 국어순화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력 분야 전문용어 90개를 표준용어로 고시했다. 기존 일본식 한자나 어려운 축약어 등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고치거나 한글로 순화하면서, ‘ESS’는 ‘에너지저장장치’로, ‘(풍력발전기)블레이드’는 ‘날개’로 대체했다.

산업부는 이를 행정기관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전력 관련 회사와 유관기관에서도 적극 사용토록 권고키로 했다. 또한 산자부는 올해 안에 100개의 용어를 추가로 발굴해 표준화 작업을 실시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새롭게 고시된 산업계 전문용어들이 대중에게 널리 쓰이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 특급호텔에서 10년 이상 전기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정모(53) 씨는 “전력용어가 한글로 순화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바뀐 용어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원래 쓰던 용어들이 편해 원래대로 쓴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일반 언어 중 순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국립국어원 산하 말다듬기위원회에서 순화어를 확정하기도 한다. 누리꾼들과 말다듬기 위원들이 제안한 후보를 아울러 검토해 정해지는 이 순화어 중에는 ‘블랙아웃’이 순화된 ‘대정전,’ ‘파노라마 선루프’가 순화된 ‘전면 지붕창’처럼 널리 쓰이고 있는 말도 많다. 그러나 일부 순화 과정에서 세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순화된 말이 의미전달에 실패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는 ‘금융기술(서비스)’로 이는 ‘Fin-tech(핀테크)’가 순화된 것인데 여전히 핀테크가 더 널리 쓰이고 있다.

▲ 국립국어원이 '핀테크'대신 '금융 기술(서비스)'이라는 말을 사용해 달라고 권고하는 포스터(사진: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핀테크 대체어를 찾기 위해, 지난 달 국립국어원은 이에 대한 순화어를 공모했고, 말다듬기위원회에서 ‘금융기술(서비스)’를 순화어로 최종 선정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이 합쳐진 용어로 은행, 카드사, 증권사 등 금융회사는 물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에서도 보통명사로 사용돼왔다.

핀테크의 순화어 금융기술 서비스가 권고된 상황에서 금융권은 이 단어의 사용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금융기술’이라는 말은 핀테크를 연상시키기보다 금융 관련 기술들을 통칭하는 말로 이해되기 쉬워 의미전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시중 은행에 근무 중인 임모(37) 씨는 핀테크라는 말을 써야할지, 순화어인 금융기술이라는 말을 써야할지 혼란을 겪고 있다. 그는 “외래어를 한글로 순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순화어를 잘 정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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